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a of fog

우리는 오로지 크게 뛰는 기이한 박동들만을 감지하고 있었는데, 이 두근거림은 우리들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토록 우리의 심장 소리는 우리가 느끼고 있던 감미로움엔 어울리지 않았다.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 중에서
매력적인 음악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귀를 잡아끄는 음악이 있고
또 하나는 귀를 잡아채는 음악이 있다.
어제 난 돼지 삽겹살을 구워먹고 있었다. 지글거리는 불판 위에서 자지러지듯이 비명을 불사르며 타는 저 고깃살!
머리에서 발끝까지 순 토종 한국인인 난 한국인 특유의 조바심을 눈에 띄게 드러내며, 불판 위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무젓가락을 쉴새없이 놀리며 노릇하게 구워지는 돼지 삽겹살에 감시의 눈길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노릇한 돼지고기 특유의 향취와 함께 입안에 향긋 퍼지는 마늘 냄새!
이--야아--하! 바로 이 맛이다. 이 맛이 나를 살찌우게 한다. 크흐흐으
감칠나면서도 쫄깃한 두툼한 육질과 함께 퍼져나오는 달콤한 육즙.
향긋한 생 쪽파와 알싸한 육쪽마늘. 이 조화의 영감을 그대도 아시는지.
거기다 두꺼비 한 마리가 끼어들면, 뭐 신들이 먹고 마신다는 불로장생의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라 할지라도 부러우랴!
한참을 나만의 향연을 만끽하다 얼마 전 구했던 Carlos Kleiber의 비공개 음원(1979년 12월 1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클라이버가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4번 실황)이 담긴 CD하나를 랙에 걸었다.
뭐니뭐니해도 클라이버의 진가라면 Orfeo에서 출시된 베토벤 4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바로 Live에 있지 않은가.
그에겐 방음재와 흡음재로 가득찬, 갑갑한 Studio의 무음실보다는 직접 관중과 호흡할 수 있는 현장이 그에게 더 맞다.
현장체질의 클라이버의 브람스 교향곡 4번의 LIVE
헐! 1악장부터가 왠지 심상치 않다.
마치 다카르 랠리(Dakar Rally)를 앞둔 Wrangler jeep의 육중한 4.0L 디젤엔진이 뿜어내는 강렬한 열기와 굉음이 느껴진다.
“이봐 카를로스씨. Allegro non troppo(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야. 벌써부터 질주하지 못해 안달하면 곤란하다구!
아직 랠리 초반이야. 파리 시내도 아직 못 빠져나왔는데...”
내 조바심과는 달리 노련한 老兵 카를로스는 아직 죽지 않았다.
브람스의 매력이라면 마치 통주저음(通奏低音)같은 두툼하면서도 육중한 현의 질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인데...
수많은 전장을 헤쳐나온 베테랑 카를로스는 능수능란하게 빈필의 현악기군을 주무른다.
밀고.. 당기고.. 끊어주고,
“뭐야! 이건 대체.. 입닥치고 듣기만 하라는 거냐. 그런거야?”
‘초반부터 오버페이스해서 나중에 퍼지는거 아냐?’하며 긴장하며 듣고 있던 나에게 3악장은 처절한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나에게 장렬하게 외친다.
“봤냐? 내가 바로 카를로스 클라이버다!”
헐... 이제 삽겹살은 물 건너갔다. 맛있는 삼겹살은 더 이상 내게 감흥을 줄 수 없다.
그 보다 더한 쾌락을 지금 맛보고 있기에, 수확 체감의 법칙은 클라이버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긴장감은 어느새 고양감으로 바뀌어 있었고, 난 끊임없이 귀를 기울였다.
그가 보여주는 강렬한 쾌락의 마력속으로...
“우아아하-- 째---진----다---아--!”
통렬한 Paris 시내질주(1악장)로 시작된 랠리는 알제리, 말리, 세네갈을 거쳐 이제 푸른 오아시스가 보이는 다카르에 마침내 도착했다.
17일간의 대장정을 거친 피곤하고 지친모습이 아니라 활기차며 생동감있는 당당한 챔피언의 모습처럼, 클라이버는 나에게 장엄하며 압도적인 코다를 내게 선사했다.
난 그때 박수 치며 환호하는 빈의 군중들과 함께 있었다.
벅찬 감동으로 불끈쥔 손으로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려 천장 위로 날려버리며...
PS> DG에서 originals를 발매할때 기념비적인 100번째 음반으로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브람스 교향곡 4번으로 결정한 건 우연이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그만큼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브람스 교향곡 4번의 경지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처럼 천의무봉의 것이라 할까요? 그만큼 압도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