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차르 - 블라디미르 푸틴 평전
스티븐 리 마이어스 지음, 이기동 옮김 / 프리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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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푸틴 평전


뉴욕타임스 기자. 스티븐 리 마이어스라는 미국인이 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평전이다. 이 평전은 푸틴의 이력을 시대순으로 짚어나가는 형식의 책이다. 나는 푸틴이라는 사람을 모른다. 그저, 오래전 그가 흘린 눈물. 차가운 권력자의 눈물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푸틴이라는 사람을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도자가 되려는 야망을 보이지 않았던 충실한 일꾼. 위협적이지 않아서 대통령이 된 푸틴이 어떻게 해서 오만한 권력자가 될 수 있었을까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2. 러시아의 다크 나이트


<배트맨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고담시티의 평화를 위해서 기꺼이 악당이 되기로 한다. 현재 러시아에도 과거 러시아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악당이 되어버린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그렇게 봐주길 원한다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 배트맨처럼 선한 악당인지. 배트맨과 달리 오만한 악당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긴 하지만 푸틴이라는 인물은 조커처럼 이유 없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저지르는 인물은 아닌 것 같다. 테러의 목적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의 집권 즈음에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간혹 벌어지던 자살폭탄테러 사건에 대한 의혹은 의혹으로 남겨두려한다.


3. 푸틴의 정치관


<뉴 차르>에서 묘사한 푸틴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푸틴 대통령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우선하지 않는다. 국민보다는 국가를 위한 정치를 한다. 국가가 잘되면 국민도 따라서 잘 된다는 주의다. 국가주의라고 부르면 되겠다.


둘째, 푸틴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하지는 않는다. 러시아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이루는 주체는 오직 푸틴 자신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좋은 민주주의고, 대통령이 되지 못하면 나쁜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566페이지 실려있는 적나라한 팩트폭행은 간지럽다.


566. 아마추어들이 노골적인 무더기 투표행위와 유권자들을 버스에 태워 투표소를 옮겨 다니며 투표하는 장면 등을 휴대폰으로 찍어 온라인에 올렸다. 모스크바 제2501 투표소에서 늙수그레한 관리 책임자가 투표용지 한 다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기 손으로 찍어대는 장면이 유튜브에 올라오기도 했다.


셋째, 이렇게 해도 문제이고, 저렇게 해도 문제라면 내가 생각하는 러시아에 부합하는 정치를 하겠다. 결과가 좋다면 부패한 인물과 관계를 맺고 거래하는 등. 구린내 나는 과정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중국도 꽌시가 골칫거리고, 우리나라도 비선실세가 권력을 장악하곤 하는데, 러시아의 푸틴 역시 '블라트'라는 비공식적인 연줄과 일을 도모하는 것을 선호한다.


626. 부패는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마치 제도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부패를 이용해 사람을 협박하기도 하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부패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연루되지 않았다고 해도 처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부패를 무기로 누구든지 협박하고 길들일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푸틴이 러시아의 경제 발전을 부르짖으며 벌인 사업은 대부분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 자원의 개발이다. 푸틴은 이것으로부터 생긴 이익을 미끼로 올리가르히라 불리는 신흥재벌을 유혹하여 그들과 관계를  맺는다. 러시아의 경제는 자원개발로 인한 낙수효과를 통해 성장하는데, 혹자는 이것을 '포템킨 미라지'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넷째, 그는 텔레비전을 통한 이미지 정치를 선호한다. 푸틴은 공개적으로는 국민들을 향해서 개인숭배를 배격한다고 강조한 적도 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푸틴은 아이스하키와 유도를 즐기는 건강하고 강인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노출하는 것도 모자라 러시아 곳곳에서 일어나는 소요사태는 감추고, 자신의 정책을 지지하는 선전용 방송을 내보내기를 즐긴다.  


