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서 좋아 - 도시 속 둥지, 셰어하우스
아베 다마에 & 모하라 나오미 지음, 김윤수 옮김 / 이지북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057.


미래에는 공유(share)가 단지 경제적인 걸 아끼고 평등을 위한 미덕의 의미로만 사용되진 않을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교통 공유 형태의 기업이 큰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다. 아직 국내에는 카쉐어링은 사업의 형태보다는 사회 공동체의 한 가지 형태로 나타났지만, 큰 도시의 게스트 하우스만 봐도 공유경제가 은근히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는 매우 성행한다. 혼자 여행할 때 홀로 편히 쉴 수 있는 모텔이나 찜질방을 찾기도 하지만 처음 보는 이들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게스트하우스에 묵기도 한다. 특별한 목적을 가진 집이지만 이는 분명 셰어하우스의 한 형태임이 분명하다. 경제적인 면보다 주거에 더 초점을 맞춰보면 하숙이나 기숙사 등이 책에서 말하는 셰어하우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네이버는 셰어하우스에 대해 다수가 한 집에서 살면서 개인 공간인 침실은 각자 따로 사용하지만 공용 공간(거실, 화장실 등)을 공유하는 생활방식이다. 책에서 말하는 셰어하우스는 아예 남남인 사람들이 모여 주택이나 맨션을 임대하여 완전히 혼자 사는 원룸(개인 방)과 가족이 함께 사는 집(공용 공간)을 적절하게 나눈 형태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면 정이 떨어질 수 있다. 하물며 오랫동안 따로 살던 사람들인데, 불편함이 없을 수 없다. 개인공간이야 그렇다 치고 공용공간에서 각자 생활방식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서로 워낙 다르게 생활하니 불편함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명확한 규칙과 이를 철저히 지켜야 공동체 생활에 금이 가지 않을텐데, 당연히 쉽지 않다. 타인과의 새로운 삶이 펼쳐질 거라 기대하고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이라고 한다.


타인과의 다름이라는 큰 단점이 있음에도 셰어하우스가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다름’이 함께 살기의 단점이자 장점이 된다. 타인을 받아들이고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점을 아는 순간부터 타인이라는 이름의 우주를 받아들이게 된다. 여러 정보와 가치관을 접함은 곧 삶이 풍부해짐을 뜻한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같이 산다는 것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지금에 큰 강점으로 다가온다. 퇴근 후에 텔레비전과 컴퓨터만이 친구였다면, 셰어하우스에 입주하는 순간은 아주 가까운 이웃이 두셋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단 한 마디 인사도 고독감을 해소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식사 시간이 즐거워지고 대화 상대가 있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책은 셰어하우스에 실제 거주하는 이들의 인터뷰를 실어 더 실재적인 예시를 보여준다. 저자의 나라인 일본에만 해당할 거라고? 국내 출판물에는 국내의 셰어하우스 입주자의 인터뷰를 별도로 수록하였다. 아직 국내에는 생소한 개념인 셰어하우스에 대해 실거주자가 쓴 책인만큼 셰어하우스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충분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054.


  언제나 그렇지만, 리뷰따위의 타이틀은 버리고 잡담을 위시한 발췌문 모음이다. 왜냐고?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인 스페인 내전 당시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파시즘, 사회주의, 공산주의(오, 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같은 건줄 알았는데!), 무정부주의, 노동당(오, 전국노동자연맹과 노동자총연합은 도대체 왜 구분하는 것인가!) 우파, 좌파, 프랑코…. 나를 좌절하게 만든 단어들이다.


  오웰 스스로 사족이라 불렀던 5장과 11장은 당시의 역사와 정당간의 다툼, 언론 기사 등을 다룬다. 다른 장에 비해 지루하지만 배경지식을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걸 읽어도 도무지 모르겠는 걸 어떡해. 그리하야, 역사에 관해 무지한 나로선 사실주의에 입각한 <카탈로니아 찬가>(이하 찬가)를 르포로서 평할 수가 없다.


  어떤 고전이나 마찬가지로 <찬가> 또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배경이 되는 1935년 후로 80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라면 역시, 언론이다. 오웰에게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89쪽) 적군을 헐뜯고 아군의 사기 증진(사실 사기증진이랄 것도 없다)을 위한 '공작'은 총알과 진창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이다.


  언론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일을 아군에게 유리하게 날조한다. 의용군은 장교와 사병간의 사회적 평등이 이루어졌다. 장군의 등을 툭 치며 담배 한 대 달라고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무방했다. (40쪽) 하지만 그들은 전시에서 수준이 그리 높진 않았다. 나중에 의용군을 비난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훈련과 무기부족으로 인한 결함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평등주의적 체계의 결과인 것처럼 호도된 것이다.


