1.
개인적으로
어떤 책을 읽던 간에
저자의 이력을 읽지 않고 책을 펼친다. 선입견 없이 책을 읽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도중. 곳곳에서
드러나는 세밀한 연구의 흔적과 그 결과물을
읽으면서, 이
책만큼은 작가의 소개를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인 유정은
교수의 소개를 보면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나타난 예술 철학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신사임당의
예술
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유정은
교수는 거의
평생을 신사임당과
조선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였다. 유정은 교수는 신사임당의
당차고,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
지금껏 숨어있었던 이야기를 <사임당
평전>을 통해 담아내었다. 유정은
교수는 평전을 통하여 신사임당이
혼자 힘으로
이뤄낸
예술적인 성취를 올바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진정한
현대여성의 롤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2.
<사임당
평전>에는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유정은
교수는 뛰어난 유학자, 문장가, 화가로서의
신사임당보다 '현모양처'
신사임당으로 굳어진 원인은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17세기
송시열과 일제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발견한 인물이 바로 신사임당이라는
존재였다.
그들은 애써
찾아낸 신사임당을 전통적이고,
수동적이며, 순종적인 아녀자로서의 모습으로
포장한다.
예술가로서 주체적인
삶을 사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의 타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여인으로 왜곡시켜버린 것이다.
3.
사임당이라는
당호는 옛날
중국의 문왕이라는 뛰어난 임금의 어머니 '태임'의 이름자에서 따온 것이다. 태임이라는 여인은 현, 엄, 의, 자의 네 가지
모의를 고루 겸비한 여성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태임을
본받는다' 는
뜻으로 자신의 호를 사임으로
지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녀를 평산 신씨가 아닌 사임당으로 부르게 된 것이었다.
사임당은
태임을
본받으려는 마음가짐으로 그녀는 자녀들에게 효와
입지를
우선시하고, 수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자신
또한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런 가르침을 읽을 수 있는 자료로서 유정은 교수는 율곡이 남긴 선비행장을
비롯한 많은 저서의 문장과
동시대의 문장가인 소세양의
발문 등을
소개한다.
156.
격몽요결
격몽요결(擊蒙要訣)은
율곡 이이가
초학자들에게 학문하는 방향을 일러주기 위해 저술한 책으로, 격몽은 주역
몽괘 상구의 효사에 있는 말로, '몽매하여 따르지 않는 자를 깨우치거나 징벌한다' 는 뜻이다.
율곡은
이 책이 자신이 해주 석담에 있을 때 한두 학도가 추종하여 학문을 청해 왔을 때, '초학(初學)이 향방을 모를 뿐 아니라, 굳은 뜻이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배우면 피차에 도움이 없 도리어 남의 조롱만 사게 될까 염려하여, 간략하게 한 책을 써서 대략 마음을 세우는 것, 몸가짐을
단속하는 일, 부모를 봉양하는 법, 남을 접대하는 방법을 가르쳐, 마음을 씻고 뜻을 세워 즉시 공부에 착수하게 하기 위하여 지었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그가 42세 때 만들어졌고, 나중 정조 12년에 정조는 이 책이 '소학의
첫걸음'이라는 소개를 적은 서문을 썼다. - 위키 참조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은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우고, 꼭 성인이 되기를 자기의 목표로 하여, 한 터럭만큼도 스스로 적게 여겨 물러서고 미루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무릇 사람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하면서도 곧 노력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뜻을 세웠다고 하나
실은 배움으로 향하는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157.
학교모범
학교모범(學校模範)은
이이가
조선
선조
15년(서기 1582년)에 왕명을 받아 저술한 학생수양의 지침서로 16개 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교모범은 그 시대의 청소년 교육을 쇄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사료되며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국민교육헌장과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교육헌장으로서 가정과 학교 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의 준칙도 제시하고 있다. - 위키 참조
온갖 선한 것이 다 나에게 갖추어 있으니, 달리 구할 필요는 없다. (...) 곧바로
천지로써 마음을 세우고, 민생으로부터 표준을 삼으며, 옛 성인을 표준 삼아 끊어진 학문을 잇고.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열어 주는 것으로 표적을
삼아야 한다. 물러서서 스스로 앞길에 한계선을 긋는 생각이나 우선 편안한 것을 바라서 스스로 용서하는 버릇은 털끝만큼도 가슴속에 싹트지 못하게
해야 한다. 훼방과 명예, 영화로움과 욕됨, 이득과 손해, 화와 복, 이런 것들이 마음을 설레게 말아야 하며 분발하고 힘써서 기어코 성인이 되고
말아야 한다.
