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이 불편한 사람들
가나마 다이스케 지음, 김지윤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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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칭찬이 불편한 사람들>에서는 책 제목처럼 칭찬을 꺼리고, 주목을 받거나 서로 아는 척하는 것도 불편해하는 청춘들. 현재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거나 취업을 앞두고 있는 2030 청년에 대해서 저자가 대학에서 교수로 일을 하며 경험한 사실들과 관련 통계자료를 곁들여 일본청년들은 왜 주목받기 싫어하는지 이유를 살펴보고 있다.

2.

조금 더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작가가 칭찬을 꺼리고 주목을 받기 싫다고 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는 행동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22p
가령 다섯 명이 순서를 정할 때 세 번째나 네번째 정도를 노린다.
시키는 일은 하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묻어간다.
질문은 하지 않는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
경쟁을 싫어한다.

이러한 행동 특성들을 예로 들며 저자는 일본의 2030세대들은 '착한 아이 증후군'에 빠져있다라는 진단을 내린다. 남들 앞에서 튀지않는 행동을 하려는 2030세대를 이해하고자 관련 설문자료나 통계자료 등을 들어가며 설명한다.

3.

회사들은 주체성이라는 명분아래 젊음의 에너지를 오롯이 집중해 줄 수 있는 학생을 찾기 위해 가족같은 회사를 표방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게 지원한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좋은게 좋은거라는 식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와 매우 닮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등분배, 횡렬의식 등. 자신에게만 다른 결과로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일본 청년들. 중요한 상황일 수록 혼자 떨어져있지 않으려하고 묻어가려는 일본 청년들. 도전 보다는 안전을 선택하는 일본 청년들.

젊은 사원이 활약할 수 있는 회사라는 설명을 듣자마자 그 회사에 뭔가 꿍꿍이가 있고, 착취를 당하지 않을까 방어기제를 드러내는 일본의 청년들 모습. 어딘가 낯설지 않은 모습들이다.

4.

솔직히 말해서 가나다 다이스케 작가는 '착한 아이 증후군'에 빠져있는 2030청년들을 자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는 듯 하다. 기업자정신 운운하며 일본 청년들은 자신감과 도전의식이 부족하고, 지시한 것만 하는 청년은 결국 정답을 가르쳐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고 표현하는 내용을 보고 있으면, 지금 청년들은 무기력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이 상황을 깨고 부수고 나와야 할 것 처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성향이 강하다.

여기에 살짝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물론, '착한 아이 증후군'에 빠지게 된 것은 전부 다 지금 세대 잘못이 아니다. 버블경제 이후 불황기를 연속으로 겪은 세대라는 것과 이러한 사회를 만들어낸 어른들의 문제가 크다라는 식으로 변호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비율로 보면 7:3 내지 8:2 같은 느낌으로 청년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해줘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아래의 문장은 극히 공감가는 내용이다.

253. 젊은이가 변화를 좋아하지 않고, 도전을 피하며, 수비적이고 내향적인 성향이 된 이유는 젊은이가 자라온 일본 사회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도전이나 변화가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도전해도 얻을게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역시 어른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지도 못하고, 하지도 않을 일을 젊은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착취일 뿐입니다.

5.

주제와 살짝 다르지만 이 부분은 좀 기록해두고 넘어가야겠다. 사람들이 함께 일해서 얻은 혜택을 받기만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무임승차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무임승차에 대한 기본 개념에는 나 역시 공감한다. 이게 뭐냐면 누군가 싸워서 얻어낸 결과를 아무런 대가없이 가져가려고만 하는 사람들 더 고약한 사람들은 애초에 그것만 노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문제에 관해서 저자도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다.