4. 80%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


이 평전은 미국인이 썼기 때문에 푸틴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중심을 잘 잡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푸틴이 계획하는 러시아의 미래를 잘 짚어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뉴 차르>라는 제목과도 잘 어울린다. 이러한 푸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만만치 않지만, 현재 러시아에서 푸틴의 지지율은 80퍼센트를 넘어섰다. 이러한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민주주의로 푸틴을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642. 러시아 국민 대다수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모른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블라디미르 푸틴의 손에 맡겨 놓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것입니다. 러시아처럼 큰 나라에서 국민이 이렇게 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674. 그가 느끼는 불안감, 열정, 허약함, 열등감이 그대로 국가정책이 되었다, 그가 피해망상에 빠지면 국가 전체가 적을 두려워하고 스파이를 겁내야 한다. 그가 불면증에 시달리면 모든 각료가 함께 밤을 새워야 한다. 그가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으면 모두가 금주를 해야 하고, 그가 술에 취하면 모두 함께 취해야 한다. (...) 그가 미국을 좋아하지 않으면 전 국민이 미국을 싫어해야 한다.


5.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유라시아연합


634. 크렘린 복귀 선언 이후 푸틴은 2011년 첫 정책발표를 통해 소련연방붕괴 이후 표류해 온 연방공화국들을 다시 묶어 유라시아경제연합이라는 이름의 광범위한 경제협력체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푸틴은 이미 유럽연합과 나토에 편입된 발트해 3국은 제외하고, 이 경제 블록을 유럽연합의 대항마로서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제국으로 등장시킬 생각이었다. 유라시아와 흑해에서 중앙아시아, 시베리아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스텝지대를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636. 푸틴이 유라시아연합에 가장 끌어들이고 싶은 나라는 우크라이나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깊은 유대를 가진 나라이다. 우크라이나인들 다수는 인종적으로 러시아인들이고, 20세기 최악의 지정학적인 재앙에 의해 조국을 떠나 그곳으로 간 사람들이라고 푸틴은 생각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천연가스와 원유의 가격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압박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에게 미국과 관계를 끊으라고 협박하고, 150억 달러라는 당근책을 제시한다. 푸틴은 야누코비치로 하여금 러시아의 손을 잡도록 유도한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 러시아와 손을 잡은 선택은 우크라니아 내에서 탄핵 역풍을 일으켜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서 잠시 내려오다. 


푸틴은 이틈을 놓치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트림반도에 군사를 투입한다. 그렇게 그는 크림반도를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복속시켰다. 그 이후 푸틴은 크림반도에 군사를 투입한 이유로 크림반도 내의 자국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크림반도 분쟁은 이렇게 생겨났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내에 속한 프로축구팀을 자국 리그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최근에는 크림반도에서 러시아의 총선을 진행하여 관리를 선출하고 있다.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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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자 - 상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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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압도적인 스케일


설익은 결말은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오쿠다 히데오의 <방해자>의 진지함은 독자를 압도할만큼 강렬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일본소설.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파1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일본 사회파 소설을 왜 좋아하는지 <방해자>를 읽으면서 다시금 이해할 수 있었다. 


오쿠다 히데오가 2004년 발표한 이 소설은 하이텍스 혼조 지사에서 발생한 화재가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소설은 이 사건의 진실을 하나씩 밝혀낸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이 화재사건과 관련이 있다. 사건을 감추려는 사람과 사건을 밝히려는 사람이 있다. 이 등장인물들의 내적갈등은 읽는 내내 즐거움과 무거움을 함께 가져다주었다.


방해자라는 소설은 단순히 화재사건의 진범을 찾가내는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다양한 층위에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면면을 모조리 다루고 있다. 그래서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의심하는 이웃들의 소문과 뒷담화, 사생활을 보호하지 않는 언론의 과잉취재,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사원의 열악한 처우문제, 노동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헌납금을 요구하는 어그러진 노동쟁의, 자본을 등에 업고 누군가의 정신을 더럽히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기업가의 권력남용, 비행청소년들을 양산하는 꿈이 없는 사회와 미성년자 강력 범죄, 그리고 내부자들. 야쿠자와 기업 간의 비리, 경찰과 야쿠자 간의 비리, 기업 내부의 횡령과 배임, 경찰 내부의 비리와 권력싸움.


