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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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인간이다. 사이코패스 하니까 가장 최근에 읽었던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이 떠오른다. 그 작품이랑 간단히 비교하자면. <종의 기원>이 타의에 의하여 억눌려왔던 사이코패스의 폭주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편의점 인간>은 사이코패스가 자기의 정체를 감추고 보통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2.


후루쿠라는 남들처럼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녀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관찰했고,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와 억양 등을 흉내내는 방식으로 평범한 사람 연기를 해온다. 인간에게는 '거울뉴런'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과 조금씩 닮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후루쿠라 같은 경우는 이러한 변화를 알면서 카멜레온처럼 자유자재로 이용한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98.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 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이런 마음가짐은 그녀는 18년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내 계속 되었고, 덕분에 별탈없이 살아왔다. 편의점의 일에 대해서도 프로페셔널졌고, 동료들도 그녀를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후루쿠라는 조금 더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을 부린다.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동창들의 모임에도 참석한다. 그녀의 가족도 후루쿠라가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잔인한 점은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질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린다는 것이다. 작가는 후루쿠라씨의 사이코패스적인 본성을 간헐적으로 내비침으로써 이것을 보여주는데. 특히, 울고있는 조카를 조용히 하는 간단한 방법을 탁자 위에 놓여있는 작은 칼을 보면서 생각하고 있는 장면(p.71)에서 후루쿠라는 극도로 불안정해진다. 동시에 독자는 우울해진다.


3.


이런 상황에서 시라하라는 부랑자가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으로 새로 들어온다. 그는 온몸에 자격지심과 심술을 덕지덕지 붙인 비호감스러운 남자였다. 시라하는 그저 혼활상대를 찾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런 사상을 거리낌없이 바깥으로 표출했다.


108.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은 삭제되어갑니다. 사냥을 하지 않는 남자,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 현대사회니 개인주의니 하면서 무리에 소속되려 하지 않는 인간은 간섭받고 강요당하고, 최종적으로는 무리에서 추방당해요.


109. 이 세상은 현대사회의 거죽을 쓴 조몬시대에요. 커다란 사냥감을 잡아오는 힘센 남자에게 여자들이 몰려들고, 마을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시집을 갑니다. 사냥에 참가하지 않거나 참가해도 힘이 약해서 도움이 안 되는 남자는 업신여김을 받죠.


시리하는 후루쿠라의 생각처럼 106. 피해자 의식은 강한데 자신이 가해자일지 모른다고는 생각지 않는 사고 회로를 가진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가 늘어놓는 불평이 터무니없는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을 거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 하기 위한 역겨운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4.


아이러니하게도 <편의점 인간>에서는 시라하의 존재를 서른여섯이 되도록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독신 여성인 후루쿠라를 보통 사람들의 눈에 정상인처럼 보이게끔. 정확히 말하자면, 혼기가 지난 후루쿠라가 시리하와 동거를 한다는 소식은 그녀의 주변사람로 하여금 ' 아 얘도 남자를 밝히는 보통 여자로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하는 존재로 그린다는 점이었다.   


후루쿠라에게 필요한 듯 보이는 존재. 이런 상황에서 사상 최악의 인물 시라하의 민낯이 가감없이 노출한다. 동거를 시작하면서 시라하는 조몬시대 운운하며 투덜거리던 사회의 불만을 후루쿠라에게 풀어버린다. 후루쿠라가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이용해서 시라하는 그 틈으로 숨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남자가 필요하니 시라하 당신을 받아들이고, 대신 나에게 자유를 달라고 주장하는 시라하의 논리는 역겨움 그 자체였다.


한편, 편의점 사람들은 후루쿠라를 못살게 군다. 일 하는 내내 시라하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녀에게 던진다. 일에 충실하고 싶은 후루쿠라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세금 따위로서 시라하의 찌질한 삶과 관련해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 만난 시라하의 제수는 시라하 만큼 최악인 인간이었다. <편의점 인간>의 등장인물들.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인물은 주인공 후루쿠라였지만, 후루쿠라 보다 더 사이코같은 인물이 바로 시라하와 그의 제수였다.


5.


시라하는 그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후루쿠라로부터 떨어질 생각이 없다. 오히려, 정상인이 되고 싶으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직장을 찾으라고 말한다. 후루쿠라는 그의 말을 따라서 일을 그만둔다. 일을 그만둔 시점에서 소설은 결말과 가까워진다. 일을 하지 않는 후루쿠라의 존재는 갈수록 희미해져갔다. 일을 하는 공간과 시간에 맞추어 움직이던 그녀가 그것이 사라짐으로써 무력감에 빠져든다. 빈둥빈둥거리다가 결국 면접자리를 따내고, 면접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편의점을 방문한다.


그곳에는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거리가 한눈에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낯선 편의점에 이끌려 버린다. 무의식적으로 빨려드는 순간 깨닫는다. 자신은 편의점에서 일을 해야만 존재할 수 있음을. 정상인이나 비정상인 같은 남들의 기준에 맞추어 발버둥쳤던 지난 시간은 헛된 시간이었고, 따라서 시라하라는 인간 따위 그녀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깨닫고, 시라하에게 이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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