233~234p. 일본인은 타고나기를 협조적이고 협력을 잘하는 게 아니라 후환이 두려워서 다 같이 사이좋게 협력하는 것 뿐입니다. (~) 일본은 자원이 한정된 섬나라이기 때문에, 혹은 단일 민족이자 농경민족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한정된 토지, 한정된 자원속에서 무라 사회(마을 사회, 폐쇄적인 사회)를 형성해왔기 때문에 '와'(한자로는 화할 화로 다툼없이 조화롭게 지내는 것을 중요시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깨는 사람을 나머지 사람들이 협력해 무리에서 배제하는 일은 마을 존속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튼 이러한 무임승차를 하지 않기 위해 일본인들은 나름대로 서로 협력하며 노력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본인이 협력하는 이유는 성과를 얻기 보다는 좁은 사회에서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고, 미국인들은 협력하는 자체로 내적 동기가 일어나서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이런 내적동기가 선순환이 되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가는데. 일본은 협력하지 않으면 욕먹으니까 협력하기 때문에 순환이 일어나긴 해도 그렇게 파급력이 강하지 않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너무 성급한 일반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포레스트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해당 책을 끝까지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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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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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립습니다
노회찬 의원님이 안계신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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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자서전 - 바람만이 아는 대답
밥 딜런 지음, 양은모 옮김 / 문학세계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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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람만이 아는 대답> 이 책은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2016년에 읽기 시작했다. 대중가수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건. 그의 노랫말에 담겨있는 저항 시인 홍보전략에 포인트를 두고 책을 읽었다가 그렇지 않은 부분(?)에 실망하고, 몇 년 뒤에 다시 읽어보자 해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가 내려놓고, 올해 들어와서 다시 읽어봐야지 이런 짓을 반복하다가 2023년 여름에 와서야 완독을 하게 되었다.

4. 책을 다 읽은 뒤에 느낀 생각은 시간순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이 아니라서 모든 구조를 읽어내기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음악에 굉장한 관심 혹은 밥 딜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사전 지식이 있다면 다른 이야기일 테지만 궁금증 하나만 가지고 이 책을 읽는다면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밥 딜런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일생과 경험을 다양한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을 통해 풀어나가며, 그의 음악적 영감과 창작 과정, 그리고 그가 겪은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매우 솔직하게 털어놓는데 개인적으로는 그중에서 몇 가지 깨달음을 잠언처럼 가져오는 정도면 처음 읽는 독자로서는 충분한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5.

나는 실제로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어슴푸레한 안개를 응시하며 지적인 몽롱함 속에 떠도는 노래를 작곡하는 포크 뮤지션 이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엉뚱한 일들이 일어나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기적을 일으키는 설교자가 아니었다. 이 상황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p.128

시위자들은 우리 집을 찾아냈고 노래를 부르고 고함을 치면서 집 앞을 오르락내리락 행진했다. 그들은 내게 이 시대의 양심으로서의 임무를 회피하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그들을 어디론가 인도하라고 요구했다.

p.130

내 가사가 멋대로 추정되고, 그 의미가 논쟁에 휘말려 타락하고, 내가 반군의 대형, 저항운동의 대사제, 비국교도의 총책, 불순종의 대가, 식객의 리더, 배교의 황제, 무정부 상태의 대주교, 얼빠진 사나이로 공식 선정된 것에 진저리가 났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무튼 사람들은 끔찍한 호칭들을 붙이고 싶어 한다. 모두가 무법자를 암시하는 말들이었다.

p.132

개인적으로는 6년 전에 책을 읽다가 책을 덮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기 때문에 실망한 부분을 가져온다. 자신이 쓴 노래(그를 저항 시인으로 불리게 만들고 시대의 양심으로 만든 그 노래들) 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었거나 의도한 것보다 훨씬 과도하게 해석되었다. 밥 딜런은 그 노래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바꿀 리더로서 역할을 해내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지만 그는 이러한 과도한 관심에 진저리를 친다.

사람들로부터 저항운동의 왕자로 추앙되었지만 진저리를 친 그는 저항 시인으로 불렸지만 과도하게 부풀려진 사람이었다. 예술보다 삶이 중요했고,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가족이 휴식할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당신의 자유를 단단히 지켜내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사실 곱씹어 보면 밥 딜런이 맞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 또한 한 명의 시위자가 되어 밥 딜런이 절대적인 해결사가 되어주기만을 바랬다. 한 마디로 생떼를 부린 것이다. 아마 몇 년 전에 글을 썼더라면 시위대의 역할에 충실하여 왜 그가 상을 받아야 했는가 역정을 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점은 이러한 거부감을 밥 딜런의 겸손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밥 딜런은 그에게 집중되는 과도한 현상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보인다.

