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벨의 앉아있는 데몬
Tchaikovsky! 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난 그를 결코 살인자가 될 수 없었던 오이디푸스로 이해하고자 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처음 등장한 이 불행한 사나이는 피할 수 없는 저주받은 운명의 굴레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오이디푸스는 퉁퉁부은 발이란 뜻이다)이 빚어내는 숙명처럼 마음의 안식을 갖지 못한 채 영원히 세상을 떠돌아야만 했다.
차이코프스키 또한 그러했다. 다만 그가 오이디푸스와 달랐던 점은 그는 아버지를 결코 죽일 수 없었다는 것. 그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를 증오하기 보다는 스스로를 불사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이 달랐을 뿐이었다.
차이코프스키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열정과 냉정사이>라는 소설의 제목만큼 합당한 말을 찾기도 어렵다는 걸 느낀다. 그를 평생 사로잡고 있었던 고통의 근원도 그것이었고, 그의 위대한 예술을 낳게 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평행하게 달리는 이 두 선로(열정,냉정)는 언젠가는 만날 것 같은 희망으로 끝없이 내닫게 만들지만, 실상은 영원히 달려도 결코 만날 수 없는 숙명을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것이다.
그를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숙명의 굴레로 밀어놓은 그날(1850)의 아침으로 돌아가 보자.
1850년 어느덧 10살의 나이가 된 차이코프스키는 그가 살던 조그만 시골 마을 보트킨스크를 벗어나 당시 로마노프 왕조가 지배하던 러시아 제국의 수도 <성 페테르부르크>의 법률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간단한 입학 수속을 마친 후 사랑하는 어머니 알렉산드라가 타고 있던 마차가 막 그의 곁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어머니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던 차이코프스키를 만류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의 가녀린 어깨를 꽉 쥐고 있어야만 했다. 어머니가 타고 있는 마차가 그의 시야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자, 참을 수 없는 열정과 격정에 사로잡힌 어린 차이코프스키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타고 있는 마차의 휠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그의 이 유년시절의 기억은 영원히 그의 뇌리에 새겨졌고, 마차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고도 막을 수 없었던 어머니와의 이별은 4년 후 어머니가 콜레라로 사망함으로써 영원한 고별을 맞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유년기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성장기간 중 자연히 해소가 됨으로써 근친상간이라는 심리학적,도덕적 장벽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어머니가 또 다른 아이를 갖게 되어 자신이외의 다른 존재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하게 되거나 성장 기간중 자신이 아닌 아버지가 어머니를 소유하고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면, 그는 자신의 사랑이 어머니를 결코 독점할 수 없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의 경우처럼 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애정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소되지 못하고 억압되어, 심리적 근원으로 고착되어 버린 경우에는 심각한 정신 병리학적 증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가 평생 수치와 슬픔의 원천으로 느꼈던 그의 동성애적 기질과 조울증은 이런 유년기의 고통과 더불어 찾아온 것이었다. 몸을 던져서도 막을 수 없었던 어머니와의 이별은 그에게 <여성과의 사랑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고 결국 이별로 끝이 날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게끔 했다.
한 때 그 자신도 이 저주받은 숙명을 그를 열렬히 사모하던 음악원의 제자 ‘안토니나 이바노브 밀류코바’와의 결혼으로 타개해 보려 했으나 진실한 사랑이 아닌 도피처로 선택한 결혼은 9주만에 파국으로 끝이 났고, 계속되는 밀류코바의 성관계 요구(그에게 여성과의 성관계는 곧 어머니와의 성관계를 의미했고 이는 근친상간에 다름 아니었다)는 그를 쇼크 상태로 몰아가기에 충분했다. 결국 이는 페테르부르크의 강가에 몸을 던지는 자살시도로 이어진다. 비록 자살은 미수로 끝이 났지만 48시간가량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그 이후 계속되는 고열과 환각으로 그의 정신과 육체는 피폐해지고 만다.
결국 의사는 그에게 러시아를 떠나라고 충고했고, 그는 스위스의 Clarens로 휴양을 떠나게 된다. 밀류코바는 그 이후로도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서 3명의 아이를 낳는 등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고, 차이코프스키는 그녀와의 이혼을 원했으나, 그녀는 그와의 결혼 상태를 지속하기를 원했다.(이런 법률상의 결혼관계는 그녀가 정신질환으로 사망할때 까지 이어졌다)
비록 결혼은 파국을 맞이하였으나, 그는 결코 그녀를 비난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았다.
그건 그가 반드시 짊어져야만 했던 슬픔의 유산이었기 때문이리라.
