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일요일

5월은 조금 다르게 살아보자, 굳건히 다짐했건만 역시는 역시다. 되는 거, 하는 거 하나도 없이 시간은 흐른다. 지나가는 시간을 하염없이 눈으로 좇으면서도 몸은 영 앞으로 가기를 거부한다.

노트북으로 쓰던 일기를 다시 펜으로!를 외친 후 귀찮다는 이유로 또 쓰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오늘도 2주만에 쓰는 기록이다. 요새 회사 일에 치여 아무 여유가 없어 쓸 말이 없다는 이유로 책과 일기를 멀리했다. 매일 반성은 하는데 글쎄, 되는 게 아무것도 없구만.

읽는 책이라고는 가볍고 얇은 책뿐이다. 어려운 책은 거부감이 든다. 너무 두꺼워, 다 못 읽겠지, 다 읽어도 이해는 반도 못할 거야. 시작하기도 전에 변명부터 한다. 책이 많아서 고르기 힘들다는 말은 변명이다. 그냥 어렵고 힘드니까 애써 외면하려는 느낌이다.


5월 22일 월요일

필사의 기초(조경국, 유유, 2016)을 읽었다.

숭례문학당에서 ‘신영복처럼 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필사에 관심이 생겼다. 처음 해보는 필사이기에 필사 선배인 저자는 어떤 방식으로 필사를 하는지 궁금했다.

사실 필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글쓰기 실력을 늘리려고 필사를 하기도 하는데, 사실 필사는 글쓰기 실력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필사를 단순히 베껴쓰기라고 생각했다. 문장을 처음부터 단어 하나하나를 미련하게 옮기는 작업. 사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필사한다고 깝쳤던 적이 있다. 그것도 손글씨가 아니라 노트북으로 말이다. 글을 읽지도 않고 그저 글씨만 옮기려니 재미도 없고 아무 쓰잘대기도 없어 보였다. 네댓 쪽 옮기다가 그만 뒀다.

내가 간과한 점은 글자를 그대로 옮기기였다. 글은 읽지도 않고 무작정 베껴쓰려고 했으니 얻는 게 있을리가 있나. “필사의 재미를 느끼려면 책 읽는 재미부터 느껴야 한다”는 말처럼 먼저 글을 읽고 이해한 뒤 필사하면서 천천히 생각하는 방식으로 글을 옮겨야 한다. 나처럼 단순한 베끼기는 의미가 거의 없다. 단어를 옮기다보면 행간과 구조를 체득하게 되고, 거기에 자신의 견해(긍정이든 부정이든)를 밝히면 생각을 넓힐 수 있다. 필사는 독서보다 저자와 조금 더 적극적인 대화를 하게 만든다.

글씨체가 예쁘면 좋겠지만… “끌씨를 꾸미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은 금물이다”. 물론 노력하면 좋지. 그러나 굳이 단정한 글씨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니까.


5월 24일 수요일

매년 이맘때쯤에 찾아오는 독서불감증이 같은 변명 아닌 변명에서 해맸다. 지루하고 부담스럽고. 3월까지는 열심히 읽는다고 읽었는데 마치 식곤증이라도 찾아오듯 무기력해졌다. 가벼운 독자인 내가 직전에 다소 두꺼운 책(사피엔스, 롤리타)을 읽었기 때문이리라. 드디어 그걸 깨뜨릴 책을 찾았다. 3년 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해온 장강명의 <표백>이다.

전체 사건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현대는 완성된 사회라는 주장을 편다. 그럴듯하고 멋진 선언이나 운동은 이미 과거에서 다 해먹어서 지금은 끝났거나 뒤처리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환경운동 따위의, 과거에 비하면 작은 것들 뿐이다. 현대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무리 자신의 색을 발하고 칠해도 세상이라는 벽은 티도 나지 않고 하얀색을 유지한다. 그는 이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월드’라고 칭한다.

이런 사회에서 단순하고 소극적으로 살지 않고 세상에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대단한, 대담한 일을 하려면? 그는 자살로서 자신의 선언을 이어가려 한다. 단, 사는 게 힘들어서 하는 자살이 아니다. 진짜 선언을 위해 어떤 성공을 앞둔 자살이어야 한다. 아무런 업적도 남기지 못하고 그냥저냥 살아내는, 궁지에 몰린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자살선언은 매력적이다. 소설 속 많은 이가 그의 자살선언에 동조하고 실제로 자살하기도 한다.

