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얼마 전 브뤼노 몽생종의 <리흐테르-회고담과 음악수첩>을 읽게 되었다.

리히터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듣고 난 다음부터, 난 리히터의 광팬이 되었고 지금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소장하지 못한 리히터의 음반이 보이면 정말이지 안달이 났다.

PHILPS에서 발매된, 리히터의 을 미루다 미루다 결국 못 사게 된 건 아직도 천추의 한으로 남아있다.  


그러던 차에 리히터의 자서전 겸 평전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터라 난 크게 고민하지 않고 냉큼 사버렸다. 리히터의 시선을 쫓아 부지런히 읽어나가던 중 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의 고민들을 만나게 되었다.

난 전문적으로 음악공부를 받지 못했다. 그냥 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간단한 상식수준의 지식과, 내가 관심이 있어서 몇 권의 책을 통한 독서로 아주 간단한 이론정도만을 습득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인지 난 내가 과연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관한 고민을 쭉 해왔다.


틈틈이 CD 내지에 있는 편린들을 읽어나가며, 가끔씩 CD Guide Book이나 잡지들을 사보며 나름대로 자위 아닌 자위를 해왔다. (여기선 자위란 므흣한 뜻이 아닌거 아시죠 ^^;)


나에게는 교주님이신 리히터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음악은 연주하거나 듣기 위한 것이지 분석하거나 비평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난 녹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략.. 그래도 몇가지 예외가 있다. 역시 페렌치크와 함께 녹음한 리스트의 <헝가리 환상곡>이 그런 예다. 물론 바보 같은 비평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 아니면 영국의 비평가였다... 중략... 그 비평가는 <헝가리 환상곡>의 녹음을 두고, 아마도 자기 딴에는 칭찬을 한다고 한 것이겠지만, 멍청하기 짝이 없는 글을 썼다. ‘종결부는 더 이상 리스트의 것이 아니었다. 하차투리안의 <劍舞>를 연상케 했다.’ 세상에! 나는 그 검무보다 더 혐오스러운 작품을 알지 못한다. 리스트의 헝가리 환상곡이 다소 가벼운 작품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 고약한 검무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돈 크레머와 마르타 아르헤리치 <프로코피예프/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회였다. 하긴 놀랄 일도 아니다. 이들은 리허설도 하지 않고 바로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연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저 수치스러울 따름이다(특히 바이올린) 이런 태도로 예술에 임한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이 그렇게 행동해도.... 결과는 엄청난 성공이다.


리히터는 그 자신의 녹음에게도 가차없는 비판을 가한다. 모든 평론가들이 Beethoven Piano Trio의 명반이라고 손꼽는 로스트로포비치,오이스트라흐,그리고 카라얀과의 협연은 리히터 자신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 악몽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이 정도쯤이면 그건 나에게도 악몽이다. 나 또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음반을 극구 추천해 주었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평론의 떨거지들을 신나게 읊어댔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가 저질렀던 수많은 언어 논리의 오류-부적합한 권위에의 호소-들을 어떻게 덮어야 하나? 순간 낯이 확 붉어지고 말았다.


여기다 조지 버나드 쇼의 멋들어진 촌평을 더하자면... 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다.


음악회의 프로그램이나 cd 설명서의 음악평론의 한 예


“부드러운 현악기의 반주 속에서 잉글리쉬 혼이 낭만적인 제 1 주제를 노래한다. 전개부는 확장된다. 두 개의 혼이 약한 소리로 주제를 연주하고 나면  C# 단조로 바뀐다. 대조적인 주제의 짧게 변화하는 경과구가 대위법과 피치카토로 콘트라베이스를 지나 목관악기로 제 2주제를 이끌어간다.”


조지 버나드 쇼의 음악해설가적 햄릿 평론


“세익스피어는 흔한 도입부를 생략하고 부정사를 써서 주제를 직접 제시한다. 같은 분위기의 짧은 연결부분이 이어서 나오는데, 이 짧은 부분에서 우리는 ‘또는(or)'과 ’부정형(not)'를 만난다. 곧이어 나오는 반복(to be)의 의미는 바로 앞에 있는 ‘or not’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서 콜론(,)과 관계대명사에 악센트가 들어가는 지시된 명확한 구절에 이르는데, 이것은 우리를 첫 번째 마침표로 이끌어간다.”

 

정말이지 잉글리쉬 혼이 편성된 그 어떤 연주에 위의 평론을 갖다 붙여도 다 어울릴 것이다. 이건 음악을 감상하는데 정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난 이런 해설을 숱하게 접해왔고, 나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글을 써보고자 몇 번 끄적대기까지 했더랬다.


음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음악을 제대로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경지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난 부끄러움으로 한껏 붉어진 얼굴을 한 채 리히터의 음악수첩을 살며시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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