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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침묵 ㅣ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2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작품 외적인 감상
서평에 들어가기 앞서 역자가 공개한 이 책의 탄생 비화를 소개한다. 저자가 출판사 편집자에게 '후속작의 내용이 복잡해서 원고 분량이 많다'고 하자, 편집자는 '이야기를 둘로 나누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저자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정말' 이야기를 둘로 나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책이 <나이팅게일의 침묵>과 <제너럴 루즈의 개선>이다. 두 작품의 사건은 동시 진행형이며, 같은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일란성 쌍둥이'인 두 작품의 어려움은 고스란히 <나이팅게일의 침묵>이 짊어졌다.
이 정도에서 작품 외적인 탄생 비화와 역자의 충고를 마친다. 여기에 내 충고를 살짝 보태자면,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만큼의 재미를 추구한다면 실망할 것이고, 후속작인 <제너럴 루즈의 개선>으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여긴다면 참을 만할 것이다. 어차피 그 둘은 '하나에서 나눠진 둘'이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의 배경도 '바티스타 사건, 그 후 9개월'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필자또한 <바티스타>을 읽은 지 9개월쯤 흐른 것 같은데, 역시나 전작의 내용이 상당 부분 흐릿한 상태에서 읽었는데도 지장이 없었다. 시리즈이니 순서를 지켜야 하냐는 질문에 답변이 될 것이다.
물론 <바티스타>에서 보여준 '시라토리'의 능수능란한 '액티브 페이즈 비결'은 꼭 전수받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전작을 읽지 않아도 이 작품의 내용 전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 각자의 판단에 따라서 선택하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출판사에서 출간 시기를 늦춰서라도 두 작품의 '동시 출간'을 진행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다. 뭐, 속사정이야 있겠지만은, 그덕에 좀더 '특별한 독서의 경험'을 누릴 수 있었다만은, 아쉬움을 지울 길이 없어 속상하다.
작품 내적인 감상
이제부터 할 '내적 감상'은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표현상의 특징' 위주로 진행된다.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소설을 떠올려 보면서 그 특징과 비교해주길 바란다. 우선 사건의 배경은 앞에서 말했듯이 '바티스타 사건 9개월 후'이므로, 이 작품은 그와는 전혀 무관한 사건이 펼쳐진다. 그러나 '의료계의 해악'을 드러낸 사건으로 말미암아 많은 의료계 종사자들은 심리적 외상을 감내해야하는 상황에 놓인다. 더불어 주공간이 되는 '소아과'는 경시 풍조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소설 속의 사건은 12월 14일에서 26일까지로 무려 2주에 가까운 기간을 그리고 있다. 정작 사건이 발생한 날은 19일, 경찰 조사에 들어간 날은 20일, '시라토리'가 합류한 날은 21일로 사건 해결까지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다구치가 조사에 들어갔던 <바티스타>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점이다. 그리고 사건의 발생 당시부터 범인이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유예 기간을 줘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도록 유도한 점도 전작과의 차이점이다.
필자가 생각할 때는 이왕의 소설을 둘로 나눴으니 사건의 시작 부분을 좀더 간결하게 꾸미고, 이야기가 타이트하게 진행되도록 힘썼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든다. 전작과 달리 긴박감이 떨어지는 것은 느긋한 '시리토리'의 성격과 견주어서 당연하다고 느껴지지만, 독자에게는 긴장의 끈이 풀어져서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다음으로 전작에 비해 '토리와 구치'의 활약상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점도 기대하던 독자를 안타깝게 만든다. 물론 '가노'라는 미남 형사의 등장은 '의외의 수확'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소설이 전작의 바통을 이어받은 부분은 '다양한 캐릭터의 향연'이다. 이번엔 등장인물이 좀 많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대표적인 인물로, '잠자는 고양이' 네코타 간호사장, '디지털 하운드 독' 가노 경시정, '화식조' 시라토리('화식조'란 쉽게 말해 땅딸막하고 화려한 새), 등 다양한 캐릭터와 그에 걸맞는 별칭으로 인물의 성격을 확실히 집어준다. 그에 비해 '다구치'의 성격은 무난하고 별다른 특징이 없어 독자가 이입하기 쉬운 인물이지만, 필자가 볼 때는 다소 답답한 면이 있어서 별로 안 좋아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수확은 '동창 찾기'였다. 이러한 동창들의 등장은 '인물의 숨겨진 일화'를 들려주기 때문에 즐겁다. 확률 연구회 소속인 '시라토리-가노'와 퐁친구인 '다구치-시마즈-하야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레 그들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이 작품을 재밌게 읽는 방법은 후속작과 연계된 부분을 찾아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174페이지에 "그렇다면 좀 안심이네. 실은 때 아니게 들어온 신입 때문에 좀 휘둘려서..."란 쇼코의 대사에서 후속작 <제너럴 루즈의 개선>과 시라토리의 부하 '얼음공주'를 찾을 수 있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을 접하며 닳고 닳은 능력인지라, 143페이지의 레스토랑 만텐에서 '묵묵히 정식을 먹고 있는 중년 부부 한 쌍과 환자복을 입고 링거 스탠드에 몸을 의지한 노파가 손자들의 말다툼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에도 후속작의 냄새를 맡는다. 이것이 바로 앞서 말한 '특별한 독서의 경험'이다. 이러한 탄생 비화를 지닌 작품이 드물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냄새 맡는 능력'을 숙달해보자. '시라토리'의 대사에선 본격 미스터리 <나전미궁>의 냄새까지 솔~솔~ 풍긴다. 고것 참, 맛나겠다.
(추신) 내가 찾은 부분이 후속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해도 손해볼 건 없으니까. 쿠헬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