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글리코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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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로운 소설이다. 보통 ‘본격‘이라 하면 추리소설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인데, 대개는 사람을 어떻게 기발하고 색다른, 때로는 현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죽일 것인지를 고민하는 작품들이 많다.

이 소설은 그 트릭을 서로 게임하는 데 활용한다. 그것도 아주 기발한 방식으로 말이다.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이며, 트릭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트릭 자체만 놓고 본다면 네 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마음에 든다. 반면 속임수에 또 다른 속임수로 대응하는 방식의 에피소드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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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눈이 내리다
김보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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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보영과 정보라를 자꾸 헷갈릴까? 이름이 비슷하다기엔 가운데 ‘보’ 하나 빼고는 닮은 구석이 거의 없는데 말이다.

정보라의 <너의 유토피아>는 다소 아쉬웠지만, 김보영의 <고래눈이 내리다>는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다시 <너의 유토피아>를 읽고 평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가가 서로 달랐다니, 허허.

완전한 하드 SF는 아니다. 김초엽의 작품보다는 조금 더 문제의식이 뚜렷하고 문체가 단단한 편이다. 두 작가의 작품은 호불호를 가리기보다 각자의 매력이 분명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좋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은 <고래눈이 내리다>다. 대멸종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세계의 훌륭한 SF 선집>에 수록되었고 로제타상 후보작이기도 했다. 읽다 보면 기후 위기를 다룬 <여섯 번째 대멸종>이 자연스레 연상되는데, 흥미롭게도 그 책의 번역가 역시 김보영이라는 동명이인이다.

앞서 읽은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 세 편과 <종의 기원담>에 이어 이번에 만난 <고래눈이 내리다>도 만족스러웠으니, 이쯤이면 나와 잘 맞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오래전부터 벼르고 별렀던 <7인의 집행관>을 읽을 차례다. 2013년 출간 직후부터 무려 10년 넘게 보관함에 잠들어 있던 책이니, 드디어 꺼내들 순간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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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워커
프리다 맥파든 지음, 최주원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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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타임용으로 딱 좋은 소설이다. 도파민이 터지고,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는 소설. 검색해보니 프리다 맥파든이 이런 류의 소설을 잘 쓰는 작가인 듯하다.

초중반은 흡입력이 있었지만, 3분의 2 지점쯤부터 사건의 구조가 드러나면서 긴장감이 크게 줄어든다.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사용한 어떤 소설과 설정은 닮았지만, 상대적으로 긴장감도 덜한 편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소설 속 인물들에게 속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아무도 믿지 말 것.˝ 이 소설에 정말 잘 어울리는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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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
바버라 킹솔버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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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힘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상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바버라 킹솔버의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뉴욕타임즈 독자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한 이 소설은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재해석했다. 단순한 각색이 아닌,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현대 미국의 맥락에서 재조명했다.

이야기의 무대는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의 시골 지역이다. ‘힐빌리‘나 ‘레드넥‘이라는 경멸적인 단어로 불리는 이곳 주민들의 삶은, 우리가 아는 미국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 데몬(본명은 데이먼이다)은 태생부터 불운했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약물 중독에 시달린다. 그의 성장기는 곧 미국 복지 시스템의 민낯을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자란 데몬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아동 노동을 강요받고, 오히려 위탁 가정에 돈을 내야 하는 현실.

잠시나마 빛을 발했던 미식축구 선수로서의 꿈도 부상으로 무너진다. 단순한 부상의 문제가 아니다. 제때, 그리고 제가격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 - 의료 서비스의. 빈부 격차가 만든 비극이다. 미국의 의료 체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꿈을 짓밟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욱 암울한 것은 이 지역을 휘감고 있는 약물의 그림자다. 대마초는 기본이요, 마약성 진통제까지 만연한 이곳에서 약물중독은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현실도피라는 달콤한 유혹은 결국 더 깊은 절망으로 이어질 뿐이지만, 이를 막을 사회적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작가는 돈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전통적 생활방식은 구식이라며 무시당하고, 대신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킬 뿐이다. 특히 미국 중부 지역의 경제적 몰락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참혹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열심히 살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물음에 소설은 쓴웃음으로 답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들. 교육, 의료, 복지의 기회가 철저히 차단된 환경에서 노력이란 단어는 허상에 가까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데몬의 수많은 실패는 바로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말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데몬은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그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결말이다. 삶은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으로 단순히 정의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는 단순히 힐빌리나 레드넥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작품이 아니다. 이 소설은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가장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조차 이런 어두운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며, 우리 주변에도 비슷한 문제들이 있음을 돌아보게 만든다.

