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월드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마틴 수터 지음, 유혜자 옮김 / 시공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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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치매에 걸려서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연세 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있을 경우도 그것은 막연한 걱정으로 마음 한 구석에 존재하고, 그 걱정이 현실이 될 때 그때부터의 삶은 그 전의 삶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된다.

우리 큰아버지도 돌아가시기 몇해 전부터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본인의 고생은 사실 우리는 실감할 수 없다. 치매가 걸리면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이 여겨지니 말이다. 정작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고생이다. 걸핏하면 집을 나가시고, 경찰서에서 연락오고, 생리적인 현상을 스스로 통제 못하시고, 방금 식사하시고도 누구누구가 밥 안준다고 버럭 화를 내실 때 주변에서 수발 드는 사람들의 마음 고생, 몸 고생이 오죽 심하겠나. 결국 큰아버지는 치매 전문 요양원에 가셔서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치매가 어느 한 가족의 짐인 경우가 많아서 가족 중의 누가 채매가 걸리면 그 가족 전체의 삶이 피곤해지고 구질구질해 지고, 그야말로 찌든다는 표현도 부족할 만큼 힘들고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말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는 요양시설에 보낼 돈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경우에도 부모님을 시설에 맡긴다는 것이 왠지 죄스러워서란 이유로 치매환자와 같이 생활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래서 힘들고 괴로운 며느리들의 이야기가 TV 베스트 극장 같은데 가끔 잘 나온다.

나는 치매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은근히 걱정스러운 것이, 알콜성 치매라는 얘기를 듣고부터이다. 술마시고 필름 자주 끊기는 사람이 치매 걸릴 확률이 어쩌고, 하는 얘기를 어디서 듣고부터는 술마시기가 좀 무섭다. 나는 술먹고 필름 끊기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어서 말이다. 더 걱정되는 건 남편이다. 요즘 부쩍 술마시고 들어오면 다음날 아침 "나 어떻게 집에 들어왔지?" 이딴 소리를 자주 해서는 나를 부쩍 긴장시킨다. 나이 먹으면 음주도 적당히 자제해야 한다. 아, 우리도 늙었군. 벌써 이런 걱정을 해야 하다니, 흑.

얘기를 하다보니 무슨 의료서적을 읽고 쓴 리뷰같이 되어 버렸다. 이 소설엔 알츠하이머 환자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알츠하이머 환자를 둔 주변인의 고생이 아니다. 이 환자는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받으며 생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이다. 우리가 흔히 늙으면 방금 전의 일은 잘 잊어도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난다고 하는데 알츠하이머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고 진행속도가 무지 빠른 모양이다. 이 환자는 새로 사귄 여자친구, 집까지 오는 길, 주소, 전화번호, 지인의 얼굴 같은 것은 속속 망각의 늪 속에 빠뜨리고 그동안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옛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런데 그 기억은 누구에겐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옛일'이었던 모양.

추리소설적 요소는 그리 강하지 않다. 반쯤 읽다보면 결말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듯. 숨막히게 아슬아슬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잊고 어린애가 되어가는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사건해결의 열쇠가 숨어있다는 사실이 특이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잠 안오는 하룻밤, 금방 빨리 책장이 넘어가는 책이다. 그리고, 혹시 나도 내 어린 시절 기억에 중요한 뭔가가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헛된 망상도 해 보았다. 일곱살 이전의 기억은 깜깜이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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