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리뷰 쓰기 정말 힘들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겨우 함 해보자며 정색을 하고 앉았는데도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받은 감동과 애틋한 감정과 한방울의 눈물과 안타까움과 작가에 대한 감탄을 표현할 적절한 말을 생각해낼 재주가 나에겐 부족한 것이다. 젠장.

일단, 작가에 대한 감탄부터 시작해 볼까.

<달의 제단>을 읽었을 때도 심상치 않긴 했다. 작가는 사석에서 이 소설에 대해 '종가를 배경으로 한 에로틱 스릴러'라 묘사했는데 사실 저렇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있을까마는(종가와 에로틱, 그리고 스릴러의 조합이라니!) 읽다보면 부자연스럽거나 거북한 곳 하나 없이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특히 감탄한 그 언문투의 편지글은 진짜 조선시대 어느 여인의 서간문을 인용한 듯 하였다.

그러나 저 절묘한 조합의 소설보다도 나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성장소설'이란 이름의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어디 한 군데 어려운 문장도 없고 아주 쉽게, 물 흐르듯 얘기하는 것 같은데 그게 보통 내공이 아닌 것이었다. 이리 꼬고 저리 꼬아서 뭔가 있어보이려고 하는 문장, 예쁜 척 잘난 척 하는 문장에 알레르기가 있는고로 쉬우면서도 힘이 있고 아름다운 이 책의 글들이 나는 너무 좋았다.

그리고 작가가 창조해 낸 살아있는 인물들. 동구, 영주,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박선생님 기타 등등.

책을 덮고 나서 이렇게 등장인물들이 낱낱이 기억나는 건 나에게는 참 드문 일이다. 그만큼 작가가 캐릭터에 생명을 부여했다는 얘기겠다. 심지어는 이야기 중간에 박선생님의 선배로 잠깐 등장하는 이태혁조차도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진다. 박선생의 순수한 영혼을 죄의식에 시달리게 한 차가운 눈빛의 이 남자는, 아마도 지금쯤은 정치계에 입문하여 있을 것이다. 하여튼 뭐, 그래도 이 남자 덕에 동구는 박선생님을 향한 연모의 정을 고백할 수 있었으니, 그도 중요인물이기는 하다.

주인공 동구. 이 녀석이 문제다. 이 녀석에 대한 나의 애정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성장소설에 나온 주인공은 대부분, 어리지만 매우 똑똑하고 세상 알 거 다 안다는 식의 시니컬한 태도를 가진 녀석들이 많았다. 그런 녀석들은 소설 속에서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실제 세상에서 만난다면 난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동구는.

난 한눈에 얘를 알아볼 것 같다. 동구가 아무리 시커멓게 생겼어도, 때꼬장물이 꼬질꼬질해도, 내 눈엔 얘 머리 뒤에 비치는 후광이 보일 것만 같다. 이마빡에 '부.처.님.' 이라고 써 있는 걸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남자아이가 어린 여동생을 그렇게 예뻐해 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동구가 부처님이란 증거다. (대부분의 오빠들은 .....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아실 것이다)
영주가 왜 그렇게 다른 식구들과는 다르게 애정표현에 자연스럽고 누구에게나 귀염받는 아이가 되었을까? 사막같았던 동구네 집에서 자기 동생을 마음을 다해 예뻐한 동구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줄 줄 안다고 영주는 오빠한테 배웠던 것이다.
게다가 난독증인 자신과 다르게 천재소녀였던 동생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한 것을 보아도 동구가 부처님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른의 문제를 자신의 희생으로 해결하는 모습.


이런 착하기만 한 녀석을 사실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작가가 리얼리티가 없어. 세상에 이렇게 착하기만 한 애가 어디 있다고!'
그러나 동구는 절대 그렇게 생각되지 않으니
이것이 작가의 능력인지.

하지만 동구가 가장 사랑스러웠던 장면은
동생을 예뻐해 줄 때도, 가족을 위해 할머니와 시골에 내려가겠다고 할 때도 아니고
소주 두잔을 마시고 박선생님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였다. 
너무도 귀엽고도 웃겨서
박선생님의 불행이 예고되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

이 소설은 동구에게 매우 큰 아픔과 시련을 안겨주지만
소년은 아이답게 건강한 모습으로 그것을 이겨낸다.
그리고 곤줄박이와 영주와 박선생님이 있었던 그 아름다운 정원을 떠나면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정원에는 무엇이 있었느냐고.

그래서 나는 한참동안 잊었던 나의 정원을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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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개 2005-11-27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리뷰에요. ^^

깍두기 2005-11-2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아니고.....^^
참 좋은 책이죠. 안 읽으셨으면 꼭...

urblue 2005-11-28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심윤경이라는 이름이 들리니 한 번 읽기는 해야할 것 같군요. 으음.

깍두기 2005-11-29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강추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