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한 지 30년이 훌쩍 넘은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텍스트는 무조건 읽고 보았으니, 책 자체에 애정이 너무나 크고 그저 좋을 뿐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에는 책을 아무리 사도 어차피 우리 집 책장에 잘 꽂혀 있었으니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집을 나와 취업하고 결혼을 하기까지, 좁은 공간에 책이라는 물건을 잔뜩 두기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책을 책장에 꽂아 넣었을 때의 기분은 정말 좋지만, 그것도 한 20~30권 정도여야 괜찮지 세 자릿수를 넘어가면 공간적인 부담이 너무 크다. 책을 좋아한다는 건 결국 부동산의 문제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공간을 줄여보고자 이사 때마다 책을 잔뜩 판매하곤 했다. 중고로, 그것도 헐값으로 팔기 일쑤였다. 때로는 전자책으로 눈을 돌리기도 하지만, 역시 책은 종이책이다.

종이책은 부피도 부피지만 무게도 꽤 나간다. 우리나라 독서 시장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문고본이나 페이퍼백을 많이 출간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기에, 가볍게 들고 다니며 읽고 싶은 책들임에도 들고 다니기에는 버거운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가벼운 전자책을 보자니 종이책 특유의 읽는 맛이나 감성이 잘 살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에 열린책들에서 기존 세계문학 전집을 읽기 편하게 제작한 모노에디션을 출간했다. 양장본을 반양장으로 바꾸고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비용을 8,800원까지 확 낮춘 것이 특징이다.

한 시즌에 5권씩 총 4개 시즌이 진행되어, 이번 네 번째 시즌까지 총 20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좋은 기회에 네 번째 시즌 5권 중 2권의 책을 일찍 읽을 수 있었다. 확실히 전자책으로 읽다가 종이책으로 읽으니 눈도 편하고, 화면 해상도 같은 것을 신경 쓸 필요도 없으며 종이를 넘기는 손맛도 있다.

거기에 더해 기존 책들보다 무게를 확 덜어서 너무나 가벼워져 손목과 어깨의 부담을 확 줄여준다. 열린책들의 기존 세계문학전집과 모노에디션은 모두 46판이라고 불리는 크기의 책이다.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세계 문학 전집으로 유명한 다른 출판사들의 책과 비교해도 크기가 작다. 가벼운데다 작아서 휴대성이 높기까지, 읽기 자체에 몰입하기에는 최적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노에디션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혹자들에게는 표지가 쉽게 훼손되고 구겨진다는 것이 단점일 수 있겠지만, 8,800원의 책에 무엇을 그렇게 크게 바라겠는가. 정말 가볍게 읽으라는 의도가 가득한 책이다.

만약 내가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작품 중 정말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 집중한다면, 무조건 열린책들의 모노에디션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기존의 열린책들 양장본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도 양장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출판사들의 책보다는 훨씬 가벼워서 참 좋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은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과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총 두 권이다.

안톤 체호프는 <벚꽃 동산>과 <갈매기>로 유명한 희곡 작가로 내게 각인되어 있는데, 오히려 이 두 개의 희곡은 읽지 않았고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던 체호프 단편선을 읽었다. 그 책과는 단편 두 편 정도밖에 겹치지 않는 것 같다.