이에 작가는 다른 인물의 입을 통해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자살선언은 위대해지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그저 남의 관심을 받기 위해 벌이는 어린 행동이다. 위대하고 성공한 삶도 좋지만 소소하고 작은 것에 기뻐하는 삶도 필요하지 않냐고.

작가는 두 가지 상반된 의견(위대함 vs 소소함)을 제시하지만 어느쪽에도 수긍하기 힘들다. 일면을 들여다보면 둘 다 그럴듯하고 맞는 말이다. 작가는 답을 내리는 대신 묻는다. 넌 어느 쪽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어려운 선택이다.

내가 소심하게 내놓은 답은, 살아가면서 작지만 위대한 것이 무엇인지 끝없이 고민하는 것, 이다. 게바라의 ‘리얼리스트가 되지.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5월 25일 목요일

마음에 드는 필기구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대학시절부터 쓰던 세일러 에이스가 참 좋았는데 오랜만에 써보니 생각보다 세필이 아니다. 반년 정도 쓴 싸구려 에르고그립에 비해서 이다지도 두꺼울 줄이야. 에르고그립을 몇번이나 땅에 떨어뜨려 닙이 흔들리지만 않았어도 다른 만년필로 눈을 안 돌릴텐데. 게다가 망할 몰스킨 노트는 만년필을 사용하면 글씨가 조금만 두꺼워져도 뒤에 다 비쳐서 쓰기 정말 안 좋다. 연필이나 볼펜을 써야 제격인 듯하다(그래서 독서노트는 연필로 쓰는 중이다). 만년필을 쓰기에는 미도리 노트도 좋다고 한다. 검색해보니 가격이… 하아, 참 사악하구만.


5월 27일 토요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문학동네, 2015)를 읽기 시작했다.

책읽기로 잘난척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이 책을 이제야 읽은 이유는 무엇인가 자문해봤다. 전쟁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군대에서 한국전쟁을 접하면서 세계사 속 전쟁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미 많은 전쟁 관련 책이 출간되었는데 굳이 이걸 읽어야 할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산 지 1년이 조금 넘어 드디어 책을 펼쳤다.

이제 막 책을 펼쳤기에 많은 내용을 알지는 못했지만, 위에서 말한 의구심과 위화감에 대해 저자의 답변이 있다. 여태껏 수많은 전쟁 이야기는 남자들이 남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여자도 전쟁에서 싸웠는데 여자들은 침묵한다. 여태까지 알려진 전쟁 이야기는 남성 중심의 폭력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전에 들었던 이야기로는, 이 폭력이 적군을 향하기도 했지만 아군의 여성을 향하기도 했고 적군의 여성만을 노리거나 여성만이 겪을 수밖에 없는 경험도 있다. 많은 이야기에 숨겨진 참혹한 진실. 저자는 인터뷰에서 여자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서술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 내가 과거로 돌아가도 성별 때문에 겪지 ‘않을’ 이야기. 사실 읽기가 조금 두렵다. 이전에 생각했던 ‘나만의 상식’이 무너질까 겁이 나서이다.

그러고보니 이 책도 조금 두껍다. 이것도 겁나네.

덧. 책에 연필로 밑줄을 치고 생각을 쓰면서 읽기 시작했다. 5년 전에 읽었던 <정치의 발견> 이후로 처음이다. 처음에는 무서웠으나 금세 편해졌다. 공부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생각은 지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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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30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만의 상식‘이 한 번 무너지면, 정신이 혼란스럽긴 해요. 정말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상대방의 상식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마음이 편해져요. 묵혀둔 낡은 상식이 깨끗이 제거된 기분이 들어요. ^^

 


글쓰기의 최전선 - 은유 (메멘토, 2015)


밀린 독후감이 많아서 기록의 의미로 짧게 쓴다.


1. 작년 말에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이다. 한참 책읽기와 글쓰기 ‘기술’에 몰두하던 때라 실질적인 글쓰기 팁을 전수하는 책인줄 알았건만 웬걸, 글쓰기를 주제로 한 에세이집이었다. 찾던 주제의 글이 아닌지라 글의 첫 장을 읽자마자 바로 덮었다. 그때는 뭔가 삘이 오지 않았다.


2주 전에 도서관을 찾았을 때, 사실 이 책은 관심목록에 없었다. 다른 책을 한참 찾다가 우연히 서가에 꽂힌 빨간 표지의 책을 봤다. 그때 느꼈지, 아, 이놈은 지금 읽어야 하는구나. 그길로 뽑아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찬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었다.


