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팬데믹 - 코로나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톰 라이트 지음, 이지혜 옮김 / 비아토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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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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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코로나 시대를 맞이했다. 전세계적인 전염병 바이러스의 시대, pandemic 시대이다. 신약학자 톰 라이트는 <하나님과 팬데믹>이란 책을 저술했다. 통찰이 번득이는 책이었다. 코로나 19 초기에 <타임>에서 코로나에 대한 글을 적어달라는 청탁으로 인해 이 글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하면서 오늘의 페이퍼를 전개하고자 한다. 팬데믹, 코로나의 재앙의 시대에 대한 대처방식을 먼저 역사적으로, 톰 라이트는 고대철학에서 가져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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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의 대안적 태도이다.

첫째, 스토아학파에서는 세상 만사가 다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바꿀 도리는 없으니, 그냥 거기에 맞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둘째, 에피쿠로스 학파가 있다. 이들은 모든 일이 무작위로 일어나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고 할 뿐이다.

셋째, 플라톤학파가 있다. 이들은 현세에 실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이 땅에서는 나쁜 일이 생기지만, 우리는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되어 있다.

당신은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가? 스토아학파처럼 순응파인가? 아니면 에피쿠로스 학파처럼 어떤 난리법석을 떨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의 평정,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아니면 플라톤학파처럼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니, 영혼만 제대로 구원받으면 된다는 주의인가? 톰 라이트는 기독교적인 입장을 표명한다.



신약학자, 톰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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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 저자는 오늘날 기독교의 분위기가 플라톤학파처럼 흘러가는 모습을 지적한다. 이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고, 사람들은 이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더 큰 재앙, 종말의 징조로서 코로나 보다 더 한 것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여타 종교계에서 이런 식의 접근을 한다. 전세계에 유행되는 있는 전염병, 역병시대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것이 작금의 현실에서 쉽게 마침표를 찍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더 두려워하고 공포에 젖어 있다. 사람들에게 공포와 위기의식을 불어넣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신앙의 세계로 돌이키게금 하자는 의도와 동기는 물론 선하긴 하나, 또한 그런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신앙의 세계로 들어서는 이들도 코로나 시대에 있긴 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동기화작업 보다 더 중요한 맥락을 짚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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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바로 이 요한복음 11:35 한 구절로 압축해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겠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복음 11장의 내용은 죽은 나사로의 부활 사건이 등장한다. 나사로, 그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과 특별히 친밀한 관계였다. 하지만, 나사로가 죽었다. 어떻게 죽었는지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죽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나사로가 죽기 전에 빨리 오셔서 어떻게 조치를 취해 주길 간절히 바랬다. 기도라도 해주시던지, 병을 잘 고치시니 다른 이들에게 행한 것처럼 치유의 기적을 베풀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지 4일이 지나(요 11:17) 느지막히 오셨다. 통곡의 장례식장이었다. 젊은 나이에 죽어간 남동생에 대한 비통함과 애곡함이 두 자매에게 가득했다. 이 사건은 신학적으로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대한 예표적인 sign을 주는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부활에 앞서 나사로의 부활을 먼저 보여주고자 하는 스토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초점은 그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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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곧 부활시킬 것이다.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고 하시면서 부활시킬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슬픔과 고통과 애곡과 비통의 현장에서 무슨 행동을 하셨는가?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35절)

-곧 부활시킬 것을 아시면서 왜 눈물을 흘리셨는가 말이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예수님의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이다. 곧 일이 해결되고 사건이 수습될거니깐 사람들이 슬퍼하고 눈물짓는 그 현장에서 윽박지르거나 지적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그들과 함께 우셨던 것이다.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다.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 우는 친밀함에서 나오는 긍휼의 눈물이었다.

‘죽음이 집과 가게로 스며들고, 건강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자신은 알지도 못한 채 바이러스를 옮기고 다니고, 거리의 낯선 사람이 모두 위험인물이고, 다들 마스크를 착용하고, 교회가 문을 닫아 사람들이 홀로 임종을 맞아야 하는 심각한 위기의 때, 지금은 탄식할 때다. 손쉬운 답이 없다고 인정할 때다. 위기를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외쳐댈 기회로 삼는 것을 거부할 때다. 친구들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깊은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때다. 바울은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세상이 울고 있다. 교회의 첫 부르심,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부르심은 우는 사람들 사이에 겸허히 자리 잡는 것이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다. 슬퍼하지 않는 것, 애통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흘러나오는 가장 내밀한 마음 속 같은 장소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우리 사횡가 슬픔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그렇다. 친구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처럼 강해야 한다.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실 성령님,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이 깊은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신 성령님처럼 강해야 한다.‘(톰 라이트, 99-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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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터졌다.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를 뒤덮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알팍하게 생각했는데, 이게 점점 시간이 지나가니 압도적이었다. 그러면서 코로나19의 이 재앙이 ‘왜?‘ 발생했는가? 하면서 ‘왜?‘라는 원인과 이유에 대해 지나치게 이야기하면서 누군가를 ‘탓‘하며 비판하기 일색이었다. 하지만, 톰 라이트는 ‘왜‘가 아니라 이제는 ‘어떻게?‘란 접근법이 필요하다 말한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선천적 맹인에 대해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한다.