나 역시 그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를 높은 위치에 올려놓고, 저항 시인의 어떤 것을 기대한 것은 오독의 하나로서 반성한다.

6. 이런 고민으로 책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나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망설였는데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이 고민에 대한 답이 나왔다.

포크송들은 삶의 진실이 애매하고, 삶은 다소 거짓이라고 얼버무린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그것을 원한다. 다른 방법으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포크송은 천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연주하려면 그들 모두를 만나야 한다. 포크송은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연주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 따라 순간적으로 다르게 보일 수 있다.

p.82

나는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이기적인 생각으로부터 자신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존슨과 우디의 열광적인 노조 회합의 설교와 <해적 제니>의 구조를 가지고 순조롭게 앞으로 나갔다.

p.302

길 바깥은 위험했고,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랐지만 나는 아무튼 그 길을 따라갔다. 앞에는 번개를 가진 검은 구름이 잔뜩 낀 이상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오해하고 생각을 바꾸지 않았으나 나는 곧장 그리로 갔고 그 안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세계는 신이 주관하지도 않았지만 악마가 주관하는 것도 아니었다.

p.311

그에게 있어서 소명(calling)이었던 포크뮤직.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포크뮤직을 단단하게 담금질하기 위해서 도움을 받았던 스승의 의지를 이어받아 앞으로 묵묵히 걸어갔다. 그 결과 만들어진 그의 노래와 가사는 시위대의 기대처럼 저항시인의 왕자로서 무언가를 해내겠다고. 사회를 변혁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만들어낸 것들이 아니라 길을 걸으며 체득하고 느낀 그 자체였으며 위험한 길을 내디뎠던 발자국이었다.

밥 딜런이 마주친 1960년대의 미국 사회는 곪아왔던 여러 계층의 갈등이 표출하면서 그의 표현대로 '길 바깥은 위험했다.' 그렇지만 그는 얼마나 위험한지 어떻게 위험한지 몰랐지만 그의 앞에 놓여있는 길을 따라서 묵묵히 걸어갔다. 그냥 걸어갔다.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의 작품은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사회의 갈등을 투과하는 매개체였으며 이 결과가 많은 사람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매개체의 특성이 시대정신과 부합했다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탄생시켰을 당시 매개체에겐 지지자와 대중매체는 없었다.

한 사람의 인간과 그의 앞에 놓여있는 위험한 길이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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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0
쥘리앵 그린 지음, 김종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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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 하루에도 수백 번씩 짜증스러운 신비로 가득 찬 여러가지 삶이 우리의 인생과 나란히 나아간다. 그러면서도 삶은 우리에게 그 신비 중에서 어떤 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니 수수께끼와 비밀이 가득한 자기 자신의 운명에 집착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불안감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늦은 밤. 정체모를 남녀가 크게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경찰을 부르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필리프. 그가 유일했다.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필리프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필리프는 신비로운 내일에 온 정신을 쏟는 것 만으로도 삶이 벅차다머 그들을 지나친다. 그는 14페이지의 문장으로 자신의 비겁함을 정당화한다.  


위험에 빠진 여자를 못 본 체 하고 지나간 이 사건은 필리프라는 인간의 내면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것은 회복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 미세한 균열은 자신의 삶에서 생겨난 무수히 많은 잘못된 선택과 연결되어 점점 규모가 커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필리프라는 인간은 한없이 쪼그라든다. 필리프는 자신을 무능한 인간으로 판결내렸다. 


2.


필리프는 앙리에트와 결혼을 했지만, 처형인 엘리안과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엘리안은 필리프에게 욕망을 느끼고 있으며, 아내인 앙리에트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인 티스랑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관계로만 보면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인 설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모든 원인이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 접근하면 필리프의 균열을 재차 발견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등장인물 전체의 균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열등감을 채우기 위한 상대. 이들이 타인을 탐하는 이유는 단지 그 이유밖에 없었다. 


