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해오라기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53
퀸틴 블레이크 그림, 존 요먼 글, 김경미 옮김 / 마루벌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심 봤다!"

좋은 문장을 보거나 멋진 그림책을 우연히 만나면 내 가슴 속에선 심마니의 외침이 들려온다.

오늘 아이들과 갔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난 건 행운. 아이들은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마다 계속 웃어댔다.

내용이 웃기거나 재밌는 건 아니고, 학과 해오라기의 상황이 그들을 웃기게 하는 것 같았다.

학과 해오라기의 상황이란?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상황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계속 전날의 상처받은 감정에만 빠져 있어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여유도 생기지 않고 무조건 뾰족뾰족 날 세운 내 감정만 내세워 화를 내고, 그 화를 뒤집어쓴 상대방이 슬픔에 빠져 돌아가면 그 순간 또 후회가 밀려오는 그런 상황.

그리하여 또 상대방에게 가서 사과를 하지만 상대방은 다시 마음의 문을 닫아 건 상황.

우리들 모두가 한 번쯤은 겪어봤을 난감한 상황이다.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감정의 줄다리기.

학과 해오라기는 같은 늪 반대편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었다. 학은 외롭다고 느끼며 결혼할 결심을 한다. 그런데 이 도입 장면도 학의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져 웃음을 유발한다.

"하루는 학이 야트막한 흙탕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다가 문득 아주 외롭다고 느꼈어요. 학은 잠깐 동안 왼발을 들어서 오른다리 뒤쪽을 긁적이다가 중얼거렸어요." (P.4)

꼼꼼하게 몸단장을 한 학은 설레이고 긴장된 마음으로 해오라기에게 청혼하러 가지만 분위기도 잡기 전에 뜬금없이 본론이 나와 버리고 당황한 해오라기도 당황한 탓에 자신의 진심을 속이고 학을 인신공격하며 학에게 화만 낸다.

그 후 학은 절망스러워 자기 둥지로 돌아 오고 해오라기는 후회가 밀려 와 사과를 결심하고 결혼을 승낙한다는 말을 하러 가지만 학은 받아주지 않는다. 아니 자기 감정에만 빠져 있어 해오라기의 진심을 알지 못한다. 

이 후 이러한 상황이 반복된다. 나는 동화책을 읽으며 어른동화를 읽는 기분이었고 계속하여 서로 오해하며 서로의 사랑을 읽지 못하는 학과 해오라기를 보며 우리 아이들은 킬킬대며 웃었다.

사실은 슬픈 상황이지만, 제3자의 입장에선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재밌게 읽은 그림책이었다. 어른들에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맺기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어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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