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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업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8
강화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8월
평점 :
서지정보
* 지은이: 강화길
* 제목: 풀업
* 출판사: 현대문학
* 출간 연도: 2023.08
* 페이지: 128쪽
저자와 작품 소개
<풀업>은 현대문학의 경장편 소설 시리즈인 핀의 48번째 소설이다. 시리즈 특유의 작은 판형이 돋보이고, 128쪽으로 단편에 가까운 작품이다.
강화길 작가는 2017년 ‘다른 사람’으로 젊은작가상 수상을 통해 대중 앞에 섰다. 2020년에는 단편소설 ‘음복’으로 현대문학상, 젊은작가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이후 단편집 <화이트 호스>, 장편소설 <대불호텔의 유령> 등을 출간했다.
간단한 줄거리
소설은 서른여섯 살 지수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지수는 어머니 영애와 소도시 외각의 오래된 빌라 ‘무궁화 궁전’에 산다. 지수는 벌이가 적고, 전세사기를 당해 얼마 있지도 않던 돈까지 잃었다. 이들의 어려운 형편을 돕는 건 지수의 동생, 미수다.
미수는 이 집안의 버팀목이다. 지수는 언니된 입장으로 도움이 못되는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엄마(영애)와 동생(미수)에게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한다. 영애는 자연스럽게 미수를 더 아끼고, 미수는 엄마에게 소홀해 보이는 언니(지수)를 타박하기 일쑤다.
셋 사이에 앙금이 쌓이는 와중에, 지수는 새벽에 집앞에서 한 여자를 본다. 매일 아침 무궁화 궁전 앞을 달리는 여자였다.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한 건물로 들어간다. 건물 5층에는 헬스장이 있었고, 지수는 운동을 시작한다. <풀업>은 지수가 운동을 하면서 몸을 다스리는 이야기이자, 동시에 마음을 다스리는 이야기이도 하다.
조금은 특별한 가족 이야기
<풀업>은 전형적인 가족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야기에 아빠는 등장하지 않지만, 미수는 이 집을 경제적, 심리적으로 지탱한다. 미수는 아빠와 성별만 다를뿐 실질적인 가장이다. 여기에 다소 나약한 엄마와 딸이 등장하고, 이들은 처음에는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삐그덕거린다. 어떤 일화를 겪으며 서로 화합하는 이야기…가 원래 가족 서사여야 하는데, 지수네 가족은 그렇지 못하다.
셋은 결말에 다다라서도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 울고 불고 후회하고 용서를 바라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가시고기>식의 결말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미움은 그대로인 상태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환하고 밝은 사랑 이야기만 있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소설 속 해피엔딩이 아닌,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진심으로 미워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연대를 부수는 이야기
가족 서사는 흔히들 연대를 중시한다. 독선적이고 고집불통인 아버지가 등장하는 경우 어머니와 딸, 거기에 자매의 연대가 더욱 강조된다. 하지만 <풀업>에서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미수는 성별만 여자일뿐, 가정 내에서의 사회적 성별은 가부장 또는 아들 역할을 하는 남성에 가깝다.
지금껏 영애 씨의 생일, 아빠 제사, 이런 일들은 늘 미수가 주도해왔고(74쪽), 엄마의 생일 날짜를 환기시키는 문자를 보내고는, “언니, 답장 안 해?”라고 독촉하기도 한다(51쪽). 자기가 모든 걸 챙겨야 가정이 돌아간다는 독선과 강압이 가득한 태도이다.(사실 영애의 기대 때문에 생긴 압박감 때문일 것이다)
영애도 마찬가지다. 그는 생활력이 약한 지수보다 미수를 더욱 추켜세운다. 미수가 새 차를 샀다는 이야기를 하며, 영애는 지수에게 “바쁜 애한테 차 태워달라는 말을 어떻게 하”냐며(83쪽) 짜증을 낸다.
몸을 쓰며 마음을 다시 쓰는 이야기
영애와 미수 - 거기에 미수의 남편까지, 이 셋의 눈칫밥만 보던 지수는 헬스를 시작하면서 점차 자신을 바꿔간다. 운동이란 무엇일까. 근육을 만들고 살을 빼는 행동? 외관상 보기 좋은 몸을 만들며 건강해지는 행동? <풀업>에서 운동으느 몸을 다스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아를 찾는 과정으로 작용한다. 운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무게중심을 잘 잡고서(73쪽) 등을 곧추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지수는 운동의 ㅇ 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넓은 어깨와 등, 납작한 배,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이어지는 커다란 근육을 원한 적이 없었다(38쪽). 하지만 운동을 거듭하면서 몸이 변해가고, 자신의 몸을 컨트롤할 수 있는만큼 마음도 다잡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는다. 이로써 자신을 무시하는 가족에게 강한 한마디를 할 수 있었고, 미수와의 관계를 똑바로 보고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향해 솔직하고 모욕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된다.
지수는 운동을 하면서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강해진다. 미수와의 대화에서 마지막에 뱉은 문장(“엄마가 너만 보고 있을 때…… 부담스럽지?”, 112쪽)은 지수가 과거의 한계를 깨고 가족관계를 새롭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그동안 너가 미웠지만, 그래도 고마웠다고. 고생했다고.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굴러가는 게 가족이니까 말이다.
마무리하며
강화길의 <풀업>은 기존의 가족 서사를 무너뜨리면서도 다른 설정으로 새로운 서사를 재구축한다. 또한 전통적인 가족관계보다, 가족 바깥에 있는 사람(작중 매일 아침 무궁화 궁전 앞을 달리던 여자, 트레이너 영민)과 유대를 하면서 자신을 정립해가는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이 관계에서 성별과 직업,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서로를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관심만이 있을 뿐이다.
소설의 마지막, 지수는 풀업(턱걸이)을 시도한다. 나는 맨몸 운동 중 풀업이 가장 어렵고 까다롭다고 생각한다. 등근육을 쓰는 방법을 모르면 제대로 된 풀업을 할 수 없다. 스쿼트나 팔굽혀펴기보다 들어올려야 하는 중량이 크기도 하다. 바른 자세로 지구의 중력을 이기고 몸을 공중으로 곧게 띄우는 운동. 지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신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 근육이 생겼으면 좋겠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