9: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이니이까 그의 부모이니까

오늘날의 사람들처럼 제자들도 재앙의 원인, 고통의 이유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왜?WHy?‘라는 질문이엇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신다.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이 대목은 우리에게 굉장히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누구의 죄 때문인지, 원인과 이유 WhY?를 규명하는 것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자 하는, What?의 계획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사실, 내가 지난 두어 주 사이에 들은 최고의 대답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무엇‘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있는가?‘(톰 라이트, 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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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당하는 팬데믹 사회와 시대에 대해 과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집중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눈물‘로 압축된다. 천국 갈건데, 이 땅에서의 삶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플라톤주의 식 접근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현재 Here and now‘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눈물, 예수님의 눈물‘을 마음에 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현재‘라는 말이다. 팬데믹한 지구촌의 현실에 함께 고통 당하는 이들의 현실에 직접 동참하기를 지지한다.

‘2-3세기에 심각한 질병이 마을을 덮치자 부자들은 산으로 피신했다(저지대의 공기 중 악취가 문제가 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떠나지 않고 사람들을 돌보았고, 그러다가 병에 걸려 죽기도 했다. 사람들은 몹시 놀랐다. ˝도대체 왜 그랬죠?˝ 그들은 ˝아, 우리는 이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구하려고 자기 목숨을 내려놓으셨기에 우리도 그렇게 합니다˝라고 대답했다.‘(톰 라이트, 17p)


요한복음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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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톰 라이트는 ‘독일 전투기가 런던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었을 때 쓴 T.S.엘리어트의 <네 개의 사중주Four Quartets> 중 두 번째 시 ˝이스터 코커Easter Coker˝를 묵상해 보자‘고 제안한다.

‘나는 내 영혼에 잠자코 있으라고 말했다. 어둠이 그대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어둠이 임하도록...
나는 내 영혼에 잠자코 있으라고 말했다. 소망하지 말고 기다리라 말했다.
소망은 그릇된 것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사랑 없이 기다리라.
사랑은 그릇된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믿음이 있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모두 기다려야 한다.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라. 그대는 아직 생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테니.
그래서 어둠이 빛이 되고, 멈춤이 춤이 되어....
그대가 알지 못하는 곳에 도달하려면
그대는 무지의 길로 가야 하리....‘



T.S.엘리어트는 ‘힘든 상황에서 우리가 얻으려는 모든 손쉬운 위안은 망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그 위안을 붙잡는다....기도할 때나 살아갈 때나 미봉책을 붙잡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탄식하라는 요청과 함께 사는 삶. 성령의 신음에 동참하는 삶은 힘들고 괴로울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아들의 형상으로 변화된다.‘(톰 라이트, 100-101p)


T.S.El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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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한복음 11:35)

나사로의 부활이 예정되어 있다면, 눈물이 필요없다? 그랬다면, 예수님께서 우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함께 애통해하셨다. 기독교는 우리의 정서를 무시하거나 배제하거나 거절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서와 함께 공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정서를 함께 공유하시는 예수님이시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고 계실 것이다. ‘공감‘과 ‘공유‘의 대변자였던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에서 이미 모든 것을 다 보여주셨지 않는가! 예수님은 나사로의 장례식에서 우리가 잘하는 비판의 칼을 갈지 않으셨다. 그냥 우셨다. 눈물을 흘리시며 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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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의 눈물‘을 자기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눈물을 배우는 것이다. 현재의 삶에서 우리가 당하는 것이 물리적 코로나이든, 정신적인, 영적인 코로나 이든지 간에 ‘함께 하는 마음‘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기도 하다. 히브리어로 긍휼은 레헴이다. 이 단어는 ‘자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품을 수 있고 키울 수 있고 케어할 수 있는 여성의 보금자리가 바로 자궁이 아닌가! 그런 따뜻한 마음이 바로 ‘긍휼‘이다.

마태복음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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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4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4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0-07-14 0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 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겠지요

누구를 탓하기보다 모두가 힘을 합쳐서 지금을 잘 넘어가면 좋을 텐데, 그런 일보다 안 좋은 일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한국 사람이 공격 받았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잖아요 한국 사람이라고 그러지 않은 건 아닐지도... 중국 사람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봤습니다 그렇게 해도 퍼진 곳도 있던데... 이렇게 오래 갈지 몰랐네요 오래 간다 해도 쉽게 퍼지지 않으면 나을 텐데 그렇지 않네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나으면 별로 안 좋다는 말도 있고... 어느 한나라 탓은 아닐 거예요 인류가 이렇게 만든 거겠지요

카알벨루치 님 건강 잘 챙기시고 가끔 서재에 글 쓰시기 바랍니다


희선

2020-07-14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20-08-0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잘 계시죠?
자주 좀 들리세요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