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왕 이야기-A Tale Of Three Kings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황금사조의 중심에는 다윗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국기에 있는 별도 바로 '다윗의 별'을 상징한다. 그가 왜 그토록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는가?

저자는 선왕이었던 사울 왕-다윗 왕-그리고 자신의 아들, 모반으로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하고자 했던 압살롬, 이 세 인물을 비교해가면서 글을 적고 있다.

 

 <先王 사울과 음악치료사, 다윗의 모습>

 

 

사울-다윗-압살롬

 

중간에 끼인 다윗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하고 고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프리즘과도 같다. 이 책에선 '과거의 사울', <사울>이 등장하고, '미래의 사울', <압살롬>이 등장하는데, 사울과 압살롬, 이 두 인물의 자질은 단지 제3자 사울, 제 3자 압살롬이 아니라 바로 다윗 안에, '내 안에 감추어진 사울이며, 압살롬'이라는 사실이 주목할만하다.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란 말이 있다. 사람,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 선과 동시에 대단한 악이 존재하는가? 저자의 이런 문학적 프레임이 참 신선했다. 다윗,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는 다윗 왕에게 '사울 왕'의 모습도, '아들 압살롬'의 모습도 공존한다는 대목이 충격적이면서도 공감이 간다.

 

 

이러한 사실은 깨달은 자가 바로 다윗이다. 이것이 다른 왕들과 대별되는 다윗의 위대함이다. 과거에 사울을 대적치 않고 기름부으신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자신의 왕권을 주실 것을 믿으며 기다리며 참고 바랬던 다윗-그는 결코 조급증환자같은  사울처럼  행세치 않았다, C.S.루이스는 '조급함 자체가 마귀적이라고 했다!'-, 통일왕국의 원대한 자리에서 안주할 만한 시기는 미래의 사울인 피붙이 압살롬을 통해 자신의 뒷통수를 맞은 다윗...

그는 왕권KingShip에 집착치 않았다.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을 버리시고 압살롬을 택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과 이러한 시기에 다윗을 더없이 다윗되게 한 것은 대다수의 권위적인 왕들처럼 왕위고수전략을 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돌아보았다는 데 있다. ReFlection...

 

권력은 언제나 뒷모습이 씁쓸하기 짝이 없고 추하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권력자들에겐 진정한 내려놓음이 있었다면, 자기반성과 성찰이 있었다면, 그리고 포기가 있었다면 그들의 삶은 더 빛났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권력의 달콤함을 절대 버리지 못한다. 포기하지 못하는, 그래서 집착할 수 밖에 없는 데서 중대한 질병이 발생하고, 심각한 후유증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다윗은 아들이기도 하지만,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압살롬이 왕궁으로 쳐들어온다는 것을 알고는 미련을 버리고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한다. 미련을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인가? 하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그 미련과 아쉬움 조차도 내려놓을 줄 아는 단계까지 갈 수 있었다.

 

 

 

깨어진 마음, 깨어진 사람The Broken, 다윗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맘으로 조용히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왔다. 이런 무기력한 왕이 세상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다윗은 목동시절 함께 하셨던, 왕이 되기 이전에 여전히 함께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신앙Faith를 놓치 않았다. 그 믿음아래 자신의 왕관을 포기하기에 이르른다. 이것은 진정한 신임이며 위탁이며 위임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리는 다윗....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

 

찢어지는 다윗의 가슴

...왕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알지 못할 의구심과 불확실함

..그 안에 자신의 자랑인 아들 압살롬이 반역. 모반. 쿠데타의 주역이란 현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였다.

눈물이 핑 돈다.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한 다윗은 정말 다윗답다.

넘치는 상상력으로 독자를 압도하는 저자의 글재주가 탁월하다.
그 안에 넘치는 다윗의 매력은 다윗매니아인 나로선 감동 그 자체이다

*여담

유진 피터슨의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란 책을 보면 다윗에 대한 통찰을 구할 수 있다. 특별히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가 이토록 악화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부자관계의 상처'의 시각 으로 볼 수도 있겠다.

 

 

다윗은 압살롬을 총애했다. 잘 생기고,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긴 대리석같은 훤칠한 아들의 외모는 다윗의 마음에 들었다. 배다른 형인 암논이 자신의 여동생 다말을 건드렸다. 건드리고 나서 책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암논은 이전에 다말을 향한 강렬한 애정과 욕망이 자신의 욕망을 채운 후에는 오히려 미움으로 무관심으로 탈바꿈되어진다. 이에 대해 암논은 눈이 뒤집히게 된다. 하지만, 암논은 철저하게 자신의 복수할 기회를 엿보며 참고 기다린다.

 

 

 2년이란 시간이 흘렀던가! 2년간 준비했던 복수의 칼날을 꺼내든다. 그리고서, 배다른 형제이며 형인 암논을 죽여버린다. 그리고서 자신의 외갓집으로 도망을 친다. 여기서 왕이자 아버지인 다윗이 암논의 다말에 대한 강간 사건에 대해 어떤 처벌을 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오히려 압살롬은 더 분노하게 했던 것이다. 왕궁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쉬쉬하고자 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분명히 아버지로서 암논에 대한 징계가 필요했다. 하지만, 적절한 징계가 없었고 그냥 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결국 압살롬의 용광로같이 끓어오르는 분노는 흘러 넘쳤고 왕위계승 순위에 앞서 있었던 암논은 처참하게 목숨을 잃는다.