필리프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물려받은 유산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대대로 내려오는 회사까지 있는 큰 부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필리프라는 사람 자체가 인간적인 매력이 없으며, 그렇다고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능력치가 뛰어나지도 않었다. 이것은 필리프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인정하며 고백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지금 일어나는 이 비정상적인 가정파탄에 대해서 어렴풋하게 알고 있지만,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에 말이다. 


3. 


<잔해>의 주인공들은 통속적인 패러다임에 자연스레 녹아있다. 필리프는 어리고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여 자신에게 없는 인간적인 매력을 채웠다. 앙리에트는 돈많은 남성과의 결혼을 통하여 빈곤한 삶에서 탈출한다. 


현재 시점의 필리프는 법적으로는 부부사이라고는 해도, 둘 사이에 애정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렇게 혼자 남겨졌다. 현재 시점의 앙리에트는 안락한 삶을 살게 되자 매력적이지만 가난한 남자 티스랑과 얽히게 된다. 과거의 엘리안은 앙리에트보다 아름답지 못하다는 열등감에 필리프를 앙리에트와 이어주고, 그 대신 먹고 살만큼의 안락한 삶을 제공받았다. 그러나 현재의 엘리안은 앙리에트로부터 버려진 필리프를 차지하여 지금까지 보상받지 못했던 모든 것.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보상받으려 한다. 


4. 


쥘리양 그린은 <잔해>를 통해 이렇게 얽혀있는 주요 인물의 심리를 천천히 써내려간다. 한밤중의 아주 우연한 사건. 면밀히 따지고 보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 사건.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필리프 가정에 잠재되어 있는 복합적인 갈등을 하나씩 들쑤시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은 물론 책을 읽는 독자들까지 모두가 불편해진다. 알고는 있지만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좌절감은 나비효과처럼 몰아친다.  인간은 이토록 나약한가?라는 물음에 다시금 접근한다.


5.


물론, 가톨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수식어처럼 이 소설에는 초월적인 존재가 등장한다. 그 인물은 다름 아닌 필리프의 아들 로베르다. <잔해>의 초반부. 그러니까 자존감이 극도로 하락한 필리프에게 있어서 로베르는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였고 마주치기 싫은 존재였다. 하지만, 로베르와 친밀하게 지내기 시작하는 부분부터 필리프는 로베르를 보면서 과거의 자기 모습을 오버랩하게 된다. 그러니까 좌절감을 맛보지 않은 필리프의 과거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로베르. 이것은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한다. 


300. 어떤 인간 존재가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 아이도 자기처럼 겁을 먹은 것이다. 어둠 속에서 입을 열어 소리 없이 길게 웃었다. 그는 안개가 허파 속까지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아들의 어깨를 잡은 그의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이토록 커다란 기쁨과 갑작스러운 위안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몇 마디 말만으로도 자신이 더 이상 혼자다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충분하단 말인가? 갑자기 어마어마한 삶의 욕망이, 마치 강과도 같은 욕망이,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것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잔해>는 노련한 소설이다. 일말의 가능성이 생겼다고 모든 것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지지 않았다. 이 부분은 매우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던 오만했던 기억들이 필리프의 내면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렇게 희망과 좌절은 영원히 전투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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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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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인간이다. 사이코패스 하니까 가장 최근에 읽었던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이 떠오른다. 그 작품이랑 간단히 비교하자면. <종의 기원>이 타의에 의하여 억눌려왔던 사이코패스의 폭주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편의점 인간>은 사이코패스가 자기의 정체를 감추고 보통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2.


후루쿠라는 남들처럼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녀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관찰했고,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와 억양 등을 흉내내는 방식으로 평범한 사람 연기를 해온다. 인간에게는 '거울뉴런'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과 조금씩 닮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후루쿠라 같은 경우는 이러한 변화를 알면서 카멜레온처럼 자유자재로 이용한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98.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 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이런 마음가짐은 그녀는 18년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내 계속 되었고, 덕분에 별탈없이 살아왔다. 편의점의 일에 대해서도 프로페셔널졌고, 동료들도 그녀를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후루쿠라는 조금 더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을 부린다.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동창들의 모임에도 참석한다. 그녀의 가족도 후루쿠라가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잔인한 점은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질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린다는 것이다. 작가는 후루쿠라씨의 사이코패스적인 본성을 간헐적으로 내비침으로써 이것을 보여주는데. 특히, 울고있는 조카를 조용히 하는 간단한 방법을 탁자 위에 놓여있는 작은 칼을 보면서 생각하고 있는 장면(p.71)에서 후루쿠라는 극도로 불안정해진다. 동시에 독자는 우울해진다.


