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1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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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21년 공연된 작품으로 24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직접 연출했다.  

드디어 클레온이 죽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생전에 그렇게 헐뜯던 그를 애잔한 마음으로 놓아줄 것인가 아니면 시체까지도 물어 뜯을 것인가.
나의 감상 포인트다.

B.C.422년 스파르타 장군 브라시다스와의 암피폴리스 전투에서 브라시다스와 크레온 둘 다 죽었다.
그 후 1년이 지났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참다 못한 포도재배인 트뤼가이오스는 한가지 계략을 꾸민다.

사람이 먹을 것도 없을 만큼 굶주리던 시기에 넘쳐나는 것은 똥 뿐이다.
그래서 똥을 먹고 사는 쇠똥구리를 크게 키워 그놈을 타고 하늘 나라로 가서 제우스와 한 판 뜰 셈이다.
전쟁터에서 팔다리가 잘려 죽거나 전쟁 때문에 굶어죽는 것보다 신들과 맞짱 뜨다 죽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지천에 널린 똥을 먹여 말만큼 자란 쇠똥구리를 타고 하늘로 오른 트뤼가이오스는 한산한 신전에서 헤르메스를 만난다.
헤르메스 왈, 신들이 인간들에게 전쟁을 그만둘 여러 번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여전히 전쟁을 하고 있는 인간들에 실망해
잠시 신전에서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 사이 '전쟁'이 절구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등 그리스 모든 나라를 넣어
빻아없애버릴 거란다.

오호! 통재라!! 인간세상은 이렇게 끝나버릴 것인가.
'전쟁'이 다가와 절구에 메가라, 보이오티아, 시켈리아 등을 넣어서 절구공이로 빻으려는데
이런, 절구공이가 없다. '전쟁'의 절구공이로 사용되던 클레온과 브라시다스가 죽었던 것이다.
'전쟁'은 새로운 절구공이를 찾으러 떠난다.

인간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트뤼가이오스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면 전쟁을 그만두겠다고 헤르메스를 열심히 설득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합심해 '전쟁'의 신이 돌더미에 파묻어 빛도 못보던 '평화'와 '풍요', '축제'를 구해낸다.
트뤼가이오스는 '평화'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평화롭게 살겠다고 약속한 후
'풍요', '축제'도 함께 구출해 아테네로 돌아온다. 쇠똥구리는 제우스의 수레에 묶여 번개를 나르고 있다.

아테네에 '평화'가 찾아오고 '풍요'가 넘치고 '축제'가 벌어지자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다.
전쟁 때문에 먹고 살던 예언가와 무기 제조업자들만 울상인 가운데,
트뤼가이오스와 '풍요'의 결혼식이 모두의 환영 속에 질펀하게 펼쳐진다.

이 작품이 공연된 후 10일 뒤에 '니키아스 휴전조약'이 체결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이 작품의 감상포인트.
산 아리스토파네스는 죽은 클레온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몇 구절만 살펴보자.

"내 생각에 쇠똥구리는 클레온을 암시하는 것 같은데요.
 그 자는 저승에 가서 똥물을 먹고 있으니까 말이오." - 47~48행

"존경스러운 여신 아테나이시여! 그자가 죽었다니 잘됐구나.
 도시의 처지에서 보면 그자는 알맞은 시기에 죽었으니까." - 272~273행

"헤르메스 나리. 더는 말씀하지 마세요.
 그자는 저 아래 어디에 있든 거기 있게 내버려두세요.
 그자는 이미 우리 사람이 아니라 당신 사람이니까요.
 당신이 그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시든 -
 설사 그자가 살아 있을 때는 악당이고,
 허풍선이고, 밀고자고, 선동가고,
 말썽꾸러기였다손 치더라도 - 
 지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당신 사람을 욕하는 거에요." - 648~656행

클레온 사후에도 그의 조롱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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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1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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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22년 공연된 작품으로 23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극본을 쓰고 필로니데스가 연출했다.