이런
문장들을 읽으면서 조선의
16세기는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을 폈쳤음에도 불구하고 잔재했던 고려의 문화와 조선의 문화가 적절히 어우려져서 유학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임당의
아버지인 신명화는 사위였던 이원수에게 처가살이를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덕분에 사임당은 20년간 시집살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사임당에게 주어졌고, 그녀는
자신의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로 유정은 교수는 자녀균분상속이
이루어지고 윤회봉사가 행해지던 고려시대의 풍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임당은
그렇게 유학의
정신을 자신의 예술 작품에
담아내었다.
258.
사임당의 글씨로 초서작품이 가장 많아 주로 초서를 즐겨 썼을 거라 추측하는데 사임당이 중국 주나라 고대 한자서체인 선 굵은 전서 작품을 남긴
것을 보면 서예에도 상당한 수준의 경지에 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서는 상당히 복잡해서 문자학의 지식 없이는 쓰기 힘든 서체이기 때문이다.
유학이 혼탁해진
시대는 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생존했던 시기의 다음 시대인 17세기 부터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17세기.
숙종이 즉위하면서 왕권 강화를 위해 총 세
번의
환국정치가 시작되었고, 그로 인하여 자기 수양의 본연의 길을 잃고, 유학자들끼리 권력 다툼이
극에 달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유학은 '인'을 통하여 자신을
갈고 닦아 군자가
되어 나라와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학문이
아니라 권력을
지탱하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율곡
이이는
송시열에 의해 서인의 결속력을 높이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존재로서 신격화되고,
그에 따라서
사임당도 율곡을 낳아 기른 어머니의 상으로 극진히 모셔지게 된 것이었다.
4.
372.
공자의 중심 사상은 인 (仁)으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주체적 각성을 통하여 인간으로서 생명의 존엄성을 천명하고, 행할 바의 도리를 밝힌다는
것이다. 인은 완성된 인격의 명칭이면서 바람직한 인륜 도덕으로 공자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공자의 교육 원리이다. 인의 사전적 의미는
'어질 인, 착할 인, 동정할 인'등의 풀이로 해석되는데, 우리말로 '어질다'와 '착하다'는 모두 지성이 탁월함을 뜻하기보다는 인정이 많고
가슴이 따뜻하다는 뜻이 강하다. 인정이 많고 가슴이 따뜻해야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373.
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배려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공자의 도(道)가 충서로 일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충(忠)은
자기의 마음을 끝까지 열심히 다하는 것,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서(恕)는 자기의 마음에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것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 정신이다. (...) 인이라는
한자가 본래 '사람 인(人)'과
'두 이(二)' 자를 결합한 것으로 인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글자다.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사랑'이라고 보는 견지에 입각하여
인을 '사랑을 사랑함(愛人)'이라고 말한 공자의 뜻을 짐작할 수 있다.
375.
율곡 이이는 「극기복례설(克己復禮說)」을
지어 말하기를 '인이란 본심의 전덕(全德)으로서 모든 사람이 이 본심을 갖추고 있지만 사욕이 그것의 실현을 가로막음으로써, 몸과 마음을 검속하는
도구인 예에 따름으로써 마음의 덕이 온전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 개인의 인격에 인을 심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내재적인 즐거움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즐거이 인을 향하게 하여 도에 이르는 것이 진정한 인의 실천임을 알아야겠다.
<사임당
평전>을 통하여, 유정은 교수가 정리해놓은 유학의
정수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정수를 사임당은 시와 서예 뿐만 아니라 한폭의 그림, 대표적으로 초충도를
통해 그려내었다고 한다. <사임당 평전>은 사임당이 남긴 작품(시,서,화,자수)을 소개한다. 초충도의
연구로 학위를 받은 유정은 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사임당이 표현한 각각의
생명과 색깔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320페이지서부터 330페이지에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 두고 있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수박이
수복(壽福)과 발음이 비슷하다고 하여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맨드라미를 장닭이 벼슬같이 생겨서 계관화라고
부르고, 정수리에 돋은 벼슬의 모양 때문에 '관을 쓴 것
같다.', '벼슬하다'는
말이 생겼다고도
한다. 또한 나비와
고양이가 함께 등장하는 그림의 경우 '고양이 묘(猫)'자가 70세 노인을 나타내는 늙은이 모(耄)와 발음이 같고 또 '나비 접(蝶)'자가
80세를 뜻하는 늙은이 질(耋)과 한자음이 같아서 일흔을 넘어 여든 살까지 장수하라는 의미를 담아낸다고도 한다.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은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생각나는 몇 부분만을 덜어내어 이야기해보면서 갈무리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