가볍게는 서너 쪽짜리 단편도 있고, 50쪽이 넘어가는 약간 중편 같은 작품들도 있다. 평소에 러시아 작가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작품들은 너무 길고 인물도 많아서 뭔가 너무 수다쟁이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실히 체호프의 단편들을 읽다 보니 내가 러시아 문학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했던 그런 장황함이나 너무 긴 이야기를 싫어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체호프의 단편은 아주 마음에 든다. 이게 1899년에 출간된 도서라고 되어 있는데, 100년도 더 넘은 이야기가 어째서 현대 사회와 이리도 비슷한지 참 놀랍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읽다 보면 고전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너무 심오하다는 인상을 잘 지울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단편들은 대부분 인물들의 말로가 죽음이나 슬픔, 비애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점이 되게 씁쓸하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아주 직시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옛날부터 읽어야지 했던 책인데, 이번에 좋은 기회로 읽게 되어서 참 좋았다. 이게 1929년에 쓰인 글이니 이제 3년만 지나면 딱 100주년이다. 아마 2029년에 자기만의 방 출간 100주년 에디션 같은 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많은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100년 전의 이야기인데도 현실은 아직도 우리 한국 사회나 다른 외국의 남녀 차별 또는 페미니즘 이야기들과 많이 겹친다고 느껴진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세상은 아직 그대로인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도, 그래도 100년 전보다는 조금 더 나아졌으니 너무 서로 미워하고 분열하지 않는 마음으로 서로를 좀 보듬으며 앞으로 같이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기만의 공간과 여기서 말했던 1년에 500파운드의 돈, 즉 금전적인 여유 같은 것은 100년 전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도 여성이지만 사회적 약자나 최하층에게 여전히 유용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두 권의 책 모두 출간된 지 100년이 넘었는데, 현대사회와 묘하게 겹치는 것들이 있어서 역시 고전은 왜 고전인지, 왜 사람들이 이렇게 꾸준히 읽어오는지, 위대한 작품은 왜 위대한지 같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두 권의 책 모두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었지만, 모노에디션을 경험해 보고자 종이책으로 2주 동안 들고 다녔는데 너무 마음에 든다. 전술했듯이 모노에디션으로 나온 책 중에 읽고 싶었던 책들은 꼭 이 에디션으로 구매해서 읽으려고 한다.

아마 다음은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과,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가지고 있지만 너무 두껍고 무거우며 판형이 영 맘에 들지 않아서 보관만 해 두었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될 것 같다.

덧. 다른 세계문학전집보다 열린책들의 이 시리즈에 애착이 가는 이유는, 예전에 아이패드로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앱에서 오픈 파트너로 펀딩 차원에서 구매를 하기도 했고, 나중에 다른 인터넷 서점으로 이관될 때 R사로 받았지만 A사에서도 세계문학전집을 전자책으로 또 구매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애정이 많이 가는 출판사다.

8,800원이라는 금액은 솔직히 금전적으로 거의 남는 게 없는 장사일 텐데, 이렇게 읽는다는 행위에 집중하게 만들어 준 출판사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독서 시장도 많이 커져서,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문고판 사이즈의 책, 특히 페이퍼백 같은 것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출판사들 장사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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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저북으로 앞의 일부분만 읽었다.

저자는 2016년부터 10년 동안 신문에 한 달에 한 번씩 벽돌책을 간단히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고 한다. 그 기사들을 모은 책이 바로 장강명 작가의 <살면서 한 번은 벽돌책>이다.

사실 벽돌책은 읽기에 참 애매한 책이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서문과 목차, 그리고 결론만 읽어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고, 요새는 ChatGPT를 활용한 검색이나 리서치 등을 통해 내용을 쉽게 파악하곤 한다.

나 또한 작가가 말하는 벽돌책, 즉 700쪽 이상의 종이책을 많이 읽은 경험은 없다. 대학생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동안 700쪽 이상 되는 책을 1년에 한 권이라도 읽었나 싶다.

그런데 장강명 작가는 이런 책을 매월 한 권씩 읽어 소개한 것만 100권이라고 하니 정말 대단한 것 같다. 100권의 목록을 쭉 훑어봤을 때 내가 읽은 건 겨우 4권뿐이었다. 그마저도 2권은 소설이라 아주 어려운 독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벽돌책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확실히 이렇게 읽기 어려운 책을 끝까지 견디며 읽고 나면, 독서에 대한 기초 체력이 부쩍 증가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벽돌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논리를 따라서 읽는 것도 힘들고, 어차피 결론은 하나인데 너무 말만 중언부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바로 그 논리를 따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단순히 결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이 나오기 위해 어떤 역사적,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짜였는지 그 논리를 파악해 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 장르의 벽돌책을 다시 좀 읽어봐야겠다. 논픽션 같은 것은 어떻게든 읽겠는데,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든가 여기서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총, 균, 쇠>나 <사피엔스> 같은 책은 읽기는 했어도 논리는 커녕 내용을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지금도 그렇지만 읽을 것이 쌓여 있기 때문에 벽돌책을 차분하게 읽을 여유가 전혀 없었다.