작품 제목인 '벌'은 아테네 사람들을 상징한다. 벌은 일단 화가 나면 그보다 성마르고 무자비한 동물은 없으며, 벌집에 떼지어 살고, 일벌이 누구든 닥치는 대로 찔러 그 덕으로 나머지가 먹고 산다. 아테네인들도 전투에 임하여 사납고, 법정에 모여 재판하며 살고, 농사가 아니라 남을 약탈해 먹고사는 것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어느덧 10년째로 접어들었고 주전파 아테네의 클레온과 스파르타의 브라시다스 때문에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클레온은 민심을 잡기 위해서 배심원의 일당을 2오블로스에서 3오블로스로 인상했다.('기사' 주 9 참조) 왕년에 페르시아 전쟁에 참전했으나 지금은 배심원의 일에만 만족하며 살아가는 노인무리들은 클레온을 지지하며 클레온 비판세력을 오히려 독재자나 음모자로 몰아붙이며 벌이 침을 쏘듯이 가차없이 공격한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노인 필로클레온(Philokleon, 클레온을 사랑하는 자, 즉 친클레온파를 상징함)은 소송이란 권력놀이에 재미들린 재판광이다. 반대로 그의 아들 브델뤼클레온(Bdelykleon, 클레온을 미워하는 자, 즉 반클레온파를 상징함.)은 그런 아버지가 걱정스럽다. 필로클레온은 얼마나 재판을 좋아하던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 재판정에서 밤을 새는 위인이다. 마침내 아들이 아버지를 집에 감금하자 배심원 노인무리가 그를 구하러 온다. 이제 부자지간에 누구의 말이 맞는지 논쟁이 붙는다.

먼저 아버지 필로클레온은 배심원의 권한이 왕권 못지않다며 무척 즐거워한다. 그들 앞에서 탄원자들, 부자들이 무릎꿇을 뿐만 아니라 권력자들까지 아부를 하며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들 브델뤼클레온은 배심원일이란 실제로는 권력자들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권력자들은 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누구나 '독재'나 '음모'로 몰아붙여 입을 막으려 하고 있으며, 동맹국들에게서 엄청난 뇌물을 받아 그중의 일부분만 배심원들이나 시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그들이 챙기고 있다고 말이다.

승부가 났다. 한껏 화가 나 엉덩이에 붙은 침이 바짝 섰던 배심원 노인무리들이 물러가자 집에는 부자만 남았다. 이제 필레클레온에게는 삶의 낙이 없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위해 집 안에서 편안하게 재판할 수 있도록 한다. 첫번째 피고는 부엌에서 시켈리아산 치즈를 훔쳐먹은 라베스(시칠리아 섬을 돌며 여러 도시에서 뇌물을 받아먹은 아테네 장군 라케스를 상징한다.)라는 개다. 원고는 또 다른 개다.(아리스토파네스는 클레온 얘기를 계속 우려먹는다. 시켈리아의 스팍테리아 섬에서 스파르타군을 인질로 잡은 클레온을 비판하는 것이다. 민중선동가 클레온(kleon)과 개를 뜻하는 kyon은 발음이 비슷하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개는 무죄방면된다.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사치스런 옷과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이제는 남들처럼 즐기며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아가기를 권한다. 하지만 이때까지와는 다른 생활에 필로클레온은 매사에 서툴다. 실수투성이에다 남의 손가락질을 받을 뿐이다. 그는 재판광으로 돌아가야 할까, 서툴더라도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까.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다.

투키디데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한 당시 아테네 사람들이 사치스러운 반면에 스파르타 사람들은 검소하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 작품에서 민중을 선동하는 클레온과 뇌물을 받아먹는 라케스 등 시민의 등을 치는 권력자들을 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명예로운 세대의 기억을 잊고 재판놀이에 푹 빠진 노인들과 흘러넘치는 재물에 흥청망청하는 젊은이들도 욕하고 있다. 전쟁을 통해 명예 뿐만 아니라 재물까지 받아들인 아테네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우리 모두 그 결과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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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1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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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24년 공연된 작품으로 21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처음으로 직접 연출했다.


이 작품의 주요 등장 인물인 클레온과 니키아스, 데모스테네스에 대해서 우선 살펴보자.



펠레폰네소스 전쟁(B.C.431~404)의 첫 몇년 간 아테네의 명장 페리클레스가 짜놓은 틀대로 아테네는 도시 전체에 방벽을 쌓아 적군의 침략을 방어하면서 함대를 통해 적군에 피해를 입히는 전략을 수행한다. 하지만 페리클레스 사후(BC 429) 뒤 이은 장군들에 의해 전쟁은 난타전으로 변한다. 전쟁은 아테네 본토 뿐만 아니라 이오니아, 트라키아,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가리지 않고 그리스 전역과 그리스 식민지 전역에서 동시에 이뤄진다. 


펠레폰네소스 전쟁 7년째인 B.C.425년 데모스테네스 장군이 이끄는 아테네군이 필로스를 점령하고 스팍테리아섬의 스파르타군을 포위한다. 이들의 처리를 두고 니키아스와 클레온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자 클레온은 자기에게 20일만 주면 섬에 있는 스파르타군을 모두 죽이거나 생포해오겠다고 공언한다. 마침내 클레온이 후속 아테네군의 장군으로 선출되어 스팍테리아섬으로 출정하고 마치 거짓말처럼 20일만에 스파르타군을 생포한다. 이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가장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투키디데스도 말한다.