소설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낯선 배경과 인물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투영하고, 이를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이 작품은 단순히 한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데몬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가진 진정한 가치이다.

바버라 킹솔버는 이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그리고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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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11-2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가 이 소설에 묘사된 어두운 사회적 배경과 닮아가고 있다고 느껴져요. 이미 물질만능주의 사회가 되어버렸고, 우리나라는 이제 약물 청정국이 아니잖아요.. ^^;;

양손잡이 2024-11-24 22:17   좋아요 0 | URL
어느 가닥으로는 비슷한 단계로 들어섰다고 생각합니다 ㅠ.ㅠ 그래도 약물은... 어떻게든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ㅎ
 
결혼 계약 을유세계문학전집 136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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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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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에서 ‘결혼 계약‘과 ‘금치산’을 한 권에 묶어 출간했다. 이 두 작품은 발자크의 대작 ‘인간극‘ 시리즈의 일부다. 인간극은 수많은 인물과 사건을 다루며 인간 본성과 사회의 이면을 탐구한다. 발자크의 가장 유명한 장편인 <고리오 영감>도 그 중 하나다.

‘결혼 계약‘은 제목만 들으면 현대의 계약 결혼을 연상케 하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다르다. 이 소설에서 결혼 계약이란, 두 집안이 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재산을 꼼꼼히 따져보고, 결혼 후의 재산 관리와 상속 문제를 조율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즉, 결혼이 감정의 결합이 아닌 하나의 사업으로 다뤄지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폴 마네르빌 백작은 미모의 나탈리 에방젤리스타와 결혼하려 한다. 그러나 나탈리의 어머니인 에방젤리스타 부인은 딸에게 줄 지참금이 없다. 남편에게 상속받은 딸의 지참금을 너무 많이 소비한 상태다. 이로 인해 두 가문의 공증인들은 각자의 의뢰인에게 유리한 계약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협상을 벌인다. 이 협상 과정이 작품의 백미.

표면적으로 이러한 결혼 계약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양측의 이해관계를 명확히 하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혼을 진행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불합리한 점들이 드러난다. 특히 여성의 재산권이 심각하게 제한되는 점이 눈에 띈다. 아내가 가져오는 지참금은 결국 남편이 관리하게 되어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이 사실상 박탈된다.

이런 맥락에서 에방젤리스타 부인이 자신과 딸 몫의 재산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은 단순히 탐욕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녀의 행동은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재산권을 지키려는 처절한 노력이 아닐까? 발자크는 이를 통해 19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성별에 따른 재산의 불평등 문제를 비판한다.

한편 ‘금치산‘은 결혼 후의 재산 문제를 다룬다. 데스파르 후작 부인이 남편의 정신적, 지적 능력이 손상되어 재산 관리 능력이 없다며 금치산 선고를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담당 판사 포피노가 후작과 그의 부인 양측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가정사가 아니라, 당시 프랑스 사회의 복잡한 역사적, 정치적 맥락이 드러난다. 특히 후작이 벌이는 일들은 과거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재산 문제, 수탈의 역사까지 연결된다. 프랑스 제국의 작가인 발자크의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게 아이러니다. 그만큼 그가 진보적이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발자크는 이 작품들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결혼이라는 신성한 제도가 어떻게 돈과 권력의 거래로 전락하는지, 법이라는 공정해야 할 장치가 어떻게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들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는가? 지금 결혼과 돈, 법의 관계는 어떠한가? 여성의 권리는 얼마나 신장되었는가? 발자크는 우리에게 시대를 뛰어넘는 질문을 던진다.

끝에서 아쉬운 소리 하나. 두 작품 모두 돈과 민법을 소재로 삼아서인지, 발자크의 다른 유명작인 <고리오 영감>에 비해 서사적 긴장감은 떨어진다. 기나긴 묘사도 단점이다. 그러나 이런 세세한 설명과 묘사는 돈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갈등, 그리고 교묘한 속임수를 생생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 을유문화사에서 <골동품 진열실>에 이어 <결혼 계약>을 출간한 것으로 보아, 발자크의 작품에 의욕이 상당한 것 같다. 을유야 번역으로 항상 칭찬이 자자하니, 인간극을 본격적으로 독파하고 싶어 하는 독자라면 을유의 책으로 쭉 달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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