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7 - 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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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미스터리 [외딴집上,下]을 읽고 난 뒤라 더 기대되는 그녀의 신작이다. 현대 미스터리물만 잘쓰는 그녀인 줄 알았건만,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에도 시대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이번 작품은 그녀의 전작보다 미스터리적 요소가 더 가미됐다고 해서 기대 반, 궁금증 반으로 책을 펼쳤다.

 이번 작품에선 '그녀의 스타일'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소재가 빈번히 등장한다. 프롤로그에서 등장하는 두 남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고', 바로 들어간 본문의 첫 부분에선 '한 남자의 꿈꾸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래서야 '미야베 미유키'가 아니라 '온다 리쿠'의 소설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시작이 아닌가.

 뜨악함을 그칠새 없이 또 하나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프롤로그에 들어가기 전에 등장하는 [그러나, 그대, 이것은 모두 꿈에서 본 것, 꿈의 이야기. - 그림 형제, '도둑 신랑']이란 문장과 에필로그를 마치고 주의 형식으로 단 [작중 등장하는 인명, 단체 등은 전부 픽션입니다.]란 문장이었다.

 소설이 '이것은 철저히 소설입니다'라고 강조하는 상황이니 놀라울 수밖에. 그러나 알고보니 이 소설은 실제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두 가지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다고 한다. 나야 일본인이 아니라 잘 몰랐지만, 그 사건을 경험하고 소설을 읽은 일본 독자들은 내가 느낀 뜨악함을 넘어선 공포를 느꼈으리라.

 사실 내가 느낀 공포는 '사건이나 범인의 잔인함'보다는 '인간간의 소통의 부재'였고 '철저한 계산'이었다. 이같은 서술은 '그녀만의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녀의 소설은 빛을 발한다.

 소설은 두 갈래로 서술한다. 하나는 '기억을 잃은 남녀'가, 또 하나는 '실종된 여고생을 찾는 여자'가 등장한다. 화자는 각각 '기억을 잃은 그'와 '여고생을 찾는 그녀'다. 각 이야기의 교차점을 상권 후반부에나 나오기 때문에 처음엔 각자 다른 필름을 상영할 때처럼, 아니 각자 다른 필름을 이어붙인 것처럼 진행된다. 

 특히 '기억을 잃은 남녀' 편에서는 내가 '피' 다음으로 싫어하는 '감금'이라는 소재가 등장한다. 초반에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렸을 정도였다. '기억을 잃다'는 것이 '눈이 멀다'란 상황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나중의 전개에서 '또 다른 공통점'이 발생해서 혼자 놀라기도 했다.

 여기서의 '감금'은 '누군가의 감시에 의한 감금'이 아니라, 자신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의 두려움에 의한 감금'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다르지만, 이후에 속속들이 등장하는 '부차적인 서스펜스 요소'들로 긴장감을 안겨준다. 엄밀히 말해 '감금'이 아니었고, 또 '조력자'를 만난 그들은 사건을 파헤친다.

 또 다른 이야기인 '실종된 여고생' 편에선 앞에서 이야기한 '소통의 부재'와 '철저한 계산'을 참담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절대악'으로 상징되는 인물의 악덕 행위는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고, '평범하다고 여겼던 인물'의 이중적인 행동과 말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현실감)는데서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아직 소설을 접하기 전인 독자들은 '레벨7'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겠지만, 소설의 재미를 위해서 자세한 언급은 일절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북스피어 편집부가 마련한 '이스터 에그' 찾기와 초반 첫 머리에 등장한 그림 형제의 동화 제목 '도둑 신랑'에도 유념한다면 더 큰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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