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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1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평점 :
B.C.424년 공연된 작품으로 21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처음으로 직접 연출했다.
이 작품의 주요 등장 인물인 클레온과 니키아스, 데모스테네스에 대해서 우선 살펴보자.
펠레폰네소스 전쟁(B.C.431~404)의 첫 몇년 간 아테네의 명장 페리클레스가 짜놓은 틀대로 아테네는 도시 전체에 방벽을 쌓아 적군의 침략을 방어하면서 함대를 통해 적군에 피해를 입히는 전략을 수행한다. 하지만 페리클레스 사후(BC 429) 뒤 이은 장군들에 의해 전쟁은 난타전으로 변한다. 전쟁은 아테네 본토 뿐만 아니라 이오니아, 트라키아,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가리지 않고 그리스 전역과 그리스 식민지 전역에서 동시에 이뤄진다.
펠레폰네소스 전쟁 7년째인 B.C.425년 데모스테네스 장군이 이끄는 아테네군이 필로스를 점령하고 스팍테리아섬의 스파르타군을 포위한다. 이들의 처리를 두고 니키아스와 클레온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자 클레온은 자기에게 20일만 주면 섬에 있는 스파르타군을 모두 죽이거나 생포해오겠다고 공언한다. 마침내 클레온이 후속 아테네군의 장군으로 선출되어 스팍테리아섬으로 출정하고 마치 거짓말처럼 20일만에 스파르타군을 생포한다. 이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가장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투키디데스도 말한다.
영화 300으로 알려진 페르시아 전쟁의 테르모퓔레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300명의 전사들은 결사의 전투 끝에 거의 모두 죽음을 당했다. 전투에서 살아난 두 명의 스파르타인 중 판티테스는 목매달아 자살했고, 아리스토데모스는 비겁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던 끝에 치욕을 씻고자 다음해 플라타이아이 전투에 참가해 전사했다. 그런 스파르타가 아테네군에게 항복했다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언이라고 믿었던 일이 이뤄지자 시민들은 클레온을 열렬히 환영했다.
반면에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는 자신들이 차려놓은 밥상을 클레온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의 언변은 그의 업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니키아스는 클레온처럼 능란한 농담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아테네 시민들을 즐겁게 함으로써 자기 목적을 위하여 시민들을 조종할 수 있는 재치와 기지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니키아스
아테네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위험한 인물을 깨진 도자기로 투표하여 10년동안 아테네 밖으로 추방하는 도편추방제를 가지고 있었다. 아테네 함대를 건조하여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하여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테미스토클레스도 도편추방되었다. 이 때의 클레온도 요주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도 이런 입장에서 클레온의 능수능란한 언변을 위험한 것으로 보면서 파플라고니아인이라는 익명으로 조롱하고 있다.
데모스(민중을 상징)라는 주인에게는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라는 하인이 있었는데, 새로 들어온 파플라고니아인(클레온)이라는 하인의 아첨 탓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순대장수가 클레온을 타도하고 아테네를 통치할 인물이라는 신탁을 알게 된다. 길을 지나던 순대장수 아고라크리토스를 만나 그의 운명을 말해주고 기사 무리가 도와줄테니 클레온에 맞설 것을 요청한다. 먼저 주인인 데모스 앞에서 순대장수와 클레온은 경쟁을 벌여 순대장수가 이긴다. 의회 앞에서도 결과는 마찬기다. 기존의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와는 다르게 순대장수는 못된 짓과 뻔뻔스러움, 약삭빠름 등 악덕 능력에서도 클레온에 앞섰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순대장수와 클레온의 아첨대결 끝에 데모스는 순대장수를 선택한다. 마침내 클레온은 순대장수가 그를 타도하기로 되어있는 신탁이 말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절망한다. 순대장수가 새로운 하인이 되고, 클레온은 순대장수가 된다.
데모스테네스 전에 나는 퓔로스에서 큼직한 라코니케 빵을
빚은 적이 있는데, 이 천하의 악당이 살그머니 다가와
가로채더니 내가 빚은 것은 제 이름으로 바쳤지 뭐요. (55~57행)
순대 장수 평생 동안 그럴 사람인지라, 남이 씨 뿌린 것을
수확하는 것으로 그는 이름을 날렸소.
이제 그는 곡식 이삭을 그곳에서 집으로 가져와
감옥에 쳐넣어놓고 말리며 내다 팔기를 바라고 있소. (391~394행)
파플라고니아인 어떻게 위해주느냐고? 나는 배를 타고 장군들보다 한발 앞서
퓔로스에 숨어들어가 라코니케인들을 끌고 왔지. (742~743행)
위 구절은 아리스토파네스가 공적을 날름 가로챈 클레온을 아주 점잖게 조롱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아리스토파네가 클레온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가서 당신 남근이나 빠시지! (1010행, 천병희 교수님의 번역이 아주 점잖다.)
클레온은 이 작품이 나온지 2년 후인 B.C.422년에도 20일만에 돌아올 것처럼 자신감으로 가득차 스파르타의 명장 브라시다스(투키디데스가 패했던 그 사람이다.)와의 일전을 위해 암피폴리스로 향한다. 하지만 실전에서 등을 보이며 도망치다 스파르타의 방패병에 사로잡혀 죽고 만다. 스파르타 장군 브라시다스도 전사한다. 양 쪽의 주전파 장군이 죽자 오랜만에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평화가 찾아왔다. 일시적이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