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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평점 :
1.
세 번째로 만나는 전아리 작가의 작품이다. 그녀를 처음 알게 한 소설집 <주인님, 나의 주인님>은 갑의 폭력에 의한 을의 고통을 총천연색의 다양한 빛깔로 만들어낸다. 그녀의 세계에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을에게 닥친 불합리함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것을 즐기면서 잊으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폭력의 강도와 그에 따른 고통은 감소하거나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는 전아리 작가의 고민에 매우 크게 공감을 했던 기억이 있다.
21. 가족의 삶이 각자의 방식으로 뒹굴고 있으나 집구석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혜란은 자신이 미처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태풍 속에 대체 얼마나 많은 말들이 떠다니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38. 함께 추락하는 삶은 비극이다. 가족이라면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다시금 각자 품위 있는 삶의 궤도로 올라야만 한다.
45. 세상 더러운 면모는 최대한 모른 채 용훈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것들을 평안히 누리게끔 해주었건만, 더 이상 험한 꼴을 보지 않아도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최상의 자리를 만들어두었건만, 왜 이제 와서 모든 걸 망치려 하고 있는가.
55. 사랑은 건강한 싸움을 밑거름으로 자라나야 한다. 하지만 그녀의 집안에서는 그 누구도 싸우지 않는다. 문제가 없었을뿐더러 혹시라도 문제가 발발하면 가족 개개인의 방식대로 각자 회피하거나 해결했다. (...) 벽은 달콤함을 음미하며 허물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두가 안간힘을 써서 깨부숴야만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으나, 혜윤의 가족은 그녀와 달리 적막의 벽을 당연시하고 때로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그녀의 고민들은 <어쩌다 이런 가족>으로 넘어오면서 단순히 고민으로 남기를 거부한다. 전아리 작가는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자행되는 폭력의 해결을 위해 직접 개입하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전지적인 시점에서 인물의 생각과 결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매만진다. 그녀가 주목한 금수저 가정의 구성원들의 입장. 그리고 구성원 사이의 불만과 갈등과 해결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녀는 고민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그녀는 과도할 정도로 작품에 개입한다.
2.
모든 가족은 막장을 겪는다. 이 가족은 조금 더 막장이었을 뿐!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톨스토이가 말했다. 하지만, 전아리 작가가 보기에는 현대의 가정이 불행한 이유는 같았다. 현대의 가정은 지금보다 더 큰 성공을 지향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더 큰 성공은 많은 재력과 커다란 권력을 원한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막장드라마를 만드는 가장 좋은 재료다. 결국, 혜윤과 혜란이 속한 이 가정은 막장이라서 불행하다.
막장 가운데서도 더 막장스럽다고 선언한 이 가정을 화목한 가정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전아리 작가는 그들에게 어떤 시련과 갈등을 불러올까? 그녀는 마치 가벼운 터치로 밑그림 그리듯이 온 가족의 내면을 훑으면서 그들에게 닥쳐온 엉뚱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발랄하게 이어나간다.
이 소설에 살을 조금 붙이면 꽤 괜찮은 주말 드라마 한 편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과도한 개입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소설을 선호하지 않고, 또 상상력이 빈곤하다는 점에서도 아쉬운 소설이었다.
3.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는 고아로 자란 가난한 남자였다. 고아로 자랐기에 가정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남자였다, 알고보니 그녀는 부잣집 딸이었다. 부자 아빠와 엄마는 그 남자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는다. 여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부모의 기대를 어긴 적이 없기에 가난한 남자를 사랑한다고 부모에게 말하기가 두렵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부모가 도저히 반대할 수 없을 만큼 큰일을 저지른다.
언니에게 쏠린 과도한 관심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했던 여자의 동생은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남자의 선의를 이용한다. 남자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한다. 이제 이 가정의 평화는 가난한 남자가 어떤 남자인가에 달렸다. 다행스럽게도 가난한 남자는 좋은 남자였다. 좋은 남자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여자가 그에게 반한 것을 설명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가난하지만 좋은 남자. 그리고 동생을 사랑하는 또 한 명의 좋은 남자는 적막의 벽으로 사방이 막힌 막장 가정의 갈등을 해결한다. 결국, 그들은 부모의 인정을 받는다. 그렇게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는 행복하게 살았다.
전형적인 한국드라마의 줄거리다. 이러한 상황을 표현하는 문장 중에 마음에 드는 문장이 제법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이 작품을 훌륭한 작품이라고 인정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91. 모든 완벽함에는 그만한 희생이 따른다. 시간, 체력, 실패에 대한 회복. 무능력한 부분에 대한 인정,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혜란이네 집안이 완벽하다면 과연 희생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모두가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모두들 자신의 희생 따위는 당치도 않다고 생각하며 외면하기만 하는 불완전한 집안인 걸까.
92. 이 세상에 뚫리지 않는 방어벽은 없으며 답이 없는 문제 또한 없다. 근사치에 가까운 답이라도 보이지 않는 것은 애초에 문제에 오류가 있거나 문제 자체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거다. (...) 그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녀의 문제가 정확한 문제로 물음표를 찍게끔 도와주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