방해자는 이 모든 사회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2. 누군가는 누군가의 방해자


<방해자>의 주요 인물은 비행청소년 유스케, 가정주부 겸 파트타임 캐셔 교코, 그리고 혼조서 경보부 구노 이렇게 세 명이다. 이 소설은 세명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교코와 구노가 소설의 핵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가정주부면서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교코와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구노는 하이텍스 혼조 지사의 화재사건 때문에 엮인다.


소설을 살펴보면 오쿠다 히데오 작가아주 세밀하게 유스케와 주변인물, 교코와 주변인물, 구노와 주변인물. 이러한 관련 인물들을 연관짓는다. 작가는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줄거리를 이어나간다. 그의 방송작가 경력을 뒷받침하듯 드라마식 구성이다. 게다가 <방해자>라는 소설의 제목답게. 모든 인물은 선한 의도에서건 악한 의도에서건 관계없이 어떤 사람의 방해자 역할을 맡는다. 먹이사슬처럼 이리저리 얽혀있다는 말이다. 표지의 일러스트가 이러한 풍경을 굉장히 잘 묘사하고 있다.


3. 교코의 관점


교코의 남편이 저지른 범죄는 명백하다. 오쿠다 히데오의 <방해자>는 비밀독서단에서 소개된 최진영 작가의 단편소설 <남편>의 경우와는 다르다. 죄를 의심받는 상황에서 교코의 남편 시게노리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2차 범행을 저지른다. 교코 역시 남편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방화를 저지른다. 교코가 남편이 범죄자가 되었다는 상황에 직면해서 한 행동은 그것을 끝까지 은폐하려는 시도였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죄를 감춰야 한다. 그 따위 것이 아니다. 교코는 경제적인 안정을 유지해야 했고,아이의 미래를 지켜야 했다.


354. 늘 관객 편에 있었다. 감상만 말하면 되었다. 미칠 듯한 사랑도, 빵 하나를 열 명이 나눠 먹어야만 하는 치열한 싸움도,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았다. 지금 그것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추한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368. 자신은 줄곧 조수석에 앉는 인생을 걸어왔다. 운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긴 채 끌려다니는 입장에 만족했었다. 앞으로는 본인이 직접 모든 핸들을 잡아야만 한다. 가오리와 겐타를 지킬 사람은 어머니인 자신밖에 없으니까.


<방해자> 속에서 교코는 위의 독백처럼 미래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아왔음을 자책한다. 남편의 도벽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음에도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결과. 회삿돈을 횡령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방화를 저지르는 최악의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남편이 범죄자라는 사실. 그리고 범죄자 가족이라는 연대의식.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노조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는 처참했다. 교코에게 닥친 현실을 잊기 위해서 다른 곳에 신경을 집중해봤자 경찰의 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은 아이들의 미래가 범죄자의 자식이라는 굴레에 갇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교코의 심리묘사를 읽으면서, 그녀가 자신을 너무 학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남편이 저지른 잘못을 혼자 뒤집어 쓰려하고 있었다. 교코는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고통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잘 살아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까지 잘 해왔다. 잘못이 있다면 남편을 너무 믿었다는 것?


이 가족의 실질적인 문제는 남편인 시게노리의 도벽에 있다. 교코가 남편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새로운 알리바이를 조작하러 나선 장면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그녀의 단호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비록, 방법이 옳지 않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녀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도 그녀를 비난할 수 없다. 이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그녀의 곁에 남아서 조언을 건네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418. 역을 찾자.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가자.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과한 표현이겠지만 되도록 나만의 인생을 살자. 아내도 아닌. 어머니도 아닌 나만의 인생을. 그래, 그렇게 살자. 그리고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너무 정색하고 말하는 게 아닌, 나만의 비극에 도취되지 말자는 의미에서.


이런 결론. 이같은 깨달음은 올바르다고 생각은 하지만, 갑작스러운 결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뒤에 이야기가 더 있어야 할 듯 싶은데 중간에서 뚝 끊어진 감이 있다.


4. 구노의 관점


구노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방해자>의 인간들은 대부분 사악하기 그지 없지만 구노만큼은 악당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성격은 내부자들에게는 눈엣가시 = 방해자로 보였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구노에게 방해자였다. 구노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커다란 고통이 찾아온 시기는 7년 전이었다. 구노는 덤프트럭 사고로 인해 아내를 잃었다. 아내의 옆자리에는 장모가 타고 있었는데,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구노는 장모를 친어머니 삼아 7년의 시간을 견뎌오고 있었다.