영화 300으로 알려진 페르시아 전쟁의 테르모퓔레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300명의 전사들은 결사의 전투 끝에 거의 모두 죽음을 당했다. 전투에서 살아난 두 명의 스파르타인 중 판티테스는 목매달아 자살했고, 아리스토데모스는 비겁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던 끝에 치욕을 씻고자 다음해 플라타이아이 전투에 참가해 전사했다. 그런 스파르타가 아테네군에게 항복했다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언이라고 믿었던 일이 이뤄지자 시민들은 클레온을 열렬히 환영했다.
반면에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는 자신들이 차려놓은 밥상을 클레온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의 언변은 그의 업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니키아스는 클레온처럼 능란한 농담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아테네 시민들을 즐겁게 함으로써 자기 목적을 위하여 시민들을 조종할 수 있는 재치와 기지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니키아스


아테네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위험한 인물을 깨진 도자기로 투표하여 10년동안 아테네 밖으로 추방하는 도편추방제를 가지고 있었다. 아테네 함대를 건조하여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하여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테미스토클레스도 도편추방되었다. 이 때의 클레온도 요주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도 이런 입장에서 클레온의 능수능란한 언변을 위험한 것으로 보면서 파플라고니아인이라는 익명으로 조롱하고 있다.


데모스(민중을 상징)라는 주인에게는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라는 하인이 있었는데, 새로 들어온 파플라고니아인(클레온)이라는 하인의 아첨 탓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순대장수가 클레온을 타도하고 아테네를 통치할 인물이라는 신탁을 알게 된다. 길을 지나던 순대장수 아고라크리토스를 만나 그의 운명을 말해주고 기사 무리가 도와줄테니 클레온에 맞설 것을 요청한다. 먼저 주인인 데모스 앞에서 순대장수와 클레온은 경쟁을 벌여 순대장수가 이긴다. 의회 앞에서도 결과는 마찬기다. 기존의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와는 다르게 순대장수는 못된 짓과 뻔뻔스러움, 약삭빠름 등 악덕 능력에서도 클레온에 앞섰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순대장수와 클레온의 아첨대결 끝에 데모스는 순대장수를 선택한다. 마침내 클레온은 순대장수가 그를 타도하기로 되어있는 신탁이 말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절망한다. 순대장수가 새로운 하인이 되고, 클레온은 순대장수가 된다.


데모스테네스    전에 나는 퓔로스에서 큼직한 라코니케 빵을
                    빚은 적이 있는데, 이 천하의 악당이 살그머니 다가와
                    가로채더니 내가 빚은 것은 제 이름으로 바쳤지 뭐요. (55~57행) 


순대 장수        평생 동안 그럴 사람인지라, 남이 씨 뿌린 것을
                    수확하는 것으로 그는 이름을 날렸소.
                    이제 그는 곡식 이삭을 그곳에서 집으로 가져와
                    감옥에 쳐넣어놓고 말리며 내다 팔기를 바라고 있소. (391~394행)


파플라고니아인  어떻게 위해주느냐고? 나는 배를 타고 장군들보다 한발 앞서
                     퓔로스에 숨어들어가 라코니케인들을 끌고 왔지. (742~743행)


위 구절은 아리스토파네스가 공적을 날름 가로챈 클레온을 아주 점잖게 조롱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아리스토파네가 클레온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가서 당신 남근이나 빠시지! (1010행, 천병희 교수님의 번역이 아주 점잖다.)


클레온은 이 작품이 나온지 2년 후인 B.C.422년에도 20일만에 돌아올 것처럼 자신감으로 가득차 스파르타의 명장 브라시다스(투키디데스가 패했던 그 사람이다.)와의 일전을 위해 암피폴리스로 향한다. 하지만 실전에서 등을 보이며 도망치다 스파르타의 방패병에 사로잡혀 죽고 만다. 스파르타 장군 브라시다스도 전사한다. 양 쪽의 주전파 장군이 죽자 오랜만에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평화가 찾아왔다. 일시적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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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1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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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25년 공연된 작품으로 20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썼지만 연령 미달 때문에 칼리스트라토스가 연출한 작품이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연대가 앞선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7년째. 전염병이 창궐해 많은 주민들이 죽었고, 펠로폰네소스군의 침략으로 황폐화된 농토 때문에 살아남은 주민들도 굶주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신들이 암피테오스를 신의 사절로 보내 평화조약을 맺도록 시키지만, 스파르테로 떠날 여비가 없는 암피테오스는 아티케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민회에 참석한 아티케 농부 디카이오폴리스는 도시의 평화에는 관심도 없고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쁜 장군과 사절단들의 모습을 보고 기대를 버린다. 그는 암피테오스에게 여비를 주며 자기 가족과 스파르테 사이에서만 평화조약을 맺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 농부가 사는 곳에는 이제 평화가 넘친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그의 집을 찾아와 배신자라는 죄목으로 돌로 쳐 죽이려 한다. 디카이오폴리스에게는 처형 전 마지막 연설이 허용되고, 그는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B.C.485~406)를 찾아가 허름한 옷과 지팡이 등 동정을 사기에 충분한 소도구를 빌려와 반대자들에게 변명을 시작한다.그 때 마침 찾아온 용장 라마코스의 위선을 폭로하자 반대자들은 디카이오폴로스의 휴전조약을 추인한다.


