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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하진의 책을 언젠가 한 번 읽고서 이후 다른 책을 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책이 나와 있었던 것 같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는데 재미있게 읽었다. 가족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끈끈한 정도 없으면서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 의무를 다해야 하는 언니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번 책 기다림도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었다. 애정이 없는 결혼생활 18년의 끝에 부인의 동의 없이도 이혼을 하게 된 린, 그를 기다려 준 간호사와 마침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신혼의 재미는 어디로 가고 짜증과 절망스러움만 남는다. 그녀가 곧 죽을 운명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수위에게로 돌아가고 픈 마음이 드는 린.
중국의 한 때를 보면서 그 때의 문화와 삶의 모습들을 보게 된다. 정치와 사상에 대한 억압과 연애에 대한 문제 등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압된 환경 속에서도 사랑을 찾고자 했던 두 사람과 그 주변 인물을 통해 그 시대가 안고 있던, 그 시대와 함께 있던 인간의 악을 보여준다. 선한 모습 속에서도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히고 쫓아다니는 악의 모습. 겉은 멀짱하게 봤지만 인간이 보지 못하는 그 속사람의 모습을 양겅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적나라게 보여준다. 그리고 저자는 끝내 그런 자가 부자로 성공하는 모습으로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을 마지막 부분에서 보여준다. 피한다고 피하지만 다시 그 굴레 안에 갖혀 사는 인간의 나약함을 통해 무엇이 올바른 삶이며, 삶은 어떠해야 하는 가를 묻는다.
조금 씩 보면서 더 미룰 수 없어, 한 번에 읽게 된 책이다. 그만큼 다음 이야기로 끌어가는 힘을 문장 속에서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혼을 중점으로 해서 이야기들과 사람들이 달라붙으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다른다.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다시 또 절망과 슬픔을 맞보는 사람들. 어려운 순간들을 참고 이겨왔지만 그 후 행복해야 할 시점에서 맞이하는 불행한 순간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누가 그러한 순간을 생각하며 달려갈 수 있겠는가. 누구 그러한 일들을 상상하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오직 좋은 일만, 오직 기쁜 일만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인간이 원치 않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들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을 통해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를 문장 속에 남겨두었다.
“다 익은 과일이 서리가 내리면 저절로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그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둘은 이혼하게 돼 있었다. 그는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힘으로 수위와 이혼한 뒤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런 힘을 가리켜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하는 거겠지.“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한 인간의 나약함을 또한 저자는 보여주려 한 듯 하다. 린이라는 이 인물은 바로 그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 갈등하는 한 인간을 보여준다. 결혼이라는 시작부터 자신이 결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 이혼을 애쓰는 모습이나 새로운 연인과의 결합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끌려가는 인상이 크다. 그렇게 이혼을 하고 돌아섰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불행 속에서 하찮게 여겼던 것들이 오히려 더 좋아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린은 얼어붙었다. 잠시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신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멍청한 자식, 그런 것도 모른 채 18년을 기다리다니!, 18년이라는 인생의 황금기를 낭비해버린 뒤에 겨우 이런 빌어먹을 결혼 생활을 얻게 되다니, 나야말로 보범 바보야!”
실화를 바탕으로 짜여진 구성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이 책은 다른 하진의 책을 권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