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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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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INET
 
책을 펼치면 첫장에 '루저 실바리스는 왜?'라는 물음이 나온다.
나는 '루저 실바리스'가 '소설가 자신'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 물음이 '소설가의 존재'를 묻는 근원적인 질문이라 생각된다.
 
'김언수는 왜, 심토머들이 가득한 <캐비닛>을 썼을까?'
 
화산에 잠겨버린 상피에르의 유일한 생존자, '루저 실바리스'는
사람이 살지 않는 멕시코의 사막 끝에서 삼십 년 동안 은둔해서 살며
<상피에르 사람들>이란 책을 썼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이 좀 석연찮다.
상피에르 사람들의 모습은 엉뚱하다 못해 희한하고 이상하다.
 
'루저 실바리스는 왜, <상피에르 사람들>을 썼을까?'
 
상피에르를 떠나본 적이 없고, 상피에르를 떠나는 것을 상상해본 적도 없는
'루저 실바리스'는 아무도 없는 멕시코의 사막 끝에서 은둔하며,
'나는 왜 혼자 살아남아 이 낯선 땅에 유배되어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한다.
 
그 처절한 고통의 시간 속에서 그는 잃어버린 상피에르를 한 줄씩 써내려간다.
사명감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공대리는 왜, 심토머들의 자료를 관리하고 기록하는가?'
 
개껌이라도 질근질근 씹어 먹고 싶은 지독한 무료함이 내 삶에 가득하다.
알지 않는가. 내가 '심심한 건 잘 못 참는 성격'이라는 걸.
 
자,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작가가 왜 <캐비닛>을 썼는지 알아보자.
루저 실바리스와 공대리는 모두 '심심한 건 잘 못 참는 성격'이었고,
각자 <상피에르 사람들>을 쓰고, <캐비닛>을 관리하는 일이 '유일한 일'이었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친구의 '도움'으로, 그 친구에게 기대는 자신의 '뻔뻔함'으로,
열심히 밥벌이 하는 사람들에겐 없는 '허영심' 때문에 문학을 한다고 한다.
 
내가 볼 땐, <캐비닛>의 탄생은, 그리고 '괴물같은 작가' 김언수의 탄생은,
현대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이자, 모순과 양면성을 지닌 거울같은 현실을,
시간에 쫓겨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무가치와 무의미로 내버려진 세상을,
보여주는 '문학의 당위성'이라 생각된다. 너무 어렵게 설명해서 나도 내가
뭐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즉, 이 책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이다.
 
… · … · … · …
 
아래는 공대리와 권박사의 대화 중 일부다. 공대리가 심토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권박사가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며, 왜 새로운 종의 출현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저는 심토머들이 여전히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같은 종 말입니다.
단지 심토머들은 조금 아픈 거죠. 정체 모를 병에 걸려서."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아니기를 바라지만."
 
"아니기를 바라세요?"
 
"자넨 인간이라는 종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나?"
 
… · … · … · …
 
심사평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소설은 플롯이 약하다. 아니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심토머들의 기록은 너무나 산발적이라,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놓는 경우도 있었고,
그로 인해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희귀한 사연을 수집해 진열해놓은 듯해(이선우),
<믿거나 말거나>나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는 듯한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많은 분들의 지적을 받은 결말 부분에 있어서도, 첩보 형식의 기업 스파이 등장은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수미상관의 형식미(은희경)를 빌어 잘 마무리 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거침없는 구라의 향연에 즐거웠고, 행복했다.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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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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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소설이 여기 존재하는 것은,
이 세계가 소설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그것을 위해,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이다.

 
단순히 제목만으로 끌린 책이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기도 한.
누군가 나에게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뭔가요?'하고 묻는다면,
당당히 '제목이요'라고 말할 것이다. 역시나 제목이 끌린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좋아라 빌려왔을 때도 책을 펴보지 않았고,
책을 빌리기 전에 어떤 책인지 알아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이 펼쳤다.
단편소설에 크게 데인 적이 있어서(한창 재밌다가 맥없이 끝나버리는)
단편소설을 싫어하는 난, 이 책이 단편집임을 차례를 보고 뒤늦게 알았다.
 
어쩌면 그건 이 책과 나의 운명적인 만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나와 코드가 맞는 새로운 작가를 찾아냈다. 매우 기쁘다.

<나쁜 소설 - 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와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처럼 작가가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문체가 좋았다. 작가와 독자(나)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진 듯 했다.

그리고 가장 기발하고, 독창적이었던 < ... 가정식 야채볶음흙>
요리 레시피의 형식을 빌어, 흙을 먹는 사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더해, 있을 법한 이야기로 빚어내는 솜씨가
기가 막힌다. 흙으로 만든 요린데, 읽으면서 입에 침이 돌 정도였다=_=;;
그는 친절하게도 독자를 위해 '고령토'를 추천한다. 정말 친절하기도 하셔라.

그리고 '소설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졌던 <수인(囚人)>은
이 작가가 거침없는 황당함을 소재로 갓 태어난 햇병아리 신인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난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하고 싶지만, 이건 너무 상투적이야.
그 나름대로의 모색에 박수를 쳐준다. 앞으로도 '곡괭이'같은 작가로 발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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