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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1. 2025년 봄, 한번 입소문을 타고는 유행이 들불처럼 번졌던 <혼모노>. 5월에 전자책으로 사놓고는 읽기 못했는데, 유행하고 유명해서 청개구리 심보로 안읽은 게 아니라, 그냥 사놓은 책은 안 읽게 되는, 책 맥시멀리스트라면 응당 느낄 감정 때문에 쉽게 책을 펴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고 연말이 되어서야 읽게 된 책은,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처럼 확실히 읽는 재미가 있는, 소위 잘 읽히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2.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을 집어보자면... 겉과 속이 다른 세상, 즉 표리부동함 속에서 우리가 믿어왔던 가치들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주는 것일테다. 작가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진짜(혼모노)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규정하는 수많은 경계들이 얼마나 모호한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3. ‘스무드‘와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가 이런 모순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스무드‘의 화자는 겉으로는 매끄러운 구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는 예술 작품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모순된 상황에 던져진다. 극우 집회에 참여하여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드는 노인들은 사회 통념상 부적적인 대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곤경에 처한 화자에게 가장 따뜻한 호의를 베푸는 개인으로 다가온다. 집단으로서의 광기와 개인으로서의 선량함이 공존하는 이 장면은, 나는 타인을 어떤 잣대로 재단해왔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물론 따뜻한 개인이 모여서 광기의 집단이 된다고도 볼 수 있고.
‘길티 클럽‘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하고 지지하는 대상이 도덕적 결함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그를 옹호하거나 비난할 수 있는가? 작가는 맹목적인 지지와 방관, 그리고 합리화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4. 이러한 질문은 ‘구의 집‘과 ‘우호적 감정‘으로 이어진다. 고문을 자행하는 권력자를 위해 설계된 건축물은 과연 인간을 위한 예술이라 불릴 수 있는가. 자본의 논리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진정으로 좋은 방법인가. 소설은 돈과 법, 그리고 기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좋음과 올바름의 정의가 어떻게 왜곡되는지 파해친다.
5. 물론 모든 단편이 모두 와닿지는 않는다. 표제작인 ‘혼모노‘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작품인 ‘메탈‘은 전형적인 청춘 소설의 문법을 답습하여 앞선 작품들이 주었던 날선 시선에 비해 다소 평이하고 진부한 인상을 준다.
6. 호불호가 꽤나 갈리는 가운데 <혼모노>는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었다. 소설 속 인물이 겪는 모순과 그들이 마주한 딜레마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매우 어려운 숙제와도 같았다. 나는 과연 어떤 시선으로 혼돈이 가득한 이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