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1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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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22년 공연된 작품으로 23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극본을 쓰고 필로니데스가 연출했다.


작품 제목인 '벌'은 아테네 사람들을 상징한다. 벌은 일단 화가 나면 그보다 성마르고 무자비한 동물은 없으며, 벌집에 떼지어 살고, 일벌이 누구든 닥치는 대로 찔러 그 덕으로 나머지가 먹고 산다. 아테네인들도 전투에 임하여 사납고, 법정에 모여 재판하며 살고, 농사가 아니라 남을 약탈해 먹고사는 것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어느덧 10년째로 접어들었고 주전파 아테네의 클레온과 스파르타의 브라시다스 때문에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클레온은 민심을 잡기 위해서 배심원의 일당을 2오블로스에서 3오블로스로 인상했다.('기사' 주 9 참조) 왕년에 페르시아 전쟁에 참전했으나 지금은 배심원의 일에만 만족하며 살아가는 노인무리들은 클레온을 지지하며 클레온 비판세력을 오히려 독재자나 음모자로 몰아붙이며 벌이 침을 쏘듯이 가차없이 공격한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노인 필로클레온(Philokleon, 클레온을 사랑하는 자, 즉 친클레온파를 상징함)은 소송이란 권력놀이에 재미들린 재판광이다. 반대로 그의 아들 브델뤼클레온(Bdelykleon, 클레온을 미워하는 자, 즉 반클레온파를 상징함.)은 그런 아버지가 걱정스럽다. 필로클레온은 얼마나 재판을 좋아하던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 재판정에서 밤을 새는 위인이다. 마침내 아들이 아버지를 집에 감금하자 배심원 노인무리가 그를 구하러 온다. 이제 부자지간에 누구의 말이 맞는지 논쟁이 붙는다.

먼저 아버지 필로클레온은 배심원의 권한이 왕권 못지않다며 무척 즐거워한다. 그들 앞에서 탄원자들, 부자들이 무릎꿇을 뿐만 아니라 권력자들까지 아부를 하며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들 브델뤼클레온은 배심원일이란 실제로는 권력자들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권력자들은 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누구나 '독재'나 '음모'로 몰아붙여 입을 막으려 하고 있으며, 동맹국들에게서 엄청난 뇌물을 받아 그중의 일부분만 배심원들이나 시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그들이 챙기고 있다고 말이다.

승부가 났다. 한껏 화가 나 엉덩이에 붙은 침이 바짝 섰던 배심원 노인무리들이 물러가자 집에는 부자만 남았다. 이제 필레클레온에게는 삶의 낙이 없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위해 집 안에서 편안하게 재판할 수 있도록 한다. 첫번째 피고는 부엌에서 시켈리아산 치즈를 훔쳐먹은 라베스(시칠리아 섬을 돌며 여러 도시에서 뇌물을 받아먹은 아테네 장군 라케스를 상징한다.)라는 개다. 원고는 또 다른 개다.(아리스토파네스는 클레온 얘기를 계속 우려먹는다. 시켈리아의 스팍테리아 섬에서 스파르타군을 인질로 잡은 클레온을 비판하는 것이다. 민중선동가 클레온(kleon)과 개를 뜻하는 kyon은 발음이 비슷하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개는 무죄방면된다.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사치스런 옷과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이제는 남들처럼 즐기며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아가기를 권한다. 하지만 이때까지와는 다른 생활에 필로클레온은 매사에 서툴다. 실수투성이에다 남의 손가락질을 받을 뿐이다. 그는 재판광으로 돌아가야 할까, 서툴더라도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까.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다.

투키디데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한 당시 아테네 사람들이 사치스러운 반면에 스파르타 사람들은 검소하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 작품에서 민중을 선동하는 클레온과 뇌물을 받아먹는 라케스 등 시민의 등을 치는 권력자들을 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명예로운 세대의 기억을 잊고 재판놀이에 푹 빠진 노인들과 흘러넘치는 재물에 흥청망청하는 젊은이들도 욕하고 있다. 전쟁을 통해 명예 뿐만 아니라 재물까지 받아들인 아테네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우리 모두 그 결과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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