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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생각하는 즐거움 - 검색의 시대 인문학자의 생각법
구시다 마고이치 지음, 이용택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1. 문필가의 수필
글을 지어 대중에게 발표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작가 겸, 편집자 겸, 대학교수가 남긴 수필집이다. 작가 소개를 보면 구시다 마고이치라는 작가는 산과 자연 삶에 대한 사색적인 글을 써서 주로 '사색 수필가' , '산의 철학자'로 불린다고 한다. <혼자 생각하는 즐거움>을 읽으면 그에게 왜 그런 별칭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
<혼자 생각하는 즐거움>은 2005년 별세한 구시다 마고이치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복간한 책이라고 한다. 생전의 그의 인생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구시다 마고이치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작품으로 이 책. <혼자 생각하는 즐거움>을 꼽았다는 점에서 제법 의미가 있으며, 그를 말하는 가장 상징적인 수필집이라고 볼 수 있겠다.
2. 당신만의 정의. 추상적인 것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한 사색의 결과물로 가득하다. 이 책의 첫 번째 수필의 제목이 '생각한다는 것에 대하여'이며, 이어서 '본다는 것', '의심한다는 것', '안다는 것' 으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인간을 이루는 관점을 조직하는 하나의 단위세포라고 볼 수 있는 이러한 개념들에 대하여 조금씩 정의를 쌓아나간다.
10. 인간은 주변의 것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성향이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할 수 없는 동물에게 온갖 정을 쏟기도 하고 고양이나 개를 위해 눈물을 흘릴 뿐 아니라, 새빨간 사과를 보면 사과의 기분마저 이해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서로의 마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말이 통하는 사이라서 마음과 뜻이 잘 통할 듯해도, 턱을 괴고 한곳을 지그시 바라보고 앉아 있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심정인지 알 수 없으니 혼자 추측만 할 뿐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에 대하여-
26. 인간은 의심을 함으로써 올바른 것과 잘못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한다. (...) 그런데 의심의 결과가 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을 의심해본 후 별다른 단점이 없고 장점만 눈에 띈다면 '분명히 좋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싶겠지만, 사실 모든 조건을 하나도 빠짐없이 의심해보았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의심한다는 것에 대하여-
38. 요즘 각광받는 다이제스트 식 책은 얕은 지식을 얻는 데 비교적 시간과 돈이 적게 들어 지극히 편리합니다. 그러나 이를 악용하면 매우 위험합니다. 남에게서 빌린 지식으로라도 자신을 매력적으로 꾸미려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마음속 깊이 뿌리 박힌 허영심 때문일 것입니다. -안다는 것에 대하여-
53. 우리 시대에 가장 부족한 것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하네. (...) 요즘 사람들은 일한다는 것을 저주스러운 것,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노역으로 생각해. 하지만 일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생존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우리의 명예라고 봐야해.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혁명 이전의 구체제 시대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물건의 대부분, 즉 가구, 도구, 직물 등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위대한 직업정신이 담겨 있지.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일하고 싶을 때도 있고 일하기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 어떨 때는 좋은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다가도 또 어떨 때는 짜증 내며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거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하는 것 자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아. 만약 일한다는 것이 인간의 생존에 대한 대가가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라면 지금보다 한층 더 행복할 텐데.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3. 다가오는 선망. 꿈에서 희망으로
구시다 마고이치라는 인물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한다.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일련의 이성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이성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인물이 아니라 바깥에 존재하는 가치와 인간의 불완전함이 생산해내는 내부의 가치를 동등하게 평가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었다. 어떤 가치에 대하여 한계를 인정하고 적당히 타협하고자 노력하는 류의 사람 같았다. 요즘 말로 '케바케'. 때와 경우에 따라서 다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있는 그런 인물.
이런 인물이 사유한 선망과 꿈과 희망에 대한 부분 중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167. 선망의 대상처럼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선망은 우리에게 가장 이로운 감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선망의 대상을 그저 부러워하고 우러러볼 뿐입니다. 이것만으로는 현실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선망의 단계를 거쳐 욕망의 단계로 나아가야 선망의 대상처럼 되려고 노력하거나 선망하는 것을 갖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게 됩니다. (...) 선망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
222. 꿈은 희망과 달리 현실과 이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과 이어지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꿈을 품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 꿈만 줄곧 바라보면서 그 안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은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의 꿈이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아마도 그 꿈을 현실화할 방법을 찾느라 커다란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부분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선망을 통하여 인간은 꿈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선망을 그저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것에 그치면 이러한 선망은 그저 한순간의 꿈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잠시 꿈에 젖어 행복을 즐기는 정도로 만족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선망은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과 희망은 다르다. 현실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희망이다. 선망을 꿈꾸듯이 부러워하는 것은 그만두자. 선망하는 것에 대하여 욕망하여 스스로 선망의 대상이 되려고 노력하거나 그것을 얻기 위해 방법을 만들어보자. 그러면 그것은 잠깐의 꿈이 아니라 희망으로 당신의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선망하는 것에 멈추지 말고 그것을 희망으로 만들기 위해 앞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4. 아카이브를 위한
생각, 본다, 의심, 안다, 속인다, 일, 논다, 모방, 만든다, 웃음, 이별, 사랑, 꿈, 행복, 쾌락, 고뇌, 운명, 고독, 경험, 고백, 거짓, 감각, 선망, 질투, 공포, 분노, 증오, 슬픔, 아름다움, 모순, 여유, 희망, 기질, 성실, 불안, 친절, 표현, 추억, 동경, 감상, 순결, 어리석음, 비겁함, 편지, 일기.
<혼자 생각하는 즐거움>에서 다루는 주제는 윗부분에서 다룬 것 말고도 총 44가지 소주제로서 다양하다. '운명'을 다룬 수필에서 언급하는 스토아학파의 특징들. 짧게 소개하자면 자연과 신과 우주와 인간이 이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 이성을 따른다는 것은 인간의 외적인 절대적인 것을 따른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인간은 불가항력으로 운명을 느낀다.
짧고 정밀한 문장이기에 기억하는데 한계가 있다. 금방 까먹는 나의 아둔함을 동정하며, 나중에 검색으로 찾아볼 수 있도록 이렇게 목차를 하나씩 기록해둔다. 내가 살아 있는 이상 생각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이 주제는 분명히 나에게 찾아올 주제들이다. 그러므로 구시다 마고이치의 조언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만남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정확히 주어지지 않았지만, 연결고리도 없이 둥둥 떠다니는 이 책을 어쩌다 우연으로 만난 지금에서야 느끼기에는 이 책은 제법 쓸모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