다른 곳은 전쟁 때문에 모든 무역이 막혔지만, 그의 집 주위에서는 자유롭게 물물교환이 이뤄진다. 메가라인은 그의 두 딸을 마늘, 소금과 바꾸고, 테바이인은 뱀장어를 아테네의 특산물 '밀고자'와 바꾼다. 그의 집에는 포도주가 흘러넘치고 개똥지빠귀, 뱀장어, 산토끼, 순대, 오징어 등 요리 냄새가 진동한다.


디카이오폴리스가 전투에 참가했다가 부상당한 라마코스를 한껏 조롱하며 주지육림에 빠진 채 평화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다.


라마코스           아아,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이 쓰라린 고통! 소름이 돋는구나. 기구한 내 팔자!
                     나는 적의 창에 맞아 죽어가고 있구나!
                     그러나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내가 부상당한 모습을 보고는 디카이오폴리스가
                     내 불운을 비웃는 것이겠지.


디카이오폴리스  (양쪽에 창녀 한 명씩 끼고 등장하며) 아아, 세상에 이럴 수도 있구나!
                     이 젖가슴들! 마르멜루 열매처럼 탱탱하구나!
                     내게 진하게 키스해줘, 사랑스러운 것들.
                     한 명은 입술을 넓게 펴서 하고, 한 명은 깊숙히 해줘!
                     내 잔은 내가 먼저 비워야 하니까.


- 아리스토파네스, 아카르나이 구역민들, 1190~1200행


이 작품은 전쟁의 황폐함과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 말한다. 물론 아리스토파네스는 점잖은 방법이 아닌 아주 짖궂은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메시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쟁을 사랑하던 라마코스는 이 작품이 공연된지 10년 후인 B.C.415년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에 참가했다가 전사했다. 전쟁을 사랑했으니 그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죽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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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이제이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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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이 인생의 목적이며, 성격적 탁월성을 따라 좋은 습관을 만들면 지속적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도 동물과는 다른, 인간의 기능이 이성에 따르는 삶에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은 영혼이 지혜를 맡고 있는 이성적 부분, 용기를 맡고 있는 기개적 부분, 절제를 맡고 있는 욕구적 부분으로 이루어지며, 이성적 부분이 나머지를 조화롭게 지배하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즉 참다운 지혜를 제대로 알게 되면 곧바로 행동할 수 밖에 없고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철학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다운 지혜를 알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철학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이 지혜를 맡고 있는 이성적 부분과 용기, 절제, '자유인다움' 등 품성상태를 맡고 있는 욕구적 부분으로 이루어지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욕구적 부분에 많이 지배되므로 이 부분을 탁월하게 조절할 수 있는 습관을 획득하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가능한 일이다.

욕구를 따르는 삶에 있어서 각각의 상황에 가장 좋은 행위가 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중용의 상태다. 무모함과 비겁함 사이에서 용감함을 취하고, 무절제와 목석 사이에서 절제를 추구하고, 낭비와 인색함 사이에서 '자유인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중용이다. 이런 중용적인 행위를 반복하면 우리는 좋은 습관을 획득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있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2권 1장 1130b1

이런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실천적 지혜, 즉 인간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무엇이며, 각 상황에 어떻게 행동해야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만이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행복하다는 것은 좋은 행위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중용적인 행위들이 즐거운 일들인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즐거움은 최고로 즐거운 것이며, 훌륭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즐거움이다. 훌륭한 사람들은 즐거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즐거운 것을 택한다. 부끄러운 즐거움은 실제로 즐거운 것들이 아니며, 단지 즐거운 것처럼 보일 뿐이다. 훌륭한 사람들은 탁월한 행위들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즐거움이다.

행복한 삶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되게 하려면 좋은 행위를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각각의 상황에 맞는 중용적인 행위를 반복하면 훌륭한 사람들이 맛보는 고귀한 즐거움과 실천적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고귀한 즐거움은 좋은 습관을 만들도록 도와주며, 실천적 지혜는 또 다른 좋은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드디어 철학자가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도 행복한 삶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 선순환 구조로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개인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좋은 정치체제가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를 후속편인 '정치학'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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