<방해자>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모든 상황들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굉장히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앞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옮겨적듯이 말이다. 이건 구노의 시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소설 전체가 그렇다. 결말로 치닫는 하권에 이르러서야 등장인물의 내면묘사에 상당부분 공을 들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실제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사실적인 문장을 나열한다.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구노의 지극한 효성과 그로 인한 사려깊은 행동을 보면서 어느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방해자의 중요한 비밀에 관해서 계속 이야기를 써내려가겠다. 나는 이 비밀을 깨닫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의 시계는 7년 전에 멈춰있었던 것이구나. 그리고 그의 행복 또한 7년 전 그 날에 멈춰있던 것이구나.


구노는 화재사건을 조사하면서 이 사건이 자작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피의자 수사를 하면서 남편의 부인이라는 여자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친해지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피의자의 부인과 형사의 관계. 굉장히 어색하면서도 껄끄러운 관계다. 구노가 보기에는 남편이 벌인 자작극 때문에 가정의 행복이 깨어질 위기에 처한 여자였다. 다른 부서는 방화범을 유쾌범으로 특정하고, 야쿠자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수사하는데 반해서 이 형사는 진실에 접근하고 있었다. 문제는 구노 형사는 7년 전에 가족을 잃은 남자이며, 가족을 잃은 동시에 행복 또한 잃어버린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남편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교코의 모습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모습. 행복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모습으로 보여졌을 것이다. 애처로웠을 것이다. 게다가 구노의 부인 사나에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교코와 같은 나이이기도 했다. 피부도 새하얀 교코를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사나에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은 불륜같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행복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눈에 자신처럼 행복의 끈을 놓아버리기 직전의 여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구노로서는 교코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행복을 잃어버리는 것이었으므로. 사나에와 닮은 여인의 불행을 사나에의 불행과 연결시키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그는 불안한 그녀를 쫓아간다.


5. 옮기지 못한 많은 이야기


<방해자>에는 여전히 언급조차 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해관계에 얽힌 이야기.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가 누군가의 방해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야기. 어쩌면 방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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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생각하는 즐거움 - 검색의 시대 인문학자의 생각법
구시다 마고이치 지음, 이용택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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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문필가의 수필


글을 지어 대중에게 발표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작가 겸, 편집자 겸, 대학교수가 남긴 수필집이다. 작가 소개를 보면 구시다 마고이치라는 작가는 산과 자연 삶에 대한 사색적인 글을 써서 주로 '사색 수필가' , '산의 철학자'로 불린다고 한다. <혼자 생각하는 즐거움>을 읽으면 그에게 왜 그런 별칭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


<혼자 생각하는 즐거움>은 2005년 별세한 구시다 마고이치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복간한 책이라고 한다. 생전의 그의 인생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구시다 마고이치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작품으로 이 책. <혼자 생각하는 즐거움>을 꼽았다는 점에서 제법 의미가 있으며, 그를 말하는 가장 상징적인 수필집이라고 볼 수 있겠다.


2. 당신만의 정의. 추상적인 것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한 사색의 결과물로 가득하다. 이 책의 첫 번째 수필의 제목이 '생각한다는 것에 대하여'이며, 이어서 '본다는 것', '의심한다는 것', '안다는 것' 으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인간을 이루는 관점을 조직하는 하나의 단위세포라고 볼 수 있는 이러한 개념들에 대하여 조금씩 정의를 쌓아나간다. 