2. 은유는 필명으로 여성 작가이다. 문단에 등단해서 전문적인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심지어 대학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 소속해 공부하며 글쓰기를 가르친다. 소설이나 시보다는 실증적인 글을 주로 쓰는 듯하다. 최근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출간하며 여성으로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실제의 언어를 통해 말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수유너머R에서 진행됐던 글쓰기 수업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수업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주부, 직장인, 학생, 취업준비생, 사회단체 활동가, 성폭력 피해 여성과 서로의 삶을 이야기했다. 그는 남의 이야기를 경청할 것을 권하는데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공감능력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을 확장시키는 데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관계가 부족하면 인생에서 오직 ‘내’ 이야기만 있으니, 소통도 힘들고 결국 존재의 빈곤으로 자신을 표현할 글감마저 떨어지는 셈이다.


3. 책 읽기에 대해 말하면서 카프카의 ‘도끼’를 언급한다. 김웅현이 <책은 도끼다>로 많이 퍼트린 그 구절! 거기에 발터 벤야민의 말도 덧붙인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행간에 머무르고 거주하는 것이다.’ 쉬운 책, 재밌는 책만 읽지 말고 어렵고 자신을 멍하게 만들 책을 읽으라는 다소 상투적인 이야기도 한다.


저자는 특히 문학을 강조한다. 특히 문학의 ‘쓸모-없음’을 말하면서 김현 선생의 글을 소개한다. 남은 일생 내내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답하며 김현 선생이 쓴 글이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 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 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나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_김현. 95쪽.


간혹 무의미한 책 읽기를 권하는 글을 본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김열규 교수의 <독서>에서 본 것 같다. 문학을 뭐하러 읽느냐, 돈도 안되고 명예도 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나 경영서처럼 독자를 바꾸고 돈을 벌어다주지 못한다. 이런 비아냥 속에서도 우리가 문학을 읽고 ‘하는’ 이유는 따로 없다. 문학은 그 자체, 그냥 문학이기 때문이다.


4. 작가가 르포르타주를 주로 쓰는 걸로 아는데, 재밌게도 시도 좋아한다고 한다. 시를 읽으면 평소에 쓰지 않는 단어를 접하고 색다른 느낌을 갖는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천석꾼  부럽지 않게 든든하다고 한다. 이 느낌에 관한 짤막한 에피소드가 있다. 김수영의 시를 읽는 수업에서, 한 학인이 시 읽기가 너무 어려워 유명한 철학자가 진행한 김수영 시 강연을 들었다고 한다.(아마 강신주일테지) 내가 보기에는 아주 기특한 일이었는데, 저자 입장에서는 아니었나보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안 읽히는’ 김수영의 시-삶이지, 김수영이ㅡ 시-삶을 이론의 형틀로 찍어낸 ‘잘 읽히는’ 지식인의 해석이 아니다. 소박하고 거칠더라도 자기 느낌과 생각으로 시를 읽어내고 해설하느라 낑낑대는 것이 공부다. 독서의 참맛이다. (학자의) 권위에 복종하지 말고 (나만의) 느낌에 집중하기. 시의 본령은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삶의 결을 무한히 펼치는 데 있다. 시가 아무리 어려워도 처음 읽을 때는 참고도서를 들춰보지 말자고 당부했다. _100,101쪽.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에서 소개한 문사철 독서법과 반대되는 입장이다. 시와 소설은 그렇게 다른가보다. 소설은 서사에 힘이 있다. 서사를 완벽히 알려면 그것이 어떻게 나왔는지 시대 흐름이나 작가가 추구하는 바를 같이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작품이 온전하게 소화된다. 그러나 시는 다른 걸까. 물론 시대상도 중요하다. 시인이 자신의 시대를 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면 시가 더 잘보인다. 허나 문학은 오독도 그 맛이다. 저자가 이런 의미로 썼다 해도 우리가 이런 의미가 아닌 저런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다. 짧은 구절에 소설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시이기에 이런 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5. 글쓰기, 문학 읽기를 대하는 태도를 다룬 2장까지는 아주 마음에 들었으나 글쓰기 기술을 조금씩 설명하는 3장부터 흥미가 떨어진다. 어라, 처음에는 글쓰기 기술을 바라고 읽었던 책인데 어느새 입장이 정반대가 됐다. 아마도 이 책에서 읽은 글이 실제의 팁이나 기술이 아니기 때문일테다. 은유라는 작가에게 기술적인 말을 듣다니, 뭔가 내 기대에 반하는 걸, 이라고 혼자 속상해하는 기분이랄까.


