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폴커 라인하르크의 <마키아벨리>평전은 마키아밸리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추적한다. 이탈리아 피렌체공화국에서 생존했던 기간인 1469년부터 1527년까지 그의 사상적 스승이었던 루크레티우스의 <원자론>의 영향을 받아 원자가 자유롭게 빗나가는 것처럼 인간도 자유로운 의지로 삶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가는 것을 선호했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포르투나(운)도 포르투나 겠지만 무엇보다도 비르투(재능)를 펼칠 수 있는 사회적 제약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마키아벨리가 살고 있었던 피렌체 공화국은 겉으로 보기엔 매우 훌륭한 공화정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메디치가문에 의해 지배당하는 곳이었다.
11p. 가장 많은 특혜를 누린 파벌의 정상에 있는 메디기차의 지배는 진정한 공화국의 모습을 외면하고 있었다. 메디치가가 지배한 피렌체에서는 아첨꾼, 동조자, 간신, 기회주의자가 득세했다. 이들은 비굴한 복종의 대가로 권력의 일부를 향유했고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았다. (중략) 종교도 기만이다. 기독교는 저항 대신 수난을 가르침으로써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기만한다.
2. 마키아벨리는 변변찮은 집안의 가난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메디치가문이 주도하는 정치세력에 편입될 수 없었다. 그러다가 1498년 부터 1512년까지 메디치가문이 피렌체에서 권력을 잃어버린 잠깐의 시간동안 공화국의 제2서기관으로 일할 수 있었다.
제2서기관으로서 유능함을 보인 마키아벨리를 믿고, 피렌체 공화국의 대평의회는 그에게 막중한 외교임무를 맡겼다. 그렇지만 아쉬운 점은 이들은 체제를 유지하는데 급급하여 피렌체 공화국을 더 부강하게 만드는데는 실패했고, 적당한 타협과 굴종이라는 지시를 받은 마키아벨리는 상황을 역전시키고자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지만 역부족이었음을 라인하르트 작가는 설명하고 있었다.
105p.탐욕은 설령 나중에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더라도 지금 당장 자신이 가진 권력과 부를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다. 가장 쓰라린 통찰은 피렌체 정치에 관한 것이었다. 망설임과 너그러움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3. 어쨌든 마키아벨리는 서기관 임무를 수행하면서 피렌테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군사와 재정의 측면에서 문제점이 많았다.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고 독일 등 여러 국가의 가운데에 끼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렌체는 자국민의 군대를 육성하지 않았다.
138p. 국가는 늑대와 같다. 조금이라도 약점을 보이면 갈기갈기 찢길 것이다. (중략) 제발 강력한 군대를 마련해 존중받는 자가 되어라! 그렇지 않으면 노리갯감이 되거나 더 심하면 체사레 보르자와 같은 다른 강자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프랑스와의 동맹에 의존하고, 용병과 용병대장을 모집하여 이들에게 비용을 지출하는 등. 국가의 방어를 직접 책임지지 않고 타인으로 하여금 책임지게 했는데 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이들은 어쨌든 돈만 벌면 된다는 주의라 피를 흘리려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한 것과 마키아벨리는 로마시대 군대처럼 피렌체에도 자국의 군대를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인접한 스위스의 군대처럼 피렌체 민병대를 구성하긴 했지만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 군대조차 구성되지 않았으니 군사전법 등 전투수행능력을 쌓을 수 없었다.
416p. 1527년 몹시 추운 봄 마키아벨리가 30년전부터 이탈리아에 적시한 모든 위기 징후가 동시에 나타났다. 용병에게는 싸울 동기가 없었고 최고 지휘관에게는 싸우려는 의지가 없었다. 권력자는 불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고 민중은 피할 수 없는 위험에 두려움을 느꼈다. 국가의 재정은 학화했고 국민의 애국심은 부족했으며 외부에 대한 무방비 상태에 이르렀다.
4. 마키아벨리하면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군주론>의 책에 담긴 정치사상일 것이다. 2009년도에 책을 읽고 짧은 블로그에 남긴 감상을 찾아보니 입에 발린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내용이 담겨있으므로 읽어볼 것을 권하기도 했었다.
라인하르트 작가가 보기에도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문이 지배했던 피렌체 공화국에서 배척당했던 시기 책과 그가 써내려간 극작을 통해서, 서기관으로 일하면서 여러 군주를 만나면서 깨달은 것은 군주에게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사고나 도덕적 우월감. 그러니까 내가 착하고 잘하면 다 잘될거야 같은 류의 입 발린 소리를 하는게 아니라 잔혹할 수 있겠지만 실제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중심으로 군주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주의 덕목으로 사랑과 두려움 중에 오히려 두려워하는게 낫다고 표현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180p. 베토리가 보기에 군주의 큰 씀씀이는 적절히 실천만 된다면 덕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이를 그때그때 상황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외양이 아니라 본질이었다. 성공적인 군주는 대담하다는 명성을 얻어야 했다. 이와 동시에 돈은 목표에 맞게 권력 강화를 위해 투입해야 했다.
예로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인문학적 사고와 부드러운 덕으로 통치해야 한다고 설파했던 프로이센의 어느 군주(프리드리히 2세)가 실제 전쟁이 벌어지고 전쟁을 끝내고 국면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아주 많은 수(100만명이상)의 사람이 희생되었음에도 이 전쟁이 순수한 긴급 방어라고 주장했했다는 내용은 마키아벨리즘을 인정하는 하나의 예로 사용되었다.
5. 이 책에는 많은 읽을거리가 있다. 그 시대의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포르투나와 비르투만 명심하면 될 것 같다. 그렇다고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최우선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나, 어떤 화제나 시선 그리고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 전쟁을 활용하려는 생각 등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포르투나만 믿지말고, 비르투를 향상시키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21p. 필요할 때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능력이 필요보다 우선하려면 그 능력은 강력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