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큰 다짐을 하고 자기계발서를 잔뜩 사는 바람에 집에 읽을 게 넘쳤다. 갈 때마다 다섯 권씩 빌렸던 도서관 나들이였지만 저번주에는 서평 수업에 필요한 책과 꾸준히 읽는 시리즈물, 단 두 권만 손에 들고 나왔다. 불과 며칠 전에 집에 쌓인 책과 앞으로 살 책을 주로 읽겠다 했지만 알라딘에서 배달온 다섯 권 중 눈에 눈에 들어온 건 두 권밖에 없다. 게다가 연말에 다섯 권을 사기 전에 이미 강남 교보문고에서 네 권을 들고 왔다.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벌써 열 권 가까이 쌓인 셈이다. 물론, 예전에 사둔 책까지 합하면 200권이 훌쩍 넘어가지만.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서평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시리즈물은 읽기에 탄력이 떨어졌다. 즐길 책이 집에 많음에도 불구,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번뜩, 퇴근하고 도서관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읽을 책도 한 권 더 꺼내들었다. 폭이 좁은 크로스백이 책 세 권으로 빵빵해졌다. 그러던 중 예약도서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오늘은 운명의 날이야. 도서관에 가기로 마음을 먹자 예약도서가 오다니. 오오.


도서관에 도착해 먼저 예약도서를 빌렸다. 요새 공부에 관한 책을 읽어 머리가 조금 복잡해서 미리 생각해둔 가벼운 소설도 한 권 꺼내들었다.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두 시간 남짓 남았다. 그럼 짤막하게 읽을 책이나 찾아볼까- 하고 서가를 둘러본 게 실수였다.


가장 좋아하는 서가인 책, 독서에 관한 책이 잔뜩 꽂힌 곳에 서서 한참을 둘러봤다. 딱히 끌리는 책이 없어 이번에는 글쓰기를 다룬 책은 어디인지 찾았다. 줄리아 카메론의 책을 발견해 잠시 펴서 모닝 페이지에 대한 글 꼭지를 읽었다. 딱히 매혹적이지 않아 서가에 다시 꼽아두고 건너편으로 갔더니 거기는 만화 서가. 소년만화 종류는 아니고 일반서적 형태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이었다. 일상을 세 컷으로 그린 <사금일기>라는 제목이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웹툰 ‘도자기’의 호연 작가의 책이다. 반 정도 읽다가 바로 뒷서가를 보니 이번에는 사진 책이 잔뜩 있다. 이론서부터 작품집, 사진에세이까지 책 종류가 다양하다. 유명한 사진집 <윤미네집>을 한참 들여다봤다.


열 시가 10분이 채 남지 않았을 때, 네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사진에서 가운데 네 권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이젠, 함께 읽기다>는 한 달 전에 빌린 책인데 읽지 못해 다시 빌렸다. 혼자 하는 독서가 시야를 좁게 만든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미라클 모닝>가 예약도서이다. 자기계발을 다짐하며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실천은 전혀 하지 않고 관련된 책만 계속 읽는다.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느낌. <반지의 제왕 2>는 이전에 읽은 1권에 이어 오랜만에 모신 책. 조승연 작가가 <반지의 제왕>을 언어학적으로 찬양해서 다시 바람이 들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드디어 손에 들어온 책이다. 매번 대출 중이어서 읽지 못했는데 오늘은 무슨 운이 틔였는지 서가에 있었다. 전자책으로도 산 책인데 역시 책은 종이책이지.


왼편 두 권은 지금 손에 든 책이다. <위대한 멈춤>은 하루에 3, 40쪽씩 읽는다. 처음 읽을 때보다 울림이 덜하지만 끝까지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편의점 인간>은 출간되자마자 사놓고 침대에 내팽긴 채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독서 기록을 보니 문학이 하나도 없어서 얇고 말랑말랑한 책을 고르다보니 이 책을 꺼내들게 되었다.


오른편 두 권은 어제 내게 온 책이다.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를 읽다가 느낌이 와서 샀다.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의 저자 윤성근 씨는 헌책방(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한다. 자신이 읽은 책만 팔기 때문에 많은 책을 빠르게 읽어야 했고 자신만의 속독법을 개발해 사용한다. 그러면서 슬로리딩을 말하는 책인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도 추천했다. 대학교 때 읽을까 고민했던 책인데 묘한 인연이다. <서평 쓰는 법>은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루고 유유 출판사의 신간이어서 샀다. 유유의 최신간 <소설의 첫 문장>은 이미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 출판사는 초기작 <열린 인문학 강의>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성장했다. 참 뿌듯(?)하다.