10. 인간은 주변의 것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성향이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할 수 없는 동물에게 온갖 정을 쏟기도 하고 고양이나 개를 위해 눈물을 흘릴 뿐 아니라, 새빨간 사과를 보면 사과의 기분마저 이해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서로의 마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말이 통하는 사이라서 마음과 뜻이 잘 통할 듯해도, 턱을 괴고 한곳을 지그시 바라보고 앉아 있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심정인지 알 수 없으니 혼자 추측만 할 뿐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에 대하여-


26. 인간은 의심을 함으로써 올바른 것과 잘못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한다. (...) 그런데 의심의 결과가 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을 의심해본 후 별다른 단점이 없고 장점만 눈에 띈다면 '분명히 좋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싶겠지만, 사실 모든 조건을 하나도 빠짐없이 의심해보았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의심한다는 것에 대하여-


38. 요즘 각광받는 다이제스트 식 책은 얕은 지식을 얻는 데 비교적 시간과 돈이 적게 들어 지극히 편리합니다. 그러나 이를 악용하면 매우 위험합니다. 남에게서 빌린 지식으로라도 자신을 매력적으로 꾸미려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마음속 깊이 뿌리 박힌 허영심 때문일 것입니다. -안다는 것에 대하여-


53. 우리 시대에 가장 부족한 것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하네. (...) 요즘 사람들은 일한다는 것을 저주스러운 것,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노역으로 생각해. 하지만 일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생존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우리의 명예라고 봐야해.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혁명 이전의 구체제 시대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물건의 대부분, 즉 가구, 도구, 직물 등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위대한 직업정신이 담겨 있지.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일하고 싶을 때도 있고 일하기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 어떨 때는 좋은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다가도 또 어떨 때는 짜증 내며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거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하는 것 자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아. 만약 일한다는 것이 인간의 생존에 대한 대가가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라면 지금보다 한층 더 행복할 텐데.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3. 다가오는 선망. 꿈에서 희망으로


구시다 마고이치라는 인물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한다.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일련의 이성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이성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인물이 아니라 바깥에 존재하는 가치와 인간의 불완전함이 생산해내는 내부의 가치를 동등하게 평가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었다. 어떤 가치에 대하여 한계를 인정하고 적당히 타협하고자 노력하는 류의 사람 같았다. 요즘 말로 '케바케'. 때와 경우에 따라서 다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있는 그런 인물.

이런 인물이 사유한 선망과 꿈과 희망에 대한 부분 중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167. 선망의 대상처럼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선망은 우리에게 가장 이로운 감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선망의 대상을 그저 부러워하고 우러러볼 뿐입니다. 이것만으로는 현실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선망의 단계를 거쳐 욕망의 단계로 나아가야 선망의 대상처럼 되려고 노력하거나 선망하는 것을 갖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게 됩니다. (...) 선망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


222. 꿈은 희망과 달리 현실과 이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과 이어지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꿈을 품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 꿈만 줄곧 바라보면서 그 안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은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의 꿈이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아마도 그 꿈을 현실화할 방법을 찾느라 커다란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부분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선망을 통하여 인간은 꿈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선망을 그저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것에 그치면 이러한 선망은 그저 한순간의 꿈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잠시 꿈에 젖어 행복을 즐기는 정도로 만족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선망은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과 희망은 다르다. 현실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희망이다. 선망을 꿈꾸듯이 부러워하는 것은 그만두자. 선망하는 것에 대하여 욕망하여 스스로 선망의 대상이 되려고 노력하거나 그것을 얻기 위해 방법을 만들어보자. 그러면 그것은 잠깐의 꿈이 아니라 희망으로 당신의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선망하는 것에 멈추지 말고 그것을 희망으로 만들기 위해 앞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4. 아카이브를 위한


생각, 본다, 의심, 안다, 속인다, 일, 논다, 모방, 만든다, 웃음, 이별, 사랑, 꿈, 행복, 쾌락, 고뇌, 운명, 고독, 경험, 고백, 거짓, 감각, 선망, 질투, 공포, 분노, 증오, 슬픔, 아름다움, 모순, 여유, 희망, 기질, 성실, 불안, 친절, 표현, 추억, 동경, 감상, 순결, 어리석음, 비겁함, 편지, 일기.


<혼자 생각하는 즐거움>에서 다루는 주제는 윗부분에서 다룬 것 말고도 총 44가지 소주제로서 다양하다. '운명'을 다룬 수필에서 언급하는 스토아학파의 특징들. 짧게 소개하자면 자연과 신과 우주와 인간이 이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 이성을 따른다는 것은 인간의 외적인 절대적인 것을 따른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인간은 불가항력으로 운명을 느낀다.  