6. 6장 부록에 딸린 르포와 인터뷰는 읽기를 추천한다. 저자의 글이 아니라 저자와 함께 공부한 학인들의 글이다. 별 내용이 아닌 듯싶으면서도 가슴에 조그만 멍울 하나를 만든다. 인터뷰가 이렇게 울림을 주는지는 몰랐다. 나도 언젠가는 우리 부모님을 인터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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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감시원 코니 윌리스 걸작선 1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화재 감시원 - 코니 윌리스 (아작, 2015)


밀린 독후감이 많아서 기록의 의미로 짧게 쓰고 간다.


예전에 ‘리알토에서’를 읽다가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대로 덮었던 책이다.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인물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고 엉망이었다. 아작 출판사가 막 책을 낼 때, 출판사의 느낌과 책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어서 책을 폈지만 그 난잡함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번에는 마음 다잡고 읽어보고자 꾹 참고 페이지를 넘겼다. 전에 재미없게 읽었던 ‘리알토에서’도 중반을 넘어가니 속도가 붙었다. 흠, 괜찮네, 하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니 그뒤부터는 일사천리. 아주 만족스런 소설집이다.


코니 윌리스는 미국 작가로 역대 최다 휴고상을 수상한(11번) 아주 화려한 이력을 가졌다. 네뷸러상, 로커스상도 여러번 받았다. 데몬 나이트 기념 그랜드 마스터 상을 받은 그랜드 마스터이기도 하다.


작가의 대표 장르가 SF라고 하는데 코니 윌리스 작품집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이 책은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SF는 아니다. 흔히 SF 하면 떠올리는 로봇, 시간여행, 우주활극, 우주비행선은 이야기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스터리, 스릴러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심지어 ’내부 소행’은 강령술 이야기다.


단편이기 때문에 전체를 통과하는 메세지나 요약은 넘어가고, 각 이야기마다 느낀 감상을 한두 줄로 써보면,


리알토에서 - 미시세계에서 설명되는 양자역학이 거시세계인 우리의 현실에 나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소 난잡하고 시끄럽지만 양자역학의 불가해성을 잘 표현해낸 이야기다.


나일강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의 동명의 작품을 오마쥬한 작품이라고 한다. 원작을 읽어보지 못해 오마쥬 어쩌구는 패스. 한 인물의 죽음에 대한 완벽한 미스터리이자 스릴러다. 주인공은 정말 죽은 것일까? 언제부터 망자의 이야기인가? 그녀는(혹은 그들은) 왜 죽었을까? 저승으로 가는 주인공은 과연 어떻게 될까? 궁금증을 마구 일으킨다.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 - 세기말의 절망적인 상황. 어딘가에 이유모를 폭탄이 떨어지고, 가족이라는 한 공동체가 서로를 향해 총질을 할수밖에 없는 서글픈 상황을 그린다. 인간성을 상실한 미래, 인물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화재 감시원 - 코니 윌리스에게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 책의 표제작인 동시에 코니 윌리스의 대표 중편이라고 한다. 역사를 어떤 식으로 봐야 하냐는 질문에 답하는 코니 윌리스의 멋지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단순히 몇 줄의 글에 표현된 역사 사건을 넓게 넓게 펼치면 순간은 정말 찬란하고 아름다우며, 비극적이고 희극적인 온갖 감정의 집합체다. 우리가 역사를 볼 때, 단순히 문자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당시를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코니 윌리스의 강력한 설득.


내부 소행 - 특이하게도 강령술에 대한 이야기다. 흠, 작가가 이 소설을 어떤 의도로 썼는지는 잘 모르겠으나(두 명의 회의주의자를 보여줌으로써 합리적 의심과 이성적인 판단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적어도 나는 회의주의자가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읽었다. 회의주의자의 두 번째 규칙 - ‘너무 훌륭해서 진짜라고 믿기 힘들 정도라면, 진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 을 계속 되뇌게 만드는 작품.


이렇게 재밌게 읽을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봤어야 했는데. SF라는 이름에 피하지 말고 놀라운 이야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본다는 생각으로 책을 봤으면 한다. 읽는 재미에 생각하는 재미까지 여러모로 좋은 작품집이다. 미국에서 열 편의 중단편을 모아 책을 냈는데 <화재 감시원>은 이중 다섯 편을 추렸고 나머지는 <여왕마저도>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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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3-20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엔가 사서 읽다가 무슨 일에선지 다 못
읽은 책인 것 같습니다.