장 지글러의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를 방에 두고 나왔다. 읽고 다음 주 토요일까지 서평을 써야 한다. 첫 서평 첨삭 기회를 놓쳤기에 이번에는 이 악물고 읽고 써야 하는데, 읽을 책을 이렇게 마련해두고 시간이 없다고 징징대니, 큰일이다. 내일부터 당장 읽기 시작해야겠다.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을 정리하니 제대로 된 책이 없다. 나쁜 책이라는 말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읽자던 고전문학도, 인문학 서적도, 역사서도, 과학서도, 한 권도 없다. 시간 때우기용 소설, 책은 읽지도 않으면서 책을 다루는 책,  공부는 안하면서 뻔질나게 읽는 자기계발서, 크게 건질 것 없었던 에세이. 짧은 기간이지만 연초에 했던 다짐과 그새 멀어졌다. 앞에 수북이 쌓인 책을 보고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겨우 내린 결정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지 않게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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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새해가 일주일이 지나갔다. 2017이라는 숫자가 꽤나 어색했는데 지금은 익숙하다. 짧게나마 매일 뭔가를 기록해서인지 하루하루를 잊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작년 말과 이번달 초에 생각했던 책 읽기, 일기 쓰기는 꾸준히 하고 있다. 나쁘지 않다. 물론 서너번은 그날 하지 못해 다음 날 기록하는 식으로 꼼수를 부리지만, 어쨌든.



여행 도중 혼자 지내면서 책 읽기를 즐겼지만 가끔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놀라운 인연이 어디선가 나타나곤 했다. 당시 나의 내면에는 타인의 접근을 쉽게 만드는 개방적인 측면과 어딘지 모르게 연약한 구석이 있었고, 이 때문에 과거 경험하지 못한 방식과 차원으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이는 믿은과 인내심을 가지고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에 나를 맡겨보는 실험이기도 했다. 서두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호기가 오면 붙잡는 그런 실험이었다.
- 위대한 멈춤 158, 159쪽. 2부 3장. 여행. 조지프 자보르스키의 책에서.

올해 겨울 휴가로 설연휴를 택했다. 4일의 연차 사용과 대체휴일까지 겹쳐 환상적인 9일 휴가를 다녀오게 되었다(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길게 쉬면 다른 친구들은 해외를 다녀오던데, 이번에는 작년 추석에도 뵙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설에는 자중하려고 한다.
설 연휴 앞 5일(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을 내리 쉬면 어디를 갈까 응당 고민해야 하지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머리가 베베 꼬이던 시기였다. 설비 업무를 한 달 정도 하면서 이제 좀 적응한다 싶으니 바로 다음 달에 공정 근무를 하라고 하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가 극한까지 치달았다. 부서를 옮기고 설비 근무를 볼 때도 회사를 떠나고 싶었지만 12월 말은 말 그대로 죽고 싶었다. 아무 의미없이 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때에 휴가를 생각하니 오히려 막막했다. 한참 고민하다가 어디 쳐박혀서 며칠 동안 마음대로 지내는 건 어떻냐고 자문했다. 조용한 곳에 가서 혼자 지내며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잔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읽고 싶을 때 읽는다. 아무 계획 없이, 아무 일행 없이, 오롯이 나만 방에 앉아 스스로 침잠하기.
생각만 해도 좋았다. 앞으로의 시간에서 아무런 돌파구도 실마리도 찾지 못할 때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지내는 시간은 얼마나 기쁠지 상상했다. 전국의 북스테이를 찾다가 결국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종일 책에 파묻힐 수 있는 파주 지혜의숲 위의 지지향을 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고 정신도 조금은 말짱해졌다. 완전히 혼자 지내자고 했던 휴가도 여자친구와 다녀올 예정이다. 같이 가는 대신, 절반은 함께 절반은 혼자 지낸다고 선언했다. 처음 침잠을 선택한 것을 긍정해준 그이기에 이번에도 흔쾌히 승락했다.
조지프 자보르스키의 구절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 혼자 지내면 무슨 의미일까.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는 생활이 반복된다면, 아니,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 밖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 공간에 나와 책만 있다. 서로 얘기하고 놀고 때로는 윽박지르며, 그냥 있는다. 내 안으로 파고들어 다른 나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허나 밖을 걸어다니며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분명이 큰 의미이다. 구글맵에 의존하지 않고 되는대로 걷는다. 때론 길을 잃고 해매다가 멀리 걸어오는 타지인에게 물어물어 다시 아는 곳으로 돌아온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길, 모르는 광경.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상황들이 덮쳐오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여행의 맛이다. 그대로 우리 인생의 예견이기도 하다. 30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나의 시간‘이지만 당장 1분 앞만 봐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발걸음이 향하는대로 다니면서 공기와 바람과 풍경과 사람과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긴다. 나를 조금씩 깨닫고, 그렇기에 다른 이가 궁금해지고 그들에게 한발짝이라도 다가갈 수 있는 시간. 멀찌감치 떨어져 타인을 바라보는 시간. 남을 보면서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시간. 그런 시간들이었으면,
좋겠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전보다 조금 더 걷고 싶다. 멋있고 예쁜 광경을 찾으려 애쓰며 주위를 둘러보며 걷지 않고, 그냥 발바닥이 땅에 닿는 그 느낌을 느끼며, 조금 더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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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수요일에 도서관을 못 갈 것 같아서 아예 오늘 가기로 했다. 다섯 권을 모두 반납하고 오늘 빌리려 했던 책을 검색한다. 온라인 서평 수업에서 첫 책으로 쓰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전부터 빌리고 싶었던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퇴사학교 글쓰기 수업에 들고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 김무곤 선생의 <종이책 읽기를 권함>, 총 세 권. 하지만 퇴사학교 글쓰기 수업 신청을 못하는 바람에 마지막 책은 다시 서가에 꽂아두었다. 페미니스트는 100쪽이 되지 않아 그냥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상당히 좋은 책이었다. 다만 책으로 읽기보다는 그냥 테드 강의를 보는 게 좋았을 성싶다. 책과 강의의 깊이, 넒이가 그리 차이나지 않는 듯하다.
아주 쉬운 책이다. 어려운 글 하나 없고 성내는 말 하나 없다.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지에 대해 조곤조곤 말할 뿐이다. 옮긴이 말마따나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모두를 초대하여, 앞으로 이렇게 해보자고 말한다. 책 자체가 워낙 짧을뿐더러 모두 갈무리해도 좋을 책이라 짧게 발췌문만 남긴다.