짧고 정밀한 문장이기에 기억하는데 한계가 있다. 금방 까먹는 나의 아둔함을 동정하며, 나중에 검색으로 찾아볼 수 있도록 이렇게 목차를 하나씩 기록해둔다. 내가 살아 있는 이상 생각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이 주제는 분명히 나에게 찾아올 주제들이다. 그러므로 구시다 마고이치의 조언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만남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정확히 주어지지 않았지만, 연결고리도 없이 둥둥 떠다니는 이 책을 어쩌다 우연으로 만난 지금에서야 느끼기에는 이 책은 제법 쓸모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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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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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다름

피츠버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부모로부터 동양인의 외양을 물려받은 이민자 2세 출신의 소설가. 셀레스트 응. 그녀가 쓴 다문화 가정의 비극을 다룬 소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이 소설은 그녀가 미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인종차별과 더불어 몇가지 다름에 대해서 매우 집약적으로 담아낸 소설이다. 3인칭 화자의 목소리로 서사되는 이 소설의 배경은 1950년대와 1970년대 사이를 왕래한다.  

다문화 가정의 아버지인 제임스 교수는 '다름'을 거부한다. 그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의미에서는 항복을 선언한다. 타인으로부터 쏟아지는 차별어린 시선은 마치 그가 우리에 갇힌 동물이 된 것처럼 부담이었고 고통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다름'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미국사회에 속한 미국인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백인 아내와 결혼했고, 자식들 중에서 갈색눈이 아닌 푸른 눈의 둘째딸 리디아를 가장 사랑한다.

한편, 제임스의 부인인 메릴린은 제임스와는 반대로 '다름'을 원한다. 그녀가 자랐던 시대인 1950년의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사회적으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군 (의사, 변호사)에 진출한 여성은 극소수였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남성에게는 기술을, 여성에게 가사를 가르쳤고, 가정교사였던 메릴린의 어머니는 메릴린이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의 한계에 저항한다. 그녀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이과수업을 들었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다 다른 외양의 남편에 첫눈에 반해서 결혼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학업을 계속해도 이해해 줄 것이라는 기대심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 치여살던 어느날 성공한 이웃의 삶을 보면서 질투심에 휩싸여 꿈을 이루기 위해 가출을 하기도 한다.

그녀의 딸 리디아는 엄마가 돌아오면 엄마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날 이후부터 메릴린의 눈에 비친 리디아는 재능이 빛나는 소녀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엄마가 좋아할만한 것을 찾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메릴린은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닮아서 똑똑한. 자기의 꿈을 이루어줄 딸 리디아를 가장 사랑한다. 그렇게 리디아가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책을 비롯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지원하기 시작한다.

2. 리디아

남들과 다른 얼굴 생김새와 피부 색깔이 싫었던 아버지와 반대로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던 어머니의 관심과 애정은 세 자녀 가운데 유독 리디아에게만 쏠린다. 오빠 네스는 기대없이 혼자서 우주과학자를 꿈꾸고, 동생 한나는 천덕꾸러기로 자라서 그런지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웠다. 그런데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의 시작은 아이러니 하게도 리디아의 죽음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9. 리디아는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1977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의 연쇄작용.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은 리디아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라는 질문과 그것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진실을 통해서 미국내 다문화 가정이 겪는 슬픔, 부모가 자녀의 삶과 꿈을 통제하는 행위가 낳는 부작용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리디아는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자책감 즉, 수능성적에 비관해 목숨을 끊는 죽음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의미로 죽게 된다는 사실이다. 리디아의 생각은 숭고한 정신이며, 이 소설을 평범한 소설에서 빛나는 소설로 만들어 준다.