아마 <나일 강의 죽음>까지 읽은 듯 하네요.

리뷰 보고 나서 다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손잡이 2017-03-20 17:54   좋아요 0 | URL
제대로 된 리뷰는 아니지만, 예상 밖의 재밌는 작품이었습니다. <여왕마저도> 평이 더 좋던데 기대 중입니다.
 

두 달만인가, 회사 독서 동호회 모임을 가졌다. 회장님이 요새 일이 너무 바빠 동호회 일에 신경쓰기 힘들었다고 한다. 요새 회사 돌아가는 걸 보니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 회사를 다니면서 동호회 활동하기도 힘든데, 동호회마저 독서가 주제니, 이해할 수밖에 없다.


몇 개월만에 신입 회원이 들어왔다. 교육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라서 교육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하셨다. 그외에는 책을 그닥 읽지 않는다. 30명 남짓한 회원 대부분이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동호회에 가입했다고 한다. 동호회 창립 멤버로서 같이 즐기고 싶지만 객관적으로 레벨 차이가 나니 모임이 쉽지 않다. 물론 나도 책을 그저 읽어내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모임 후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동호회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간단히 토의했다. 바쁜 와중에도 회장님이 몇가지 생각을 해오셨다. 아직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가볍게 만화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같이 만화 카페에 가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동호회 활동도 할겸 회원끼리 친해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거기에 각자 만화를 선택한 이유(아무런 의미 없이 진짜 그냥 이유)와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말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런 말 하기 정말 부끄럽지만 동호회에서 그나마 책과 친한 내가 몇 의견을 냈다. 계획을 세워서 장기로 진행하려고 했는데 회장님은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시작하잔다. 사실 잘난척하려고 뱉은 말이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긍정적이어서 내심 놀랐다. 졸지에 동호회 컨텐츠 담당자가 될 기세다.


내 의견은 대부분 다른 독서, 작문 수업에서 따왔다. 지금 하는 토론 수업이나 관심 있는 수업을 적용해봤다.


책 선정

우리 동호회는 격주로 만난다. 한번은 자유 도서, 다른 주는 지정 도서로 활동한다. 자유 도서 주에는 평소에 읽고 싶거나 전에 읽었던 책을 가져와 얘기를 한다. 허나 지정 도서는 강제성과 귀차니즘이 발동해 참여 회원 수가 비교적 적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게 지정도서 선정이다. 어떤 책을 골라야 회원 두루두루를 만족시킬까. 초창기에 <총균쇠>를 골랐다가 한 달 동안 아무도 읽지 못해서 애먹었던 이력이 있어 민감한 부분이다.

베스트셀러 중 눈에 띄는 책을 고르자고 말했는데 베스트셀러를 믿기 힘들다는 의견을 들었다. 잘 고르면 된다는, 다소 두루뭉술한 의견을 내니 ‘누가 잘 고를 수 있냐’는 반론이 나왔다. 예스24 블로그나 알라딘 서재를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독서 토론처럼 일정 기간의 책을 미리 선정해보자고도 했지만 이 역시 누가, 어떻게 흐름에 맞는 책 선정을 할 것이냐는 현실적인 벽에 막혔다. 어려운 부분이다.


매일 읽기

여러 독서 커뮤니티나 교육원에서 진행하는 활동이다(거의 베껴오기급). 아무래도 회원 대부분이 책을 읽고 싶어서 왔기에 조금이라도 책을 읽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반강제로라도 매일 읽기를 습관화하면 책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카톡방을 만들어 자정이 지나기 전까지 그날 읽었던 책과 쪽수, 가장 눈이 갔던 문장이나 단락을 소개한다. 일주일에 한번 참가자가 잘하고 있나 통계를 낸다. 단, 이 통계를 게시할지 말지는 조율해야 할 부분이다. 단순히 목표를 위해 책을 펴는 게 나쁘다는 의견도 있어 고심해볼 문제다.