 

 

암논은 도망자로 피신해 있었고 다윗은 죽은 아들, 암논은 암논이고, 압살롬이 보고 싶었다. 3년의 세월이 지났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향한 마음이 애절했다. 그때 군대장관이었던 요압(다윗의 친척)은 왕의 이런 마음을 알고는 다이렉트로 왕에게 말하지 않고 제3자인 웬(?) 여인을 통해 다윗의 마음을 떠본다. 그 모든 일의 배후에 요압의 마음을 있음을 알고 왕은 압살롬은 왕궁으로 데려오라고 한다. 자, 아들이 돌아왔으면, 적절한 형벌이나 환대가 필요했다. 어떤 액션이 필요했다. 하지만 다윗은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다. 참고 있었던 것일까? 압살롬은 왕궁으로 돌아왔지만, 다윗 왕과 얼굴을 대면할 기회조차 없었다.

 

 

2년 동안! 기다림에 지친 아들, 압살롬이다. 아들에겐 크나큰 중죄가 있었다. 아버지는 반응을 했어야 했다. 다윗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겠지만, 아들 압살롬에겐 점점 상처의 골이 깊어져가고 있었다. 2년만에 그것도 억지스레 아버지와 대면을 했지만, 그것은 화해도, 소통도 아닌 형식적인 치레에 불과했다. 그 만남이 아버지의 액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 만남 이후로 압살롬은 변해버린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 감정적인 상처가 이제 모든 쿠데타의 토대가 되어버린다.

 

 

아버지와 아들, 부자지간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릴 때 운명의 저주는 시작된다.

다윗은 압살롬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고 왕궁으로 무사히 귀환했지만, 압살롬의 안전을 굉장히 걱정했다. 평소에 좀 잘 하지.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키울 때 초보자 신세이다. 자녀들 간의 갈등과 살인, 그 이후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쿠데타는 진압하되, 압살롬의 목숨만은 살려두라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 다윗의 생각과 군대장관 요압의 생각은 달랐다. 쿠데타의 우두머리를 살려둘 순 없는 것이다. 잔인하게 죽여버린다.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은 슬퍼하며 통곡하며 운다.

 

 

"내 아들 압살롬, 압살롬 내 아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압살롬 내 아들아!..."

 

 

쿠데타의 시발점은 사람의 마음, 압살롬의 마음에서 출발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소통이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연출되지 않았을 텐데.

아버지를 기다린 아들, 아들을 기다린 아들...기다림에 지친,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부자관계의 비극적 단편소설과 같은, 이 구약성경의 이야기 '다윗과 압살롬의 사건'을 통해서 우린 발견할 수 있다. 아들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아...! 잘 하자!

 

 

다윗 왕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많은 겪으면서 더 위대한 성군이 되어갔던 것이다. 덜 아프면서 더 성숙할 수 있는 인생의 지름길은 없을까? 그런 생각이 이 아침에 든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아버지 다윗과 아들 압살롬의 화해모드의 장면을 그린 것이다. 렘브란트는 성경의 기사들을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을 그렸다. 침묵하는 아버지, 그리고 흐느껴우는 뒷모습의 압살롬은 진정한 화해의 포옹을 하는 듯하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 만남에서 제대로 상처의 치유가 일어났다면, 관계의 회복도 일어났을텐데. 진정한 용서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던 압살롬이었기에 그가 모반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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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9-04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카알벨루치님 리뷰 읽으니 다시 읽은 듯 합니다.
저는 지금도 다윗이 놀라워요.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며 그의 왕위를 자신의 힘으로 빼앗으려 하지 않은 것보다
자기가 왕인데 자신을 반역한 아들을 피해 도망갔던 거요.
전 반역의 주동자가 아들이라서 그게 가능했다고 보지 않았거든요.
카알벨루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를 돌아봄‘이 주요했던 것 같아요. 전 여기에 다윗의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리뷰, 좋은 그림 잘 감상하고 갑니다^^

stella.K 2018-09-04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요. 읽은지가 거의 17,8년쯤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책도 구판으로 허연색입니다.

저 다비드상 얼마 전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보니
미켈란젤로가 빚은 게 아니라 깎아서 만든 상이라고 하더군요.
전 그 말 듣고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다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빚은 건지 깎은 건지 의문을 가져 볼 생각도 안하다니.
분명 미술시간에 한번쯤 다룰 법도 했을 텐데 말입니다.ㅠ

카알벨루치 2018-09-04 16:33   좋아요 0 | URL
전 살색인데 ㅎㅎ예술도 파보면 흥미로운게 많죠?ㅎ

책과커피 2018-10-26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벌써 몇번을 읽었는데 해를 더해가고, 내 나이수가 늘어갈 수 록 깊이와 감동이 다르더라구요.^^

카알벨루치 2018-10-26 16: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떻게 저렇게 구도를 잡을 수 있을까 싶고 다윗을 안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 생각도 사색도 많아지게끔 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