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나의 성 안에서 나, 선량한 왕은, 웃을 수 없는 왕녀의 소문을 들었다.
        나 역시 진지한 남자로서 웃음을 경멸하노라.
       그래서 나는 그 왕녀를 나의 아내로 삼고자 하노라.
       내가 모르는 것은 그 왕녀가 사는 곳.
       내게 그것을 말해 주면 큰 상금을 받으리라!

뜨내기: 저는 폐하께 왕녀의 성을 일러 드릴 수 있습니다.
      마침 왕녀를 찾아가는 길이니까요.
      그렇지만 진심으로 미리 말씀 올리오니, 희망을 갖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제가 가면 왕녀께서 웃으실 테니까요!

왕: 그대는 헛걸음을 하는 걸세. 들어 보라, 방랑자여.
     웃지 않는 것은 왕녀의 뜻이라네! 그것도 분명한 이유를 갖고.
     모든 것이 한 번은 죽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는 자는 결국은 쓰디쓴 결론에 이르기 마련일세.
     세상은 둥근 것, 번쩍거리기는 하되 비누거품처럼 언젠가는 꺼지는 것이라.
     그럼 그 인간은 생각에 잠겨,
     웃음 대신에 심각하고 엄숙해지지 않겠는가?

뜨내기: 보아하니, 폐하께선 현명하신 분인 것 같군요.
    그렇지만 다른 면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죽음을 향해 사는 사람은, 폐하, 바보인 겁니다.
    왜냐하면, 폐하, 삶이란 현재이니까요.
    유리컵이란 깨어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포도주에 비춰 번쩍거리기 위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설혹 언젠가는 깨어질 것을 알고 있을망정. 하지만 그것이 유리잔으로 있는 한은, 그런 잔은 가득 채워져야 하는 법이지요!


왕: 언젠가는 깨어질 것을 알면서도 어찌 유리잔이 그 번쩍거림을 기뻐하겠는가?

뜨내기: 유리잔은 그것이 영원히 번쩍일 수 없음을 아는 까닭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왕: 방랑자여, 그대는 내 말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구나.
     우리 같이 왕녀에게로 가보세. 가서 웃어 보게. 그래서 왕녀도 어울려 웃는다면,
     그대에게 내 대신 왕의 자리를 갖게 하리라!

뜨내기: 내기는 성립된 것입니다, 폐하! 하지만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웃음은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언제든지 인간을 알아보는 대목은 인간은 적당한 시간에 웃을 줄 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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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나는 80년대 초에 읽었으며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은 88년도판을 헌책방에서 산 것이다. 지금 다시 읽으니 또 새롭다.

이 책은 악마에게 자기 웃음을 팔아버린 소년이 그걸 되찾기 위해 겪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참 좋은 책인데, 난 이런 책이 절판되는 걸 볼 때마다 이 세상에 얼마나 좋은 책이 많을까, 난 그걸 못보고 죽어야 하니 참 아깝다, 하릴없이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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