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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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때, 친한 친구가 나에게 <짐크노프>와 <모모>를 알게 해 주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아직까지도 감사하고 있다.

세계고전명작, 한국근대소설선 등 학교에서 권하는 필독도서 밖에 몰랐던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준데 대해서.(그 시절 필독도서, 추천도서는 정말 그랬다)

그때부터 난 용돈을 받으면 서점을 순례하며 숨은 보물찾기에 몰두하곤 했다.

서점 아저씨들이 싫어했을 것이다. 이책저책 뒤적이며 2시간씩 시간 보내다 그냥 나가는 손님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렇게 해서 발견한 책들은 지금까지도 나의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다. 

호비트(반지의 제왕 전편이다),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앵무새 죽이기란 제목으로 나중에 다시 출간되었다), 단추전쟁, 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 코스모스 그리고 <끝없는 이야기>

그 시절(20몇년 전) 이런 책은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요즘와서 많은 이들이 읽고 스테디셀러가 되는 걸 보면서 나는 마치 내가 이 책의 작가라도 되는 양 속으로 흐뭇해하곤 한다.(난 역시 보는 눈이 있어..... 이러면서 말이다)

이 책, 끝없는 이야기를 난 두권을 가지고 있다. 비룡소판과 문예출판사판으로.

문예출판사 것은 차경아 번역본인데 내가 어릴 때 읽은 것과 같은 것이고 비룡소판은 허수경 번역이다.

번역에는 문외한이라 어느 것이 낫다는 말은 못하겠고 각각의 특징을 얘기하자면 차경아 번역본은 말투가 고풍스럽고 옛맛이 나는 말을 많이 쓰나 번역투의 말투가 종종 거슬린다.(어렸을 땐 이것도 멋있었다)

허수경 번역본은 문장이 간결하다. 좀 더 구어체의 문장을 사용한다.

가격은 문예출판사 것이 훨씬 싸고, 디자인과 양장은 비룡소가 낫다.

(이런, 본론은 시작도 안했는데 이렇게 길어져 버렸네........)

그럼 본론.

이 이야기는 뚱뚱하고 못난 소년 바스티안이 <끝없는 이야기>란 책을 읽으면서 책속에 빠져들어가 결국은 책 속의 세계 '환상계'에 들어가게 되고 위기에 처한 환상계를 구하며 우여곡절 끝에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예를 들면,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라는 명제를 좇아 환상계에서 자신의 소원을 따라 여행하는 바스티안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우리 내면의 진실한 소원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게 해준다.

바스티안은 처음엔 미모를, 힘을, 다른 사람이 바치는 존경을, 권력을 얻고 싶어했으나 이 공허한 소원을 다 거친 후에 결국은 타인과의 조화를, 위로받고 사랑받기를, 궁극적으로는 사랑하기를 소원하게 되고 그 소원 덕분에 환상계에서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완벽한 진실이다. 어렸을 때는 그걸 몰랐다. 이야기의 결말이 사랑으로 끝나는 것에 대해 너무 뻔한 것 아니냐고 속으로 불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한다. 모든 이야기가 사랑으로 끝날 수 밖에 없음을. 모든 종교가 사랑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음을. 그것이 인생의 진실이니까.(이제는 이해는 하는데 실천을 못해서 그것이 괴로울 뿐)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인류가 쓰고 말해온 이야기들 전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 세상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끝없는 이야기이며 사람들은 거기서 생명의 물을 길어 자신과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이 이야기는 말한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환상계를, 끝없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지 않기를, 또 헛된 망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방황하는 길잃은 황제가 되지 않기를 소원하며 책을 덮는다.

근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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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이 2004-08-01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크노프는 왜 출판을 안하는거야? 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