장강명의 신작 도서 목록에 있는 100권을 보고 나니 벽돌책 읽기에 대한 의욕이 타오른다. 하지만 이 의욕이 실제 독서 행위로 이어져야 옳은 방향일텐데. 그동안 벽돌책을 전자책으로 읽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종이책으로 읽으려고 한다. 무겁고... 두꺼우니까...

그런데 이런 ‘책에 대한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소개를 읽고 나서 ‘아, 이 책 다 읽었네‘라고 스스로 착각하는 순간이 온다는 점이다.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700쪽 이상인 책을 한 번이라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이후 모든 텍스트를 대하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경험이 있는 아마추어 러너가 달리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벽돌책 독서가 최고라거나, 많이 할수록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지적인 성인으로 성장하고 싶은 분께는 한 번은 경험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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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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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노숙견 이시봉이 고양이를 구하는 동영상이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시작된다. 앙시앙 하우스에서 이시봉을 찾아온다. 꼬질꼬질하고 더러운 이시봉이 사실은 고급 혈통을 자랑하는 비숑 프리제였다! 시습은 이시봉을 앙시앙 하우스에 입양시키라는 요청을 받고 큰 고민에 빠진다. 시습과 주변인들 모두 마음이 흔들리는 가운데, 비숑 프리제의 찬란하면서도 비극적인 역사가 펼쳐진다.

이야기꾼 이기호의 소설답게 500쪽이 넘는 책이 후루룩 읽혔다. 읽는 재미는 엄청난데, 결말이 상당히 아쉽다. 초반에 흥미롭게 벌려 놓은 사건과 설정이 명쾌하게 회수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책을 다 읽고 든 생각. 개가 무슨 죄가 있겠니, 다 사람이 문제지. 이시봉은 의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도, 혈통과 돈에 미쳐 그를 뒤쫓는 사람들의 온갖 군상도 모두 사람이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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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일하는 삶의 경제학
이상헌 지음 / 생각의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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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도파민 뿜뿜 소설에 빠져 지내다가, 오랜만에 사회과학 서적을 꺼내들었다. 책걸상 팟캐스트에서 소개된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제목부터가 현재의 대한민국 나아가 전세계에 묵직하게 다가오지 않는가. 팟캐스트 방송에서 워낙 호평을 해서 큰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었다. 책은 실업과 고용이라는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노오력이나 정치의 숫자놀음이 아닌 복잡한 사회적 함의를 지닌 거대산 담론임을 깨닫게 해준다.

2.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실업률 통계가 현실을 100% 반영하지 못하고 얼마나 왜곡하는지 지적하며 시작한다. 임금, 노동 시간, 기술 발전, 이주 노동 등 일자리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폭넓게 다룬다. 저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일할 의지나 육아 휴직 등의 여러 변수가 고용 지표를 어떻게 모호하게 만드는지 설명한다. 또한 높은 임금과 최저 임금이 오히려 생산성과 시장의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입증하려고 한다. 나아가 기술 발전이 초래하는 일자리 감소가 주로 비숙련직에 집중되는 현상과 이주 노동자가 내국인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편견에 반박한다.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헌법적인 노동 권리 보장과 올바른 재정 정책 같은 사회적, 공적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3.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임금과 생산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부분. 흔히 기업은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주면 생산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 노동자가 느끼는 ‘배신감‘이 근본적으로 생산성을 저하시킨다고 지적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겪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이익에 비해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직원의 성토가 있던 당시, 언더마이닝 효과(보상이 내재적 동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심리학 이론보상)를 사내 게시판에 게시했다가 직원들의 거센 비난을 받고 삭제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책의 주장처럼, 성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따르지 않을 때 노동자는 기업에 대한 애착을 잃고, 이는 결국 기업의 손해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경영진들은 그저 숫자에 매몰되어 간과하곤 한다. 높은 임금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통념 역시, 봉급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는 저자의 분석이 날카로웠다.