내가 열네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오콜로마의 집에서 무언가에 대해 언쟁하고 있었습니다. 둘 다 책에서 배운 설익은 지식으로 가득 차 있던 때였지요. 논쟁이ㅡ 주제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한참 주장하고 또 주장했더니 오콜로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은 똑똑히 기억납니다. ˝있잖아, 너 꼭 페미니스트 같아.˝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말투에서 알 수 있었지요. ˝너 꼭 테러 지지자 같아˝라고 말하는 듯한 어조였거든요. (11, 12쪽)

(선략/다른 사람들이 페미니스트에 대해 안 좋은 의견을 말하면 저자가 유쾌하게 반박하고서)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농담이었지만, 이것만 보아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 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도란트도 안 쓴다는 거지요. (14쪽)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이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럼다˝고 여기게 됩니다.(16쪽)

(선략/남동생 루이스는 지금 시대에 여성인권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이후 둘이 시내에 차를 몰고 나갔다가 한 남자가 주차 공간을 찾아준다) 남자의 유달리 연극적인 몸짓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떠나면서 남자에게 팁을 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가방을 열고 손을 넣어 동늘 꺼낸 뒤 남자에게 건넸습니다. 남자는 내가 건넨 돈을 기쁘고 고맙게 받은 뒤 루이스를 향해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루이스는 놀라서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왜 나한테 고맙다는 거지? 내가 돈을 준 것도 아닌데.˝ 그러더니 루이스의 얼굴에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남자는 내가 가진 돈은 무엇이든지 결국에는 루이스에게서 나왔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루이스가 남자이니까요. (19쪽)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수치심을 가르칩니다. 다리를 오므리렴. 몸을 가리렴.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여자로 태어난 것부터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인 양 느끼게끔 만듭니다. 그런 여자아이들이 자라면, 자신에게 욕구가 있다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하는 여성이 됩니다. 스스로를 침묵시키는 여성이 됩니다. 가식을 예술로 승화시킨 여성이 됩니다. (37쪽)

젠더는 대화하기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짜증스럽게 여깁니다. 남자도 여자도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혹은 젠더 문제를 성급히 부정해버리려고 합니다. 현 상태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늘 불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안되나요?˝ 왜 안 되느냐 하면, 껏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ㄴ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남자들은 페미니즘이란 개념에 위협을 느낍니다. 내 생각에 그런 반응응 남자아이들이 자라면서 받았던 교욱, 즉 그들은 남자니까 ˝당연히˝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의 자존감이 훼손될 거라는 가르침이 야기한 불안감 탓입니다. (43, 44쪽)