3. 부모의 기대. 로맹 가리와 김연아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모두 로맹 가리나 김연아가 될 수는 없다. 이들은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한 대표적인 존재이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이 리디아의 죽음으로 말하려 하는 것은 어머니의 기대가 자녀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내지 못하는 더 많은 가능성에 대한 우려들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은 막연히 부모 자신의 욕망인 것도 사실이고, 리디아의 경우처럼 부모가 요구하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오인하여 소질없는 분야에 시간을 보내다가 나중에서야 이 길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224. 마지못해 그들 우주의 중심이 된 리디아 자신은 매일같이 세상을 한데 뭉치고 있었다. 리디아는 부모의 꿈을 흡수한 채 내부에서 솟아나오려는 거부반응을 조용히 억눌렀다. (...) 리디아는 부모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심지어 부모가 요구하지 않을 때도 알았다. 매번 그 일은 부모의 행복을 위해 교환하는 작은 거래 같았다. 그래서 여름마다 대수를 공부했고, 드레스를 입고 신입생 댄스파티에 갔고, 대학에서 생물학 강의를 들었다. 여름 내내,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모두 말이다. 응, 하고 싶어. 하고 싶어. 하고 싶어, 라는 말을 하면서.   

잠시 부모가 자식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말하는 최근의 여러 사례를 생각해보면. 조정래의 경우는 부모는 욕심을 거둬야 한다. 부모와 자녀는 독립적인 존재다. 자녀가 원하는 꿈을 지원해주면, 먹고사는 데는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아리의 경우는 부모가 원하는 삶으로 통제해봤자 자녀는 결국 부모의 기대와 다르게 엇나가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박수홍의 경우에는 자신을 관찰하는 부모를 향해 자기는 이런 사람이라고 보란듯이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한다.  

뭐랄까 이 소설은 우리가 원하는 불가능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한다. 무엇이 되었을 경우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를 상상한다. 성공이 아닌, 실패를 말한다.  

4. 잔존하는 기대심리. 도박 

225. 그해 12월에 리디아는 가지 방에서 책가방을 열고 빨간색 펜으로 55점이라고 적힌 물리학 시험지를 꺼냈다.

리디아는 조금씩 예감하고 있었고, 비로소 목격한다. 유독 자신이 존중받았고, 보호받았던 애정어린 시선. 그것으로 둘러싸여 있던 안전한 세계가 서서히 해체되어가고 있음을. 해체와 동시에 리디아 자신은 부모의 기대를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리디아의 치부를 모두 알고 있는 오빠 네스의 배신과 냉소(어떤 의미에서 안타까움). 무너져가는 그녀의 세계를 비집고 들어오는 네스의 소리없는 공격(자기가 이루지 못할 꿈을 네스가 먼저 점령). 그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들려오는 홀로서기의 사명감은 부모의 기대가 만들어낸 자신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무기로 삼아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을 억지로 벗기려고 한다.

7, 317. 모든 운동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하나는 내려와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다. 한 명이 도망가면 다른 한 명은, 영원히 갇혀 버린다.

초월을 꿈꾸는 리디아. 그것은 현재의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인 하나의 도박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그녀가 죽음을 맞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의 제목처럼 "내가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정말 슬픈 가정을 하자면. 어쩌면 리디아는 자신이 도박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작용과 반작용의 진리를 현실세계에 적용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그녀는 스스로 반작용이 되어 누군가 작용할 수 있게 하는 희생양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녀의 말처럼 당신이 갇혀야만 또 다른 누군가가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픈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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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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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 번째로 만나는 전아리 작가의 작품이다. 그녀를 처음 알게 한 소설집 <주인님, 나의 주인님>은 갑의 폭력에 의한 을의 고통총천연색의 다양한 빛깔로 만들어낸다. 그녀의 세계에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을에게 닥친 불합리함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것을 즐기면서 잊으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폭력의 강도와 그에 따른 고통은 감소하거나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는 전아리 작가의 고민에 매우 크게 공감을 했던 기억이 있다.

 

21. 가족의 삶이 각자의 방식으로 뒹굴고 있으나 집구석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혜란은 자신이 미처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태풍 속에 대체 얼마나 많은 말들이 떠다니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38. 함께 추락하는 삶은 비극이다. 가족이라면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다시금 각자 품위 있는 삶의 궤도로 올라야만 한다.

 

45. 세상 더러운 면모는 최대한 모른 채 용훈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것들을 평안히 누리게끔 해주었건만, 더 이상 험한 꼴을 보지 않아도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최상의 자리를 만들어두었건만, 왜 이제 와서 모든 걸 망치려 하고 있는가.

