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사 때려치고 출신 대학에서 계약직 학과 조교로 일할 때, 수강신청 관련해서 대강당에서 금년도 수강신청 계획 세미나를 항상 했다. 그때 수강신청 담당 교직원이 "사실 수강신청 무사히 끝내면 저희 1년 업무 90% 끝난 거 아닙니까?"  라고 말하는 걸 듣고 풋 하고 웃었다.


   사람들은 알까. 만명이상이 재학 중인 대학교의 시간표가 오직 인력에 의해서 작성된다는 사실을. 수학과 같은데는 시간강사만 몇십명인데 그 몇십명들에게 한명 한명 절대 수업하면 안되는 요일 시간대를 받고 도저히 모든 강사와 교수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땐 한명 한명 전화해서 양보 좀 해달라고 읍소하고 달래야 한다. 가끔 금요일 7,8,9 교시나 월요일 1,2,3 교시도 다 상관없이 난 아무 때나 수업하겠다는 시간강사나 교수도 정말 드물게 있었는데 우리는 그 분들을 '천사' 라고 칭했다. 내가 간신히 몇 십개의 엑셀 시트를 거쳐 완벽한 시간표를 작성했다고 해도 그 시간표에 맞춰서 강의실을 확보해야 그 시간표를 학생들에게 공지할 수 있는데, 그게 또 보통일이 아니었다. 강의실 확보 역시 조교들끼리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강의실 신청일 땡하자마자 수백명의 조교가 광클 (=광란의 클릭)을 하는데 강의 규모에 맞는 강의실을 차지 하지 못하면 죽어라 고생해서 간신히 작성한 시간표를 다 갈아엎거나, 아니면 강의실이 넉넉한 기계과 같은데 전화걸어서 제발 남는 강의실 하나만 우리한테 빌려주면 안되겠냐고 또 빌고 또 빌고. 그 외에 다양한 상황들... 필수 과목을 겹치게 하지 않아야 하고, 필수 과목 연달아 개설시에는 쉬는 시간내 이동 가능한 같은 건물 내 강의실을 잡아야 하고 기타 등등.

  제일 문제는 다가오는 학기가 4학년 2학기여서 다음 해에 졸업해야 하는 학생들인데 꼭 똘똘하지 못한 애들이 있어서 마지막 학기가 되도록 졸업 필수 과목을 안들은 애들이 있었다. 그럼 또 그 몇 명을 위해 이번 학기에 꼭 필수 과목 개설을 해줘야 했다. 한 번은 다음 해에 꼭 졸업해야 하는 어떤 애가 들어야 할는 필수 과목을 개설해야 하는데  끝내 평일 강사 섭외 못해서 토요일 수업 개설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죽어라 2년 일하면 대학교에서는 계약기간 만료니 나가라고 한다. 나도 그래서 짤렸다.  


  이제 학교에서 근무하진 않지만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도 내 업무는 좀 비슷하다 내 업무는 3월 법인세 결산이 끝나면 1년 업무의 90%는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3월 내내 더럽게 바빴고, 3월 시작과 동시에 회사 와서 업무시간 내내 그야말로 경주마처럼 일했다.  (재택근무 그게 뭔가요???) 그러다 어제 법인세 신고 직전까지 다 끝냈다. 너무 감격스럽다. 올해도 잘 넘겨서.


  그렇다. 이 글은 요즘 책도 많이 안 읽고 또다시 아무 감상문도 안 쓰는 지금 나에 대한 변명인 것이다. 어제까지 열심히 달렸으니 오늘은 조금 널럴하게 일하려고 하는데... 될까? 제발 되길. 오늘 소원은 퇴근 직전까지 아무도 나한테 말을 걸지 않는 것이다. (불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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