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의 돼지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24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호르스트 렘케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캐스트너 아저씨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분이다. 비록 그의 작품을 많이는 안 읽었지만(하늘을 나는 교실, 에밀과 탐정 시리즈, 그리고 이 작품) 그의 작품은 한결같이 어린이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어른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의 동화들은 시점이 참 독특한데, 처음엔 1인칭으로 시작하여(여기서 '나'는 작가다) 마치 작가가 주인공들을 만나고 따라다니며 본 것을 쓴 듯이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어느새 '나'가 슬쩍 빠지고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3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나'의 시선이 이야기를 읽어가는 내내 느껴지는데, 그 눈길은 무척 따뜻하고 관대하며 어린이를 존경하고 이해하는 눈길이어서 작가의 품성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2.

나는 한국 작가가 쓴 아동문학을 별로 읽지 않는다. 그것이 훌륭하지 않아서는 절대 아니다. 다만 나랑 좀 안 맞을 뿐이다. 국내 어린이 문학을 읽고 나서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하며 책을 덮게 된다. "유머가 부족해......"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면 두드러기가 나는 이상한 성격탓이긴 하지만 국내 아동문학에 유머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물론 모든 문학에 유머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는 가끔 우리나라에도 캐스트너나 린드그렌 같은 품위있고 따스한 유머를 갖춘 아동문학가가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할 때가 있다.

힘겹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기가 어렵듯이 무겁고 심각하고 진지한 주제를 유머와 함께 풀어간다는 것은 상당한 내공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이 아저씨를 참 좋아하고 이렇게도 생각한다. '인간성도 참 좋았을 거야.......'

 

3.

이 책에는 세 종류의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의 생활을 다룬 이야기, 아이들의 상상력을 다룬 이야기, 그리고 시.

아이들의 상상력을 다룬 이야기는 유쾌하다. 엉뚱하고 황당하다. 그 이야기를 읽다보면 보자기를 두르고 공주놀이를 하는 아이들, 나뭇가지에 올라가 '이랴, 따그닥 따그닥'하는 아이들이 생각난다. 딱 그 얘기다.

아이들의 생활을 다룬 이야기는 뭐랄까....... 너무나 선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삶에 참견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올림픽을 보려고 기숙사를 탈출한 학생의 깜찍한 죄상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벌로 자신의 여행에 동참시키는(이게 벌이라니, 정말 훌륭하지 않은가?) 뵈크 선생님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또 일곱살짜리에게 시장 심부름을 시켜놓고 20미터 뒤에서 몰래 따라가는 엄마도 작가 자신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별로 슬픈 이야기도 아닌데 난 괜히 목울대가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아마 너무 아름답고 애틋한 것을 보면 사람은 저절로 눈물이 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시는...... 좀 아쉽다. 번역본만으로 시의 운율을 느끼는 데는 한계가 있을거란 걸 알기에. 이럴 땐 내가 한 7개 국어 쯤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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