3.


이런 상황에서 시라하라는 부랑자가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으로 새로 들어온다. 그는 온몸에 자격지심과 심술을 덕지덕지 붙인 비호감스러운 남자였다. 시라하는 그저 혼활상대를 찾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런 사상을 거리낌없이 바깥으로 표출했다.


108.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은 삭제되어갑니다. 사냥을 하지 않는 남자,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 현대사회니 개인주의니 하면서 무리에 소속되려 하지 않는 인간은 간섭받고 강요당하고, 최종적으로는 무리에서 추방당해요.


109. 이 세상은 현대사회의 거죽을 쓴 조몬시대에요. 커다란 사냥감을 잡아오는 힘센 남자에게 여자들이 몰려들고, 마을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시집을 갑니다. 사냥에 참가하지 않거나 참가해도 힘이 약해서 도움이 안 되는 남자는 업신여김을 받죠.


시리하는 후루쿠라의 생각처럼 106. 피해자 의식은 강한데 자신이 가해자일지 모른다고는 생각지 않는 사고 회로를 가진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가 늘어놓는 불평이 터무니없는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을 거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 하기 위한 역겨운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4.


아이러니하게도 <편의점 인간>에서는 시라하의 존재를 서른여섯이 되도록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독신 여성인 후루쿠라를 보통 사람들의 눈에 정상인처럼 보이게끔. 정확히 말하자면, 혼기가 지난 후루쿠라가 시리하와 동거를 한다는 소식은 그녀의 주변사람로 하여금 ' 아 얘도 남자를 밝히는 보통 여자로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하는 존재로 그린다는 점이었다.   


후루쿠라에게 필요한 듯 보이는 존재. 이런 상황에서 사상 최악의 인물 시라하의 민낯이 가감없이 노출한다. 동거를 시작하면서 시라하는 조몬시대 운운하며 투덜거리던 사회의 불만을 후루쿠라에게 풀어버린다. 후루쿠라가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이용해서 시라하는 그 틈으로 숨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남자가 필요하니 시라하 당신을 받아들이고, 대신 나에게 자유를 달라고 주장하는 시라하의 논리는 역겨움 그 자체였다.


한편, 편의점 사람들은 후루쿠라를 못살게 군다. 일 하는 내내 시라하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녀에게 던진다. 일에 충실하고 싶은 후루쿠라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세금 따위로서 시라하의 찌질한 삶과 관련해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 만난 시라하의 제수는 시라하 만큼 최악인 인간이었다. <편의점 인간>의 등장인물들.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인물은 주인공 후루쿠라였지만, 후루쿠라 보다 더 사이코같은 인물이 바로 시라하와 그의 제수였다.


5.


시라하는 그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후루쿠라로부터 떨어질 생각이 없다. 오히려, 정상인이 되고 싶으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직장을 찾으라고 말한다. 후루쿠라는 그의 말을 따라서 일을 그만둔다. 일을 그만둔 시점에서 소설은 결말과 가까워진다. 일을 하지 않는 후루쿠라의 존재는 갈수록 희미해져갔다. 일을 하는 공간과 시간에 맞추어 움직이던 그녀가 그것이 사라짐으로써 무력감에 빠져든다. 빈둥빈둥거리다가 결국 면접자리를 따내고, 면접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편의점을 방문한다.


그곳에는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거리가 한눈에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낯선 편의점에 이끌려 버린다. 무의식적으로 빨려드는 순간 깨닫는다. 자신은 편의점에서 일을 해야만 존재할 수 있음을. 정상인이나 비정상인 같은 남들의 기준에 맞추어 발버둥쳤던 지난 시간은 헛된 시간이었고, 따라서 시라하라는 인간 따위 그녀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깨닫고, 시라하에게 이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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