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큰 다짐을 하고 자기계발서를 잔뜩 사는 바람에 집에 읽을 게 넘쳤다. 갈 때마다 다섯 권씩 빌렸던 도서관 나들이였지만 저번주에는 서평 수업에 필요한 책과 꾸준히 읽는 시리즈물, 단 두 권만 손에 들고 나왔다. 불과 며칠 전에 집에 쌓인 책과 앞으로 살 책을 주로 읽겠다 했지만 알라딘에서 배달온 다섯 권 중 눈에 눈에 들어온 건 두 권밖에 없다. 게다가 연말에 다섯 권을 사기 전에 이미 강남 교보문고에서 네 권을 들고 왔다.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벌써 열 권 가까이 쌓인 셈이다. 물론, 예전에 사둔 책까지 합하면 200권이 훌쩍 넘어가지만.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서평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시리즈물은 읽기에 탄력이 떨어졌다. 즐길 책이 집에 많음에도 불구,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번뜩, 퇴근하고 도서관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읽을 책도 한 권 더 꺼내들었다. 폭이 좁은 크로스백이 책 세 권으로 빵빵해졌다. 그러던 중 예약도서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오늘은 운명의 날이야. 도서관에 가기로 마음을 먹자 예약도서가 오다니. 오오.


도서관에 도착해 먼저 예약도서를 빌렸다. 요새 공부에 관한 책을 읽어 머리가 조금 복잡해서 미리 생각해둔 가벼운 소설도 한 권 꺼내들었다.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두 시간 남짓 남았다. 그럼 짤막하게 읽을 책이나 찾아볼까- 하고 서가를 둘러본 게 실수였다.


가장 좋아하는 서가인 책, 독서에 관한 책이 잔뜩 꽂힌 곳에 서서 한참을 둘러봤다. 딱히 끌리는 책이 없어 이번에는 글쓰기를 다룬 책은 어디인지 찾았다. 줄리아 카메론의 책을 발견해 잠시 펴서 모닝 페이지에 대한 글 꼭지를 읽었다. 딱히 매혹적이지 않아 서가에 다시 꼽아두고 건너편으로 갔더니 거기는 만화 서가. 소년만화 종류는 아니고 일반서적 형태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이었다. 일상을 세 컷으로 그린 <사금일기>라는 제목이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웹툰 ‘도자기’의 호연 작가의 책이다. 반 정도 읽다가 바로 뒷서가를 보니 이번에는 사진 책이 잔뜩 있다. 이론서부터 작품집, 사진에세이까지 책 종류가 다양하다. 유명한 사진집 <윤미네집>을 한참 들여다봤다.


열 시가 10분이 채 남지 않았을 때, 네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사진에서 가운데 네 권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이젠, 함께 읽기다>는 한 달 전에 빌린 책인데 읽지 못해 다시 빌렸다. 혼자 하는 독서가 시야를 좁게 만든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미라클 모닝>가 예약도서이다. 자기계발을 다짐하며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실천은 전혀 하지 않고 관련된 책만 계속 읽는다.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느낌. <반지의 제왕 2>는 이전에 읽은 1권에 이어 오랜만에 모신 책. 조승연 작가가 <반지의 제왕>을 언어학적으로 찬양해서 다시 바람이 들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드디어 손에 들어온 책이다. 매번 대출 중이어서 읽지 못했는데 오늘은 무슨 운이 틔였는지 서가에 있었다. 전자책으로도 산 책인데 역시 책은 종이책이지.


왼편 두 권은 지금 손에 든 책이다. <위대한 멈춤>은 하루에 3, 40쪽씩 읽는다. 처음 읽을 때보다 울림이 덜하지만 끝까지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편의점 인간>은 출간되자마자 사놓고 침대에 내팽긴 채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독서 기록을 보니 문학이 하나도 없어서 얇고 말랑말랑한 책을 고르다보니 이 책을 꺼내들게 되었다.


오른편 두 권은 어제 내게 온 책이다.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를 읽다가 느낌이 와서 샀다.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의 저자 윤성근 씨는 헌책방(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한다. 자신이 읽은 책만 팔기 때문에 많은 책을 빠르게 읽어야 했고 자신만의 속독법을 개발해 사용한다. 그러면서 슬로리딩을 말하는 책인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도 추천했다. 대학교 때 읽을까 고민했던 책인데 묘한 인연이다. <서평 쓰는 법>은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루고 유유 출판사의 신간이어서 샀다. 유유의 최신간 <소설의 첫 문장>은 이미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 출판사는 초기작 <열린 인문학 강의>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성장했다. 참 뿌듯(?)하다.


장 지글러의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를 방에 두고 나왔다. 읽고 다음 주 토요일까지 서평을 써야 한다. 첫 서평 첨삭 기회를 놓쳤기에 이번에는 이 악물고 읽고 써야 하는데, 읽을 책을 이렇게 마련해두고 시간이 없다고 징징대니, 큰일이다. 내일부터 당장 읽기 시작해야겠다.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을 정리하니 제대로 된 책이 없다. 나쁜 책이라는 말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읽자던 고전문학도, 인문학 서적도, 역사서도, 과학서도, 한 권도 없다. 시간 때우기용 소설, 책은 읽지도 않으면서 책을 다루는 책,  공부는 안하면서 뻔질나게 읽는 자기계발서, 크게 건질 것 없었던 에세이. 짧은 기간이지만 연초에 했던 다짐과 그새 멀어졌다. 앞에 수북이 쌓인 책을 보고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겨우 내린 결정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지 않게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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