독후활동

독서는 독후활동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에 반대하지만 독서만큼 독후활동도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허나 우리 동호회원들이 누군가. 나를 비롯해 아직 책을 읽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 초보자이다. 책 읽기도 어려운데 독후활동 - 대부분 독후감과 서평, 독서토론으로 알고 있는, 어렵고 머리를 쓰는 일을 해야 한다니 부담감에 목이 매어온다.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독서 메타북에서 항상 언급하는 한 줄 감상 쓰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책을 읽고 평점을 매긴다. 재밌다, 감동적이다, 지루하다라는 평을 하고 그런 생각이 든 부분이 어디었는지만 간단히 말하면 된다. 단, 처음에는 서로 무한 긍정만 해야겠다. 우린 아직 초보자니까 말이다. 항상 글로만 간단한 독후감을 써오던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자유연상 글쓰기

동호회 이름은 ‘독서’를 걸었지만 독서와 글쓰기는 한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는 독후감이나 서평을 떠올리고 난이도의 장벽 때문에 글쓰기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이에 나는 자유연상 글쓰기를 말했다. 동호회 모임 한 시간 동안 어떤 주제를 두고 무작정 글을 쓴다. 문법, 형식은 신경쓰지 않고 그저 마음가는대로 써내려가면 된다. 미리 써오는 글은 안 된다. 잘 쓰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자유연상 글쓰기의 목표는 잘 쓰기보다는 ‘그냥 써내려가기’이다. 자기 이야기를 쓰다가 울음이 터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글.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차차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다 쓴 글은 그대로 집에 가져가지 말고 동호회원과 함께 낭독해보자고 했는데 이건 조금 거부감이 드나보다.


회의에서 잘난척 하려다가 말이 길어지고 어느새 동호회 에이스(나 따위가… -_-) 가 돼버린 나로서는 퍽 난감한 일이다. 그저 유유자적 재밌는 책 읽기만 해와서 더 그렇다. 같은 독서 초보로서 동호회원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까. 스마트폰, TV, 게임보다 책이 더 재밌다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글쎼, 잘 모르겠다. 좋은 말은 실컷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같이 즐기는 건 결국 실천의 영역이다. 딱딱하고 어려운 책이 아니라 재밌는 놀이 수단으로 느낄 때까지, 열심히뿐 아니라 재밌게 해나가야지. <이젠, 함께 읽기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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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다섯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중이다. 매일 이십 분씩 시간을 할애해서 조금씩 읽는다. 집에서 읽을 때는 문제가 없다. 책을 옆에 쌓아두고 읽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외출할 때다. 책을 모두 가방에 넣고 다니려면 어깨가 빠질 같다. 나갈 때마다 카메라까지 등에 짊어지니 가방도 뚱뚱해져 볼품이 없을뿐더러 온몸이 무겁다는 비명을 지른다. 안다. 최고의 해결법은 읽을 권만 가져간다, 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독서인이다.


무거움을 타파하고자 가끔 전자책 기기(이하 이북리더기) 들고나갈 때가 있다. 역시 가볍고 작은 최고라고 매번 감탄하지만 읽다 보면 읽는 맛이 난단 말이지. 그래도 회사 기숙사에서 오피스텔로 이사해야 하는데 책이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이다. 팔고 전자책으로 바꿔버릴까, 하다가도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러니까, 오늘은 종이책과 전자책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남겨본다.



나의 전자책 역사

전자책을 읽은 지는 오래됐다. 교보문고에서 스토리K HD 때였으니까, 검색해보니 2012년이다. 신문물에 깜짝 놀란 나는 어머 이건 사야 해를 외치면서 냉큼 기기를 샀다. 허나 교보문고에서 전자책만 읽을 있었고, 다른 책을 읽을 있다손 쳐도 내가 직접 만든 컨텐츠나 어디선가 구한(대부분이 어둠의 경로일 수밖에 없다) 파일만 읽을 있었으니 신문물에 대한 흥미는 사라졌다.


뒤로 알라딘과 예스24 필두로 한국이퍼브에서 기기인 크레마 터치를 내놓는다. 알라딘이 서점이었기에 당연히 기기를 샀고, 이놈 역시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서랍에 잠들고 만다. 뒤이어 프론트 라이트가 달린 크레마 샤인, 교보문고의 대여 컨텐츠와 같은 이름의 SAM, 미국 아마존에서 만든 원서 전용기 킨들페화4, 카르타 패널로 만든 크레마 카르타, 리디북스 전용기인 리디 페이퍼(+보급기인 리디 페이퍼 라이트)까지, 국내 발매된 이북 리더기는 거의 써봤다고 해도 무방하다. 심지어 아이패드3, 아이패드미니, 아이패드 프로까지 이북 리더기로 써봤으니 전자책을 접할 있는 기기는 거의 사용해본 격이다.


기기 많이 무슨 자랑이냐고 있겠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지. 전자책을 년이나 읽어놓고 아직도 전자책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못한 아니라 실패했다고 있겠다.