  여러 매체의 보도는 사실에 무지한 대중을 의식적으로 견야하고 있으며, 편견을 심어주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215쪽) 이러한 보도는 편견을 조성한다. 트로츠키주의에 대해 들어본 영국인은 많지 않은 반면 영어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정부주의자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친다. 적폐가 그 본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웰을 분노케 한 것은 전쟁이 무엇보다도 정치적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66쪽) 파시즘에 대항하여도 모자를 판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노동자연맹(연합? 둘을 같이 언급하는 이유는 아직도 이 두 단체를 구분하지 못해서다)은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안달이 났다. 바르셀로나 시가전 이후 공산당은 선전을 통해 통일노동자당을 파시스트의 앞잡이로 몰아간다. 이에 수많은 당원들이 잡혔으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갔다. 이런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파시즘에 대항하여 전투 중에 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277쪽)


  이렇게 발췌문 몇을 묶어놓고 보니 뭔가가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아직도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언론은 아무도 믿지 않을 사진을 찾거나 합성해서(오, 이런!) 보여준다. 불과 몇 년 전에 했던 말을 뒤집고선 아군이 하는 일에 무조건, 무논리적으로 편든다. 속보를 통해 사실관계가 확실치도 않은 일을 단언하듯 말하고, 언론 정신을 잃은 그들은 그저 '알 권리'만을 외치며 자극적인 발언만 외쳐댄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개인적인 측면에서 언론의 폭력성을 말했다면, <찬가>는 국가와 이념적 측면을 강조한다. 국가와 이념을 위해 개조된 입은 사악한 지능을 가진 거대한 존재가 도시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우리 소시민들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한 표가 중요하다고 그리 외쳐도 내 한 표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지레 포기하곤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위대한 고전을 쓴 오웰도 사실 정치적인 생각을 하고 스페인으로 간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념조차 잘 몰랐다. 오웰은 좌파의 입장이었는데 그가 속했던 것은 통일노동자당이었다. 스페인을 떠나고 싶은 진짜 동기는 주로 이기적인 것이었다. 단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엄청난 욕구를 느꼈을 뿐이다.(256쪽) 심지어 제대증을 얻자 관광객이 된 듯한 느낌을 받고(261쪽) 스페인에 처음 왔던 때 보이지 않던 거리, 오래된 돌다리, 사람들의 수레바퀴, 재미있는 반지하 상점들을 인식한다. 앞에서 느껴진 분노와 환멸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었을 했습냐는 질문에 오웰은 식량만 축냈습니다, 라고밖에 답하지 못했다.(96쪽) 그는 죽지 않기 위해 스페인을 떠났고 (그의 입장에선) 파시즘에 대한 대항에 아무런 힘도 싣지 못했다. 그 후 오웰은 자신의 재능인 글쓰기를 통해 분노를 토해냈고 이는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책으로 탄생,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과 경각심을 불어주었다. 전장에서는 무능(역시 그의 입장에서이다)했던 오웰이지만 결국 진실을 호도하기에 이르지 않았는가.


  자, 그러면 우리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고민해봐야 한다. 분노가 단순히 분노로 끝나는 순간, 행동하지 않는 양심으로 변하는 순간 그것은 악의 편이 되고 만다. 우리 일반인들이 오웰처럼 큰 영향력을 미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작은 우리지만 하나의 불씨라도 만들 수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는 세상에 자신이 티끌만한다고 주눅들 필요, 전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형적인 한국 단편집이다.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와 정서가 다른 책들과 비슷하다. 허나 김연수만의 것이라 느낄 수 있는 표현과 묘사가 눈에 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소시오패스 - M.E. 토머스


이 책은 위험한 소시오패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자신이 다른 존재임을 인정해달라는 수줍은 ‘말 걸기’다. 소시오패스들을 위한 ‘변명’이자 그들을 대표한 ‘고백’이다. 위험하지만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소시오패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 “소시오패스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세상을 더욱 다채롭고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다.”





비밀 해제 - 동아일보 특별취재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이 나왔으나 시간적으로는 더욱 가까운 과거이나 한물 간 - 동시에 엄청나게 숨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 정권의 '지면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다룬다.

동아일보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

신기할 따름이다.






당신이 경제학자라면 - 팀 하포드


<경제학 콘서트>로 '~콘서트' 열풍을 이끈 장본인의 새 책이다.

가상독자와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철저히 '초보'를 위한 '거시경제학' 설명서다.

팀 하포드 이름만 믿고 사도 될 듯하다.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정여울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의 후속작이다.

전권의 아우라만 봐도 선택의 고민은 끝!










천사는 여기 머문다 - 전경린


'07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가장 크게 실린 작품이 7년만에 단편집으로 꾸려나왔다.

