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1. 다름

피츠버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부모로부터 동양인의 외양을 물려받은 이민자 2세 출신의 소설가. 셀레스트 응. 그녀가 쓴 다문화 가정의 비극을 다룬 소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이 소설은 그녀가 미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인종차별과 더불어 몇가지 다름에 대해서 매우 집약적으로 담아낸 소설이다. 3인칭 화자의 목소리로 서사되는 이 소설의 배경은 1950년대와 1970년대 사이를 왕래한다.  

다문화 가정의 아버지인 제임스 교수는 '다름'을 거부한다. 그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의미에서는 항복을 선언한다. 타인으로부터 쏟아지는 차별어린 시선은 마치 그가 우리에 갇힌 동물이 된 것처럼 부담이었고 고통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다름'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미국사회에 속한 미국인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백인 아내와 결혼했고, 자식들 중에서 갈색눈이 아닌 푸른 눈의 둘째딸 리디아를 가장 사랑한다.

한편, 제임스의 부인인 메릴린은 제임스와는 반대로 '다름'을 원한다. 그녀가 자랐던 시대인 1950년의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사회적으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군 (의사, 변호사)에 진출한 여성은 극소수였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남성에게는 기술을, 여성에게 가사를 가르쳤고, 가정교사였던 메릴린의 어머니는 메릴린이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의 한계에 저항한다. 그녀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이과수업을 들었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다 다른 외양의 남편에 첫눈에 반해서 결혼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학업을 계속해도 이해해 줄 것이라는 기대심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 치여살던 어느날 성공한 이웃의 삶을 보면서 질투심에 휩싸여 꿈을 이루기 위해 가출을 하기도 한다.

그녀의 딸 리디아는 엄마가 돌아오면 엄마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날 이후부터 메릴린의 눈에 비친 리디아는 재능이 빛나는 소녀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엄마가 좋아할만한 것을 찾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메릴린은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닮아서 똑똑한. 자기의 꿈을 이루어줄 딸 리디아를 가장 사랑한다. 그렇게 리디아가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책을 비롯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지원하기 시작한다.

2. 리디아

남들과 다른 얼굴 생김새와 피부 색깔이 싫었던 아버지와 반대로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던 어머니의 관심과 애정은 세 자녀 가운데 유독 리디아에게만 쏠린다. 오빠 네스는 기대없이 혼자서 우주과학자를 꿈꾸고, 동생 한나는 천덕꾸러기로 자라서 그런지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웠다. 그런데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의 시작은 아이러니 하게도 리디아의 죽음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9. 리디아는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1977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의 연쇄작용.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은 리디아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라는 질문과 그것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진실을 통해서 미국내 다문화 가정이 겪는 슬픔, 부모가 자녀의 삶과 꿈을 통제하는 행위가 낳는 부작용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리디아는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자책감 즉, 수능성적에 비관해 목숨을 끊는 죽음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의미로 죽게 된다는 사실이다. 리디아의 생각은 숭고한 정신이며, 이 소설을 평범한 소설에서 빛나는 소설로 만들어 준다.

3. 부모의 기대. 로맹 가리와 김연아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모두 로맹 가리나 김연아가 될 수는 없다. 이들은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한 대표적인 존재이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이 리디아의 죽음으로 말하려 하는 것은 어머니의 기대가 자녀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내지 못하는 더 많은 가능성에 대한 우려들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은 막연히 부모 자신의 욕망인 것도 사실이고, 리디아의 경우처럼 부모가 요구하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오인하여 소질없는 분야에 시간을 보내다가 나중에서야 이 길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224. 마지못해 그들 우주의 중심이 된 리디아 자신은 매일같이 세상을 한데 뭉치고 있었다. 리디아는 부모의 꿈을 흡수한 채 내부에서 솟아나오려는 거부반응을 조용히 억눌렀다. (...) 리디아는 부모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심지어 부모가 요구하지 않을 때도 알았다. 매번 그 일은 부모의 행복을 위해 교환하는 작은 거래 같았다. 그래서 여름마다 대수를 공부했고, 드레스를 입고 신입생 댄스파티에 갔고, 대학에서 생물학 강의를 들었다. 여름 내내,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모두 말이다. 응, 하고 싶어. 하고 싶어. 하고 싶어, 라는 말을 하면서.   

잠시 부모가 자식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말하는 최근의 여러 사례를 생각해보면. 조정래의 경우는 부모는 욕심을 거둬야 한다. 부모와 자녀는 독립적인 존재다. 자녀가 원하는 꿈을 지원해주면, 먹고사는 데는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아리의 경우는 부모가 원하는 삶으로 통제해봤자 자녀는 결국 부모의 기대와 다르게 엇나가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박수홍의 경우에는 자신을 관찰하는 부모를 향해 자기는 이런 사람이라고 보란듯이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한다.  

뭐랄까 이 소설은 우리가 원하는 불가능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한다. 무엇이 되었을 경우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를 상상한다. 성공이 아닌, 실패를 말한다.  

4. 잔존하는 기대심리. 도박 

225. 그해 12월에 리디아는 가지 방에서 책가방을 열고 빨간색 펜으로 55점이라고 적힌 물리학 시험지를 꺼냈다.

리디아는 조금씩 예감하고 있었고, 비로소 목격한다. 유독 자신이 존중받았고, 보호받았던 애정어린 시선. 그것으로 둘러싸여 있던 안전한 세계가 서서히 해체되어가고 있음을. 해체와 동시에 리디아 자신은 부모의 기대를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리디아의 치부를 모두 알고 있는 오빠 네스의 배신과 냉소(어떤 의미에서 안타까움). 무너져가는 그녀의 세계를 비집고 들어오는 네스의 소리없는 공격(자기가 이루지 못할 꿈을 네스가 먼저 점령). 그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들려오는 홀로서기의 사명감은 부모의 기대가 만들어낸 자신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무기로 삼아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을 억지로 벗기려고 한다.

7, 317. 모든 운동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하나는 내려와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다. 한 명이 도망가면 다른 한 명은, 영원히 갇혀 버린다.

초월을 꿈꾸는 리디아. 그것은 현재의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인 하나의 도박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그녀가 죽음을 맞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의 제목처럼 "내가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정말 슬픈 가정을 하자면. 어쩌면 리디아는 자신이 도박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작용과 반작용의 진리를 현실세계에 적용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그녀는 스스로 반작용이 되어 누군가 작용할 수 있게 하는 희생양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녀의 말처럼 당신이 갇혀야만 또 다른 누군가가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픈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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