전자책은 어떤 장점을 가질까

전자책의 장점은 많다. 실물이 아니라는 점이 모두 장점이다


실물이 아니기에 부피가 적다. 몇백 , 몇천 권의 책도 SD 카드 장에 들어간다. 서재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는 셈이다. 종이책 표지가 주는 정갈함과 심미적인 면을 빼면 실용적인 면에서는 전자책이 최고다.


책으로 가득한 서재를 메모리에 저장할 있기에 무게도 사라진다. 종이의 실물 무게는 단순히 텍스트와 그림의 데이터로 변환돼 메모리에 저장된다. 메모리는 아무리 많은 내용이 들어간다 해도 무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부피와 무게 감소는 책을 보관하고 이동할 가장 장점이 된다. 실용성 하나만 생각하면 종이책은 전자책에 절대 이길 없다.


요새 나오는 이북 리더기는 프론트라이트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책을 있다. 어두껌껌한 곳에 들어가면 읽지 못하는 종이책과는 전혀 다르다. 누군가 옆에서 잔다고 독서등을 켜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태블릿류와 다르게 이북 리더기는 프론트라이트를 쓰기 때문에 눈부심이 덜한 편이다. (완벽히 없다고는 없다)


전자책은 완벽하게 개인화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작은 글씨를 보기 힘들고, 한번 찍어내면 고정적인 글자만 보여주는 종이책을 읽기에 불편하다. 그런 사람을 위해 큰글씨책이 나오지만 수는 매우 적은 편이다. 이런 불편함을 전자책이 해결해주기도 한다. 글자 크기가 조절되기 때문이다. 글꼴이 마음에 든다면 글꼴 파일을 구해 바꾸기도 가능하다. 줄간격, 여백을 조절해 자기만의 책을 만들 있다. 실례로, 열린책들 세계문학 종이책은 글씨 크기가 작고 줄간격이 좁아 불편한 면이 있다. 전자책은 레이아웃을 내입맛대로 바꿔서 읽기 편하게 만든다.


개인화는 기기 바깥에서도 있다.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남이 모른다는 점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전자책이 그렇게 불티나게 팔린 것도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사실 아니다…) 종이를 만드는 낭비되는 나무를 아낄 수도 있다.



종이책이 주는 경험은 전자책과 다르다

전자책은 이렇게 장점이 많다. 부피와 무게 하나만 생각해도 당장 종이책을 버리고 전자책으로 바꿀 욕심이 든다. 전자책이 편하다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심지어 환갑에 가까우신 우리 엄마도 정도다. 그런데 나는 년간 전자책에 적응하지 못했을까?


전자책의 장점은 종이책의 단점이다. 단점이 주는 익숙함을 버리기 힘들어서 여태까지 종이책을 붙들고 있는 아닐까 생각한다


전자책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하면, 전자책 애호가들은 어차피 같은 텍스트인데 내용에만 집중하면 해결되는 문제 아니냐고 답변한다. 전자책을 접했을 의견이기도 하다. 어차피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표지도 아니고 디자인도 아니고 책의 본질, 텍스트에 있지 않은가? 전달 방식이 바뀌어도 내용이 같으면 똑같은 책이 아닐까?


질문에 의견을 말해보자면, 텍스트는 책의 본질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책은 단순히 텍스트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게, 표지 촉감, 종이 질감, 냄새,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모두 책의 요소다. 읽기는 단순히 시작적인 행위가 아니다. 오감을 모두 동원해서 지식과 치열하게 싸우는 전투에 가깝다. 부피와 무게가 종이책의 단점이자 장점이 되는 것이다.


앞서 전자책의 장점으로 뛰어난 개인화를 꼽았다. 하지만 편집자가 글꼴과 글자 크기, 줄간격, 여백을 끝없이 고민해서 책을 출판한다고 생각하면 개인화는 책의 요소인 편집의 맛을 완벽하게 부숴버리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출판사의 고유한 편집 스타일이 종이책의 장점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이북 리더기가 주는 이질감을 이겨내기가 힘들다. 특히 촉감이 그러한데, 내가 책을 읽는 건지 기계를 만지는 건지 수가 없다. 요새는 터치 스크린 옆에 물리키를 달아 촉감적인 면을 강조하는 기기도 나오지만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다.



익숙함을 이기기 힘들어

삼십 년을 무거운 책을 들고 종이를 넘기는 소리를 들었으니 전자책에 쉬이 적응하기 힘든 사실이다. 뇌의 가소성이 사라져 버린 걸까. 아무리 무거워도 종이책을 들어야 무게에서 오는 안정감에 마음이 놓인다변화를 거부하는 나와 달리 어린애들은 때부터 모니터와 친했기에 전자책에 친숙할 거라고 많은 조사가 예상한다.


