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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아저씨의 뜨개질 ㅣ 벨 이마주 17
디 헉슬리 그림, 마거릿 와일드 지음, 창작집단 바리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엄마 품을 벗어나 세상의 바람을 쐬면서부터 우리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나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또래 아이, 내가 중시하는 딱지나 만화 영화 속 주인공이 얼마나 근사한 가치를 지니는 지 맞장구 쳐 주는 아이, 보기만 해도 이 세상의 신나는 음악들이 어디선가 쏟아져 나와 나를 춤추게 할 것 같은 아이..
내 경험으로 십 대까지가 가장 친구와 긴밀하게 교감을 나누는 시기인 것 같다. 그 후로는 각자 자기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을 담금질하며 취직시험에 몰두하거나 사랑을 만나 또 새로운 인생이 열리기 때문에 친구와 조금은 소원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닉 아저씨와 졸리 아줌마가 친구로 나온다.
매일 아침 도시로 가는 일곱 시 기차 안에서 그들은 뜨개질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둘 다 뜨개질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졸리 아줌마는 장난감을 뜨고 닉 아저씨는 조카 스물 두 명을 위해 점퍼를 뜬다. 그리고 서로가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며 뜨개질을 한다. 친구란 이렇게 무언가에 대해 공통점이 있거나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다.
"닉 아저씨는 뜨개질하는 것도 좋고, 졸리 아줌마 옆에 앉는 것도 좋았어요."(p.8)
이 평범한 문장 속에 나는 '친구'의 의미가 다 실려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졸리 아줌마가 기차를 타지 않았다. 닉 아저씨는 졸리 아줌마의 빈 자리를 간절히 느끼게 되고 뜨개질조차 재미가 없게 된다.
월, 화, 수요일까지 졸리 아줌마가 기차를 타지 않았는데 목요일에야 닉 아저씨는 졸리 아줌마가 아파서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기차를 타지 않고 대신 장을 보러 간다. 털실이랑 코바늘을 사서 졸리 아줌마를 병문안 갔다. 그는 아프고 외롭고 답답한 일상을 보내는 졸리 아줌마를 꼭 껴안아 주고는 아줌마를 기쁘게 해 줄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7일 밤낮을 쉬지 않고 닉 아저씨는 뜨개질만 한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목욕을 하면서도, 저녁밥을 지으면서도, 라디오를 들으면서도 그는 뜨개질을 계속한다. (이 장면의 그림이 재미있어 아이들은 웃었고, 나는 왠지 코끝이 찡해졌다)
8일째 되는 날, 그는 졸리 아줌마를 찾아가 커다란 꾸러미를 내 놓는다.
오오 그것은 기차 안에서 내다 볼 수 있는 바깥의 풍경을 전부 뜨개질 해 놓은 것이었다. 게다가 기차의 모습까지도.
그것은 졸리 아줌마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이었고, 그 마음을 아는 닉 아저씨가 뜨개질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이제 아침 일곱 시 기차 안에서 닉 아저씨는 혼자 뜨개질을 한다. 옆에 없지만 친구인 졸리 아줌마를 느끼며 그는 평온한 마음으로 뜨개질을 할 것이다.
병원에 있는 졸리 아줌마도 뜨개질을 한다. 그는 닉 아저씨의 작품을 보며 세상의 풍경들과 마음껏 함께 있는 것이다. 병원에 있는 게 아니라..
책을 덮으며 참으로 마음이 뭉클했다. 번잡한 일상 속에서 가물가물하게 잊혀져 가는 '우정'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고, 남녀가 '친구'가 될 수 있는 동화 속의 세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사람이 갖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우정이 있는 것 만으로도 아름다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