<물의 정거장> 이후로 11년 동안 써내려간 단단한 9편의 단편은 가히 전경린 문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겠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와타나베 이타루


빵집의 경영 이념은 '이윤을 남기지 않기'다.

일반적인 경영과 마케팅 성공 잣대를 무시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채 최고의 빵을 만들며, 부패와 순환작용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 시골빵집에 찾아낸 '부패하여 순환하는 경제'의 핵심은 발효와 순환, 이윤 남기지 않기, 빵과 사람 키우기, 이 4가지로, 다루마리는 이 모든 것을 지향하며 실천하고 있다.




젊은 기획자에게 묻는다 - 김영미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기획을 통해 세상을 더 다채롭게 하는 일곱 명의 젊은 기획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오랫동안 기획자로 일해온 저자가 전시 기획, 공연 기획, 마을 기획, 홍보 기획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발히 자신만의 역량을 펼쳐보이는 젊은 기획자들을 만나 "기획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라는 기획의 본질에 대한 하나의 공통 질문을 중심으로 심층 인터뷰를 했다. 





신들을 위한 여름 - 에드워드 J. 라슨


1997년 퓰리처상 역사 부문 수상작이다. 
진화론은 근대주의자와 원리주의자 사이에 균열을 만들었고 문화계와 과학계 지식층 사이에서 표면적으로 불가지론이 상승세를 타면서 한층 더 심화됐다.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싼 미국의 논란은 근본적으로 미국 공립학교 생물 시간에 무엇을 가르칠지에 대한 싸움으로 이어졌다. 근본주의자들의 태도는 과학 이론과 충돌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1925년에 일어난 스콥스 재판이다.

이 책에서는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90년 전에 일어난 옛 이야기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로 엮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052.


  영원한 '청년' 작가라 불리는 박범신의 신작 장편 소설이다.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동생에게 <은교>와 <비즈니스>를 선물하고 <소금>을 가지고 있지만 여태껏 읽어보지 않았다. 왜냐고? 그의 이름에서 고루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짧은 경험이지만 한국문학의 '노장' 작가들은 대부분 이야기가 고루하고 꼬여 있다. 고 최인호 작가가 그런 느낌이 가장 강하다. <촐라체>, <고산자>에서 느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근래에 영화 '은교'를 봤을 때 놀랐다. 노교수 이적요가 어린 은교를 사랑하는 장면이 펼쳐지는 이 영화에서 '노(老)작가' 박범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젊은과 늙음, 욕망과 사랑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구식 감각(<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느껴졌던 감각이다. 다시 한번 고 최인호 작가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이 아닌 젊고 가벼운 느낌으로 풀어내는 방식에서, 사람들이 박범신을 '청년'작가라고 칭하는 이유를 살짝 엿보았다.


  <소소한 풍경>은 이번에도 사랑 이야기다. <은교>에서는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의 사랑이다. 전문 용어로... 흠흠, 알아서 생각하시라. 그 사랑이 플라토닉 러브였다면 그나마, 그나마 어느정도 용인이 됐을텐데 읽어보면 상세한 묘사가 없을 뿐이지 엄청난 육체적 사랑이다. 그렇다. 박범신은 사람들이 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욕망을 잘 포장하여 내놓는다.


  <은교>와 <소소한 풍경>이 3류 포르노처럼 저속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역시 작가의 사유의 깊이다. 겉으로 본다면 세 남녀의 육체적 행위는 손가락질 받을 만하다. 하지만 박범신은 이들의 '행위'에 대하여 사랑이란 단어로 재단하려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말하는 사랑에 대해 반문한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그 말이 가진 폭력성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소유욕과 과시욕이 합쳐져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깊은 성찰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 아니면 안돼, 넌 내 거야라는 말은 오직 '나와 너'라는 폐쇄적인 관계망에서 서로를 독차지하고 싶은 욕망일 뿐이다.


  세 남녀는 '사랑한다', 'sex한다'라고 말하는 대신 '덩어리진다'고 한다. 함께하는 순간마다 독점적 욕망으로 서로를 훼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지탄받지 않는다. 또한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둥 남의 기억과 추억까지 소유하려는 모습에서 사랑은 '정보화'에 따른 사실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들에게 덩어리지는 데 필요한 것은 단순히 깊은 이해였던 것과 다르게 말이다.


  이참에 금기된 사랑에 대한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 우선 <은교>와 <롤리타>를 비교해보면서 말이다. 과연 '진짜 사랑'이란 감정은 무엇일까? 롤리타를 향한 험버트의 감정을 단순히 사회적, 정신적 질병으로만 취급해야 할까?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사랑은 국어사전이 말하는 몇 개의 정의만으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것 같다. 참, 어려운 문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