가진 책을 모두 전자책으로 바꾸려고 해도 막상 종이책을 들면 좋아 죽으니 어쩔 없다. 무겁고 불편하더라도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이미 뇌는 실물에 적응이 취향을 바꾸기는 힘들다. 노력은 하겠지만 글쎄, 이사할 때마다 힘들어도, 분기마다 책장정리에 기를 써도, 어떤 책을 남기고 보낼지 고민해도, 종이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종이책 알라븅


쓰다 보니 전자책의 장점이 길어지게 되었다. 말주변이 없어 종이책을 충분히 변호하지 못한 아닌가, 침대 위에 널브러진 많은 종이책에게 미안하단 말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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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4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공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대출할 수 있는 어플이 있어요. 저는 그걸로 전자책을 빌려 읽습니다. 도서관에 직접 갈 필요도 없이 전자책을 이용합니다. ^^

양손잡이 2017-03-04 11:43   좋아요 0 | URL
회사에 전자도서관이 있어 잘 이용했는데, 리디북스 페이퍼를 쓰면서 이용 못하게 되었습니다 ㅠ 루팅해야 하는데 그것도 나름 싫고... 크레마를 다시 사용해야 할까요 ㅋㅋ

cyrus 2017-03-04 11:59   좋아요 1 | URL
그런데 제가 이용하는 어플도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어요. 컴퓨터로 보기 힘들어요. 컴퓨터 사양이 떨어지면 전자책 서비스 기능이 지원되지 않거든요.. ㅠㅠ

크레마는 제가 안 써봐서 잘 모르겠어요. ^^;;

양손잡이 2017-03-04 12:42   좋아요 0 | URL
아이패드에도 적응 못해서 컴퓨터는 엄두도 안나네요... 혹시 어떤 어플 쓰시나요?

cyrus 2017-03-04 16:58   좋아요 0 | URL
어플 이름이 ‘대구전자도서관’입니다. 제가 대구에 살고 있습니다. 대구 공공도서관 전용 회원 카드를 만들고, 그 카드 회원 정보만 입력하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전자책을 빌릴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 집 컴퓨터 사양이 오래된 거라서 ‘대구전자도서관’ 기능이 안 돼요.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는데, 계속 보면 눈이 아파서 오래 못 읽어요. ㅠㅠ

양손잡이 2017-03-04 17:05   좋아요 0 | URL
아하, 뭔가 범용으로 쓸 수 있은 어플일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ㅠ 전 회사 전자도서관을 이용하는데요, 잘 팔린다는 책은 다 대출 제한이 걸려 있네요. 참, 눈 아프시면 전자책 리더기 한번 고려해보시는 건 어떨지요?

cyrus 2017-03-04 17:32   좋아요 0 | URL
전자책 리더기를 사야겠지 하다가 그 돈을 종이책 사는 데 써버렸어요.. ㅎㅎㅎ

GreenJelly 2017-03-06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혼자 살면서 책들이 많아지는게 감당이 안돼서 크레마 구입했었어요. 한 일주일은 신나게 읽다보니 글 쓰신 그대로 느껴져서 너무 공감갑니다. 이북이라 (종이책이 아니라서) 가볍고 휴대하기 좋고 깜깜해도 읽을수 있는데...종이책이 아니에요ㅠㅋㅋㅋㅋ그리고 전 순서대로 읽는 책도 있지만 어떤 책들은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읽는 경우도 있는데 전자책은 확실히 그런면에서는 불편해요ㅠㅠ그리고 어떤책은 아껴서 읽고싶지만, 어떤책은 줄도 치고 옆에 어쩌구저쩌구 코멘트도 달고싶은데 전자책이 아무리 메모기능이나 하이라이트 기능을 제공해도 손으로 직접 쓰는 느낌이 안나구요. 전자책을 사보니 전자책의 편리함도 느끼지만 그만큼 종이책의 소중함을 더 느끼고 있었는데 너무 표현을 잘해주셔서 넘 공감해요:)

양손잡이 2017-03-06 18:46   좋아요 0 | URL
전자책 처음 접하면 신세계에 눈을 뜨지만 종이책을 좋아하면 생각이 좀 바뀌는 거 같더라구요 ㅎㅎ 저는 가벼운 소설류나 자기계발서적은 전자책으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