남다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무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롲바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여자든 ㄴ마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52쪽)

(옮긴이의 말에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왜 오늘날 새삼스레 페미니스트 선언이 필요한지를 말하는 책이다. 더구나 그 선언을 더없이 다정하고 유쾌하게 말한다.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모두를 초대하여, 앞으로 이렇게 해보자고 말한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 어느 연령의 사람에게든 일말의 껄끄러운 마음 없이 선뜻 건넬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어느 성의 사람에게든. (91,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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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am 새벽에 일어나서 잠시 수다 떨다가 여섯 시부터 책을 읽었다. 생각보다 정신이 말똥말똥하고 집중이 된다. 뒤 30분 동안은 무라마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하루키보다 훨씬 유쾌하다. 하긴 읽었던 하루키의 책이 고작 소설 세 권이었으니. 잡문집은 말그대로 잡문이어서 정말 별로였는데 이번 에세이집은 너무 마음에 든다. 역시 에세이스트로서 칭찬이 자자한 하루키답다. 출근 때문에 책을 덮었지만 일만 아니면 한번에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고 매력적이다.
서평쓰기 수업 때문에 억지로 편 책인데 내게는 의외의 행운이다. 그런데 이거 서평을 어떻게 쓰지. 애초에 서평은 커녕 간단한 독후감밖에 쓰지 못하는 나로서는 영...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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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0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후감이나 서평이나 둘 다 똑같습니다. ^^

양손잡이 2017-01-05 18:40   좋아요 0 | URL
느낌이 뭔가 달라서요 ㅠ
 

  입사할 때부터 느꼈지만 이놈의 회사는 직원들에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 책과 영화를 시간이 남아도는 이들만의 취미로 전락시켰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매일 야근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아빠를 달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겨울휴가 기간에 가족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라는 문구가 쓰인 카드를 화장실 소변기 위에 자랑스럽게 걸어 놓은 것부터 어이가 없다. 과격하게 말하면, 역겨울 따름이다.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은 휴가 때만 만들라는 무언의 주문처럼 읽힌다.


  덕분에 사람들의 취미는 줄어만 간다. 온전히 자신에게 쓸 시간이 모자르니 순간의 흥미를 위한 취미가 대부분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에 길들여진 우리는  휴식이 주어져도 뭘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것이다.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남들을 따라하고 말초적인 재미를 끊임없이 찾는다.


  나도 점점 이렇게 변해갔다. 회사 입구를 들어간 순간 머리가 멍해진다. 매일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자리에 앉아 퇴근시간만 기다린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리며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낸다. 군 제대 후 쭉 이어오던 1년에 책 100권 읽기는 입사 2년차에 벌써 무너졌다. 올해는 30권을 겨우 넘겼을 뿐이다. 추천할만한 책도 없는, 비루한 기록만 남았다.


  회사와 관련 없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독학의 의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교과서와 함께 싸그리 날려버렸으니 어디서 배우기라도 해야 할텐데 시간을 내기 어렵다. 24시간 계속 가동해야 하는 공장 특성상 교대근무는 필수여서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강좌를 참석하기가 어려웠다. 평일 강좌는 언감생심이다. 주말마저도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심지어 1년 반 동안 회사에서 소속이 5번 바뀌었다. 변화를 싫어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나에게 짧은 기간에 이런 변화는 큰 스트레스였다. 변화도 변화지만, 내가 빠져도 이전 부서는 특별할 거 없이 잘만 돌아가는 것도 슬프다. 대기업 직원은 하나의 부품에 불과하다는 말은 전부터 수도없이 들었지만 이렇게 뼈저리게 다가올줄은 누가 상상했으랴. 게다가 옮긴 부서는 업무가 많아 퇴근시간도 늦으니, 가뜩이나 부족했던 내 시간이 더욱 줄어들었다.


  여러 생각이 겹치니 자연스레 퇴사가 머리에 맴돌았다. 그래, 감옥 같은 회사에서 벗어나 진정한 꿈을 찾아 모험을 하는거지. 퇴사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예전과 현격히 달라졌다. 심지어 퇴사가 요새 트렌드라는 말까지 나온다. 같이 부서 이동한 사람들, 다른 부서로 간 사람들, 각자 부서에서 꾸준히 일해오던 친구들과 퇴사를 얘기해보았다.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출근도장을 찍는 느낌을 준다. 요새 취직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직장인들이 안 힘든 건 아니다.