55. 사랑은 건강한 싸움을 밑거름으로 자라나야 한다. 하지만 그녀의 집안에서는 그 누구도 싸우지 않는다. 문제가 없었을뿐더러 혹시라도 문제가 발발하면 가족 개개인의 방식대로 각자 회피하거나 해결했다. (...) 벽은 달콤함을 음미하며 허물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두가 안간힘을 써서 깨부숴야만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으나, 혜윤의 가족은 그녀와 달리 적막의 벽을 당연시하고 때로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그녀의 고민들<어쩌다 이런 가족>으로 넘어오면서 단순히 고민으로 남기를 거부한다. 전아리 작가는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자행되는 폭력의 해결을 위해 직접 개입하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전지적인 시점에서 인물의 생각과 결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매만진다. 그녀가 주목한 금수저 가정의 구성원들의 입장. 그리고 구성원 사이의 불만과 갈등과 해결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결정이었. 그녀는 고민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그녀는 과도할 정도로 작품에 개입한다.

 

2.

 

모든 가족은 막장을 겪는다. 이 가족은 조금 더 막장이었을 뿐!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톨스토이가 말했다. 하지만, 전아리 작가가 보기에는 현대의 가정이 불행한 이유는 같았다. 현대의 가정은 지금보다 더 큰 성공을 지향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더 큰 성공은 많은 재력과 커다란 권력을 원한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막장드라마를 만드는 가장 좋은 재료다. 결국, 혜윤과 혜란이 속한 이 가정은 막장이라서 불행하다.

 

막장 가운데서도 더 막장스럽다고 선언한 이 가정을 화목한 가정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전아리 작가는 그들에게 어떤 시련과 갈등을 불러올까? 그녀는 마치 가벼운 터치로 밑그림 그리듯이 온 가족의 내면을 훑으면서 그들에게 닥쳐온 엉뚱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발랄하게 이어나간다. 

 

이 소설에 살을 조금 붙이면 꽤 괜찮은 주말 드라마 한 편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과도한 개입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소설을 선호하지 않고, 또 상상력이 빈곤하다는 점에서도 아쉬운 소설이었다. 

3.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는 고아로 자란 가난한 남자였다. 고아로 자랐기에 가정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남자였다, 알고보니 그녀는 부잣집 딸이었다. 부자 아빠와 엄마는 그 남자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는다. 여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부모의 기대를 어긴 적이 없기에 가난한 남자를 사랑한다고 부모에게 말하기가 두렵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부모가 도저히 반대할 수 없을 만큼 큰일을 저지른다.

언니에게 쏠린 과도한 관심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했던 여자의 동생은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남자의 선의를 이용한다. 남자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한다. 이제 이 가정의 평화는 가난한 남자가 어떤 남자인가에 달렸다. 다행스럽게도 가난한 남자는 좋은 남자였다. 좋은 남자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여자가 그에게 반한 것을 설명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가난하지만 좋은 남자. 그리고 동생을 사랑하는 또 한 명의 좋은 남자는 적막의 벽으로 사방이 막힌 막장 가정의 갈등을 해결한다. 결국, 그들은 부모의 인정을 받는다. 그렇게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는 행복하게 살았다.

 

전형적인 한국드라마의 줄거리다. 이러한 상황을 표현하는 문장 중에 마음에 드는 문장이 제법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이 작품을 훌륭한 작품이라고 인정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91. 모든 완벽함에는 그만한 희생이 따른다. 시간, 체력, 실패에 대한 회복. 무능력한 부분에 대한 인정,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혜란이네 집안이 완벽하다면 과연 희생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모두가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모두들 자신의 희생 따위는 당치도 않다고 생각하며 외면하기만 하는 불완전한 집안인 걸까. 

92. 이 세상에 뚫리지 않는 방어벽은 없으며 답이 없는 문제 또한 없다. 근사치에 가까운 답이라도 보이지 않는 것은 애초에 문제에 오류가 있거나 문제 자체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거다. (...) 그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녀의 문제가 정확한 문제로 물음표를 찍게끔 도와주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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