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외 - 2006년 제7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지아 외 지음 / 해토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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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참말 이상하지야. 아궁지 속을 들에다보고 있으먼 세상 근심이 다 없어져야. 옛날 어른들이 눈보라가 사램을 홀린다등만 불도 그런갑서. 아궁지 앞에 앉아 있으먼 시간이 훨훨 날아간당께. 꼭 멋에 홀린 것맨치로. 어머니는 눈 가득 불길을 담은 채 어린 그에게 속삭이곤 했다. 그럴 때의 어머니는 화전 밭에서 돌멩이를 치마폭에 담아 나르거나 형과 누이들을 떠나보내며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던 어머니와는 사뭇 달랐다.-p.10-11쪽

강나루에서 끝나는 신작로까지가 어머니의 품이며 그의 세계였던 것이다. 다른 삶을 기웃거렸던 형들은 죽고, 외딴 집에 머문 그만 살아남았다. 다행일 것도 불행일 것도 없었다. 집 앞 상수리 숲이 큰 바람을 껴안고 요동칠 때 질경이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죽은 듯 바람을 피했고, 키 큰 포플러가 환희에 들떠 온몸으로 햇살을 튕겨낼 때 민들레는 한 줌의 햇살로 그 빛을 닮은 샛노란 꽃을 피워냈다. 길바닥의 질경이도, 키 큰 주목도,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꼭 저만큼의 바람과 햇볕과 비를 끌어안고 태어나 죽는 것이다.-p.25-26쪽

어매, 나가 왜 세상에 나왔는 중 안가?
바삭바삭, 경쾌한 소리가 좋아 멍석에 깔린 콩대 위를 팔짝팔짝 뛰어 다니던 그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멍석 한 켠에서 콩대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낭자한 머리에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쓴 어머니는 일손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왜 나왔는디?
어매 뱃속에 있는디 되게 심심허잖애. 시상에 나가먼 먼 재밌는 일이 있능가 글고 얼릉 나와부렀제.
아직 젊었던 어머니는 땡볕에 까맣게 그을긴 했으나 지금과 달리 윤기 흐르는 얼굴 가득 웃음을 피워 올리며 물었다.
내 새끼, 그래 시상에 나와봉께 재미난가?
이. -p.26-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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