  회사를 나가면 뭘 할까. 6개월 정도는 그동안 못가본 여행을 떠나야지. 타지에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자유를 만끽하자. 여행에서 돌아와 당분간은 취업 생각은 접어두고 치열하게 살지 말자. 아침햇살을 쬐며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자고, 잠에서 깨면 다시 책을 읽자. 꾸준히 글쓰기도 연습해서 나만의 작업물을 만들어야지. 인문학 강좌도 들으면서 나를 바꿔가야겠어.


  올해 보너스만 받고 정말 나간자고 생각했다. 허나 퇴사를 한번도 하지 않은 나라도 현실의 벽이 녹록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당장은 돈이 있더라도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취업을 해야 하는데, 애초에 좋아하는 걸 하려고 나왔던 회사를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들어가는 모순이 생긴다. 현실은 언제나 꿈을 압도한다.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서 헤쳐나갈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좋은 직장이 있다고 한들 그 회사에서 뭘 보고 나를 채용할까? 회사에서 나가면 나를 써줄 곳이 없다고 매번 한탄했는데, 그건 내게 강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어서이다. 미련하게도 그런 강점을 얻기 위해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일이 힘들다, 회사의 톱니바퀴로 일하는 느낌이 들어 괴롭다, 이런 푸념은 제 얼굴에 침뱉기나 마찬가지다.


  월말에 따박따박 입금되는 월급에 만족이 드는 순간 깨달았다. 웬만한 용기 아니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용기는 없다.


  냉정히 생각해 퇴사는 무리다. 돈에 맛을 들였기 때문이다. 돈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여태까지의 삶이 있기에 쉬이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무엇일까. 내린 결론은 결국 자기계발뿐이었다. 예전에는 자기계발이라면 치를 떨었는데 이제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있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집합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것을 꼽았다. 책 읽기와 글쓰기. 두 가지를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여러 고민을 했다. 책은, 지금까지 흥미 위주로 읽었다면 조금 무겁게 읽으려고 한다. 재작년부터 읽겠다고 한 <안나 카레니나>를, 책을 산 지 무려 4년만에 책상에 꺼내두었다. 많이 읽기에 중점을 두었던 독서에서 적게 읽더라도 울림을 주는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겠다.


  글쓰기는 우선 매일 쓰기부터 연습하고 있다. 나로서는 기특하게 3주째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다.(이 글도 그동안 쓴 일기의 조합이다. 쓰다보니 괜스레 무게잡는 이야기가 많아졌지만 말이다) 1월에는 온라인 서평 쓰기 수업을, 2월부터는 100일 쓰기 수업을 듣는다. 그동안은 발췌문으로 가득한 독후감을 써와서 내 글이 없었다. 글쓰기 근육을 조금씩 늘려 2017년에는 나를 대표할 수 있는 글을 하나 쓰고 싶다.


  혼자 공부하는 건 조금 힘들기도 해서 아예 타의로 공부할 방안을 마련했다. 경희사이버대 에 입학 원서를 넣었다. 학부는 후마니타스, 전공은 인문고전이다. 업무와 정반대로 동떨어진 공부다. 그러나 하고 싶은 공부가 인문학이기에 딱 하루 고민했다. 대학을 졸업했기에 3학년 편입이 가능했지만 과감하게 신입학을 선택했다. 무려 4년의 대학생활이 다시 시작된다. 회사생활과 병행하기 어렵다는 건 알지만 용기가 없는 나에게 현실과 이상의 최상의 절충안이다.


  이 계획들은 흔히 말하는 성공과 대박을 위한 자기계발이 아니다. 나를 더 잘 알기 위한 마음의 수양이다. 더불어 다른 이들을 알고 싶은 욕망도 있다. 인간의 학문이라는 인문학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1달, 100일, 4년이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 끝이 큰 성공이 아니어도 좋다. 전환점을 통과하는 과정 자체가 내 인생에서 가장 가열차게 빛날 순간임을 알기에.



* 자기계발서는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후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무려 두 권이나 샀다. 장족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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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1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손잡이 2016-12-31 22:18   좋아요 0 | URL
양손잡이입니다!!! ㅎㅎㅎ
예전 글을 읽어보니 되게 그럴 듯한 거예요. 그런데 발췌문이 6~70%이어서 이게 제 감상을 쓴 건지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옮긴 건지 영 모르겠더라구요 ㅠ 겉으로는 그럴싸한데 제 생각이 없었다랄까요? 그 비율을 잘 맞추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발췌문 정리도 잘 해놔야겠지요... 흑흑 제 읽기 습관을 바꿀 때가 된 것 같아요.
덧글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