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E. M. 포스터 전집 2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모리스'에 감명받아 읽게 된 E.M 포스터 '모리스'는 무척 재밌고 흥미진진하다. E.M 포스터의 책은 처음이지만, 앞으로 그의 소설을 시간 되는대로 많이 읽고 싶다. 모리스가 대학 시절 E.M 포스터의 분신과 같은 인물이다보니 책을 읽다보면 작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한데, 결과적으로 난 작가 포스터도, 인간 포스터도 좋아하게 되었다.

  또 영화에서는 모리스를 버리는 클라이브가 원망스럽고 미웠지만 책을 읽으니 클라이브에게도 동정심이 생겼다. 특히 아래 구절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무도 반듯해서 난 너의 평범한 우정을 오해했지. 네가 나한테 아주 다정하게 대했을 때, 특히 내가 학교로 돌아왔던 날...... 난 그게 뭔가 다른 것인 줄 알았어.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미안해. 난 역시 책과 음악 밖으로 걸어나올 권리가 없었어. 널 만나기 전까지 난 그렇게 살았거든. 사과든 뭐든 내게서 아무것도 받고 싶지 않겠지만, 홀, 진심으로 사과한다. 네게 모욕감을 준 일은 영원토록 나를 슬프게 할거야.」

p. 90


  내가 이 구절을 읽으며 가슴이 찢어졌던 건, 밑줄을 그은 클라이브의 말에서 내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난 아직도 책과 음악 밖으로 걸어나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영화에서는 클라이브가 타고난 동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여자를 택하는데 소설에서는 갑자기 남자가 아닌 여성을 사랑하게 되어 모리스와 헤어진다는 점이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클라이브의 모델이자 대학시절 포스터가 사랑했던 실존 인물 '휴 매러디스' 도 실제로 이성애자가 되어 여성과 결혼했던건지 궁금하다. 


  남들과 다른 사람들을 흔히 '특별한' 사람 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특별함'이 거대한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 모리스 역시 특별한 사람이었고, 그로 인한 두려움에 학창시절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괴로워하며,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혼자 발버둥 친다. 남들처럼 혹은 남들만큼 살고 싶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여 좌절하고 때때로 자신에게 실망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모리스의 외로운 분투에 공감하며 진심으로 그를 응원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모리스가 마침내 진정한 사랑인 '알렉 스커더'로 인해 스스로 특별함을 인정하며 누구도 속이지 않고 살기로 다짐하는 결말은  나에게 그 어떤 연애 소설보다 훨씬 더 달콤하고, 벅차게 다가왔다.


「클라이브, 넌 참 바보구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난 너야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해. 내가 지금껏 만난 사람들 중에 아름다운 사람은 너뿐이야. 나는 네 목소리를 사랑하고, 너와 관련된 건 무엇이든 사랑해. 네가 입은 옷, 네가 있는 방까지, 나는 너를 흠모해」

p. 113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건 어떨까?」

이런 말을 내뱉은 뒤 그는 자살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죽음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도 없었고, 죽음 너머의 세계도 알지 못했으며, 집안 망신 같은 것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외로움의 독기에 취해 나날이 더 불행해질 뿐 아니라 더 깊이 타락해 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죽어도 되지 않을까? 그는 자살하는 방법들을 비교해 보기 시작했고, 실제로 뜻밖의 사건만 없었다면 권총 자살을 감행했을 것이다.

p. 171

그러나 모리스한테는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 말고는 아무도 중요하지 않았고, 어머니도 아주 중요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철저히 혼자인데, 왜 살아가야 하는가? 그럴 이유가 아무 데도 없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은 암울한 예감이 들었다. 죽음도 그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죽음도 사랑처럼 그를 힐끗 한 번 바라보고는 그가 <분투하도록> 남겨 두고 돌아섰다. 그는 어쩌면 할아버지만큼이나 오래 분투하고, 또 그만큼 우스꽝스럽게 은퇴해야 할지도 몰랐다.

P. 177

그들의 과거의 책은 책장으로 돌아가야 했고, 여기, 어둠과 죽어 가는 꽃들에 감싸인 여기가 바로 그 자리였다. 그는 알렉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했다. 그는 새것과 옛것이 섞이는 고통을 겪을 수 없었다. 모든 타협은 속임수고 그러므로 위험하다.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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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리스」 잡담
    from 케이의 가지 못한 길 2017-09-06 15:45 
    마지막 지은이 E.M 포스터 의 후기에서 이때부터 클라이브는 점차 타락의 길을 걷고, 그에 대한 나의 태도도 차가워진다. 그는 나를 화나게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괴롭히고, 그의 메마름과 정치인 같은 태도와 벗겨지는 머리를 강조했다. p. 316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혼자 깔깔깔 웃고 말았다. 외국에서도 남자가 대머리 되는 건 최악의 저주 중 하나인가보다. 지은이의 말을 보고 E.M 포스터 작가의 사진을 찾아보니 머리카락이 아주 까맣고, 숱도 많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