4. 이외에도 많은 부분을 배웠다. 러다이트 운동이, 기계가 일자리를 뺏는다고 단순한 기계 파괴 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이것이 실업에 대한 제도적, 정치적 해결책이 부재하자 노종자가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었음을 설명한다. 또한, 이주 노종자가 자국민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오해와 달리, 그들이 기피 업종을 선택함으로써 산업의 지탱하고 기반을 다져준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특히 이주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해당 산업 전체의 임금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이런 차별이 결국 우리 사회의 불안정성을 키울 수 있음을 경고한다.

5. 다만 책의 결론인 9장은 다소 아쉽다. 앞선 장들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분석과 현실적인 통찰에 비해, 9장은 일할 권리 보장이나 올바른 재정 정책 같은 다소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방법 제시에 그친 감이 있다. 너무 바른 말만 나열하다보니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이상을 끈질기게 추구해야만 팍팍한 현실의 노동 환경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에서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는 일자리에 대한 오해를 걷어내고, 노동 시장의 구조적, 현실적 문제를 직면하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길잡이라 할 수 있겠다. YG의 코멘트처럼, 일자리 정책 담당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동 가치를 고민하고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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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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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5년 봄, 한번 입소문을 타고는 유행이 들불처럼 번졌던 <혼모노>. 5월에 전자책으로 사놓고는 읽기 못했는데, 유행하고 유명해서 청개구리 심보로 안읽은 게 아니라, 그냥 사놓은 책은 안 읽게 되는, 책 맥시멀리스트라면 응당 느낄 감정 때문에 쉽게 책을 펴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고 연말이 되어서야 읽게 된 책은,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처럼 확실히 읽는 재미가 있는, 소위 잘 읽히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2.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을 집어보자면... 겉과 속이 다른 세상, 즉 표리부동함 속에서 우리가 믿어왔던 가치들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주는 것일테다. 작가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진짜(혼모노)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규정하는 수많은 경계들이 얼마나 모호한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3. ‘스무드‘와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가 이런 모순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스무드‘의 화자는 겉으로는 매끄러운 구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는 예술 작품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모순된 상황에 던져진다. 극우 집회에 참여하여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드는 노인들은 사회 통념상 부적적인 대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곤경에 처한 화자에게 가장 따뜻한 호의를 베푸는 개인으로 다가온다. 집단으로서의 광기와 개인으로서의 선량함이 공존하는 이 장면은, 나는 타인을 어떤 잣대로 재단해왔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물론 따뜻한 개인이 모여서 광기의 집단이 된다고도 볼 수 있고. 
‘길티 클럽‘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하고 지지하는 대상이 도덕적 결함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그를 옹호하거나 비난할 수 있는가? 작가는 맹목적인 지지와 방관, 그리고 합리화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4. 이러한 질문은 ‘구의 집‘과 ‘우호적 감정‘으로 이어진다. 고문을 자행하는 권력자를 위해 설계된 건축물은 과연 인간을 위한 예술이라 불릴 수 있는가. 자본의 논리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진정으로 좋은 방법인가. 소설은 돈과 법, 그리고 기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좋음과 올바름의 정의가 어떻게 왜곡되는지 파해친다.

5. 물론 모든 단편이 모두 와닿지는 않는다. 표제작인 ‘혼모노‘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작품인 ‘메탈‘은 전형적인 청춘 소설의 문법을 답습하여 앞선 작품들이 주었던 날선 시선에 비해 다소 평이하고 진부한 인상을 준다.

6. 호불호가 꽤나 갈리는 가운데 <혼모노>는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었다. 소설 속 인물이 겪는 모순과 그들이 마주한 딜레마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매우 어려운 숙제와도 같았다. 나는 과연 어떤 시선으로 혼돈이 가득한 이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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