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는 우리 둘째가 첫째보다 더 좋아했던 책이다. 27개둴 된 지금은 좀 뜸하지만 15개월 이후 두돌 전후까지 많이도 읽어 겉표지는 많이 낡았다. 근데 이렇게 동화책이 낡으면 나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사 준 책들 중에 성공한 경우니까 말이다. 고릴라를 좋아하는 한나와 아빠, 그리고 고릴라가 나오는 이 동화책은 환상적인 장면들이 많다. 작은 고릴라 인형이 갑자기 남자어른처럼 커져서 동물원에 가고 싶은 한나의 소원을 들어주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장면들이 그것. 그리고 고릴라나 침팬지 오랑우탄 같은 동물들의 모습이 실제 사진처럼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고릴라와 한나가 데이트하는 장면들에는 세부적인 그림마저도 죄다 사람 대신 고릴라를 등장시켜 재미있다. 자유의 여신상마저도 자유의 고릴라상으로 그려져 있다.그런데 사실 이 그림책은 아빠와 소통하고 싶은 한나의 쓸쓸한 마음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야기 대부분은 고릴라가 나오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빠랑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한나의 절실한 마음을 느낄 수 있고, 그러지 못할 때 아주 위축되는 한나의 모습이 무척 안타깝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은 어른들이 느끼는 것이고, 아이들은 고릴라와 한때를 보내는 한나의 즐거운 모습이 더 인상적인 것 같았다. 집에 꼭 한 권씩은 있으면 좋을 듯한 그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