혹자는 그가 이혼을 꺼려했던 것은 밀류코바가 그의 동성애 기질을 폭로하기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그것 때문은 아니라고 난 믿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차이코프스키의 평전에 나오는 짧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의 유년 시절 가정교사였던 Fanny Durbach가 증언한 바에 의하면 차이코프스키와 그의 형 니콜라이가 학업을 게을리 하자 따끔하게 훈계를 하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너희들의 교육을 위해 앉을 새도 없이 열심히 일하시는데 너희들은 그런 고마움을 조금도 모르고 학업을 게을리 해서야 되겠냐?”는 것이었다. 훈계가 끝이 나자 잠시 지루함에 몸을 떨었던 니콜라이는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띄우고 놀러가 버렸으나 차이코프스키는 하루종일 생각에 빠진 상태로 일찍 침실로 올라가 버렸다. 잠시후 가정교사 페니는 침실 안에서 들리는 차이코프스키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울음과 함께 차이코프스키는 그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작은 목소리로 신에게 고백하기 시작했고 곧 그의 두 눈은 고통의 눈물로 빨갛게 충혈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는 죄책감으로 한동안 괴로워했다고 한다.
또한 밀류코바와의 결혼 또한 그녀를 상처 입히지 않으려는 순수한 기사도 정신의 발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당시 차이코프스키는 푸쉬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감명깊게 읽은 터라 오네긴이 자신을 사모하는 순수한 처녀의 편지를 묵살함으로써 그녀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에 심히 공감하고 있던 터였다. 한없는 사랑을 상대에게 고백하나 끝내는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그녀의 심정이 아마 자신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느꼈을 터였다.)
하지만 그의 순수한 기사도 정신의 발휘는 종내는 비극으로 치닫고 말아 결국 두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고, 여성으로의 애정을 원했으나 열렬히 사모했던 그에게서는 결코 얻지 못했던 밀류코바는 그 후 무절제한 생활과 심적 고통으로 야기된 정신질환으로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차이코프스키는 제네바 호수 근처의 작은 도시 Clarens에서 휴양을 갖던 차에 그의 음악을 사모하던 러시아의 부유한 미망인 ‘나데츠나 폰 메크’ 부인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라는 다소 기묘한 조건으로 그에게 매년 6000루블의 후원금을 약속했고, 그는 이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폰 메크 부인과의 만남으로 경제적인 독립을 하게 되었고, 비로소 예술에의 열정을 음악에만 쏟아 부을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 폰 메크 부인은 그의 음악에의 의견, 믿음, 인상, 희망, 절망, 열정을 숨기지 않고 고백할 수 있는 해방구와 같은 존재였고, 이는 바로 그에게 <상실된 어머니의 존재>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폰 메크 부인은 차이코프스키보다 9살이나 연상이었고 11명의 자녀를 갖고 있는 푸근한 어머니 같은 여자였다. 또한 이성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그에게 정신적인 안도감을 가져다주었고, 이는 곧 음악으로의 열정으로 나타나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교향곡 4번을 비롯해 바이올린 협주곡 등이 바로 이 클라렌스에서 쓰여졌던 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op.35는 이런 상황에서 탄생했다.
죽음까지도 생각하게 만들었던 불행했던 결혼 생활과 그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지만 결코 벗어나지 못했던 숙명을 감싸안은 채 바이올린의 현은 노래해야 했다. 그의 고통과 의지를 그리고 미래에의 희망을..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관을 살펴보면
제 1악장: Allegro moderato-Cadenza
소나타 형식으로 제시부,전개부,종결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오케스트라 서주가 앞으로의 주제를 암시한다. 그런데 이 1주제가 놀랍기 그지없다. 이 곡이 작곡될 당시(1878년) 그는 죽음까지 결심했을 정도의 극도의 심적 고통을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귀족적이며 당당하기까지한 오케스트라 서주를 보여주는데, 마치 삶을 향한 그의 확고하고도 강인한 의지를 표현하는듯하다. 오케스트라 서주에 이어 곧 바이올린 독주에 의한 전개부가 펼쳐지는데 정말 화려하고 현란하기 그지없는 바이올린 테크닉의 향연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독주자와 함께 펼쳐지는 강렬한 오케스트라 Tutti는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압도적인 폭발력을 보여주는데, 독주자가 반주없이 즉흥적으로 펼치는 Cadenza에선 마치 자신의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바이올린 현에 담아 나즈막하게 그의 고통을 토로하는듯하다. 간간히 미묘하게 떨리는 바이올린의 Vibrato는 마치 심연에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참아 넘기려는 의연함으로 나타나 더욱 깊은 감동을 우려낸다. 그리고 종결부에선 다시한번 주제가 반복되고 절정으로 치달으며 끝을 맺는다.
제 2악장: Andante-Canzonetta
A-B-A형식의 3부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悲歌이고 영혼의 통곡이다. 1악장에서 애써 삼키려고만 했던 울음은 끝내 참아내지 못했고 조금씩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슬픔은 어느새 비탄의 강이 되어버려 곡 전반에 걸쳐 만연히 흐르게 된다.
제 3악장: Allegro Vivacissimo-Finale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주제는 2박자의 격렬한 러시아 민속 무곡 트레파크의 음율로 되어있으며 제 2주제는 러시아 농민의 악곡 가락으로 구성되어 매우 활기차고 발랄한 바이올린 음색을 들려준다. 마치 미래에의 희망과 삶의 환희를 암시하는 것처럼...
제 3악장은 2악장과는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은 듯 급작스럽게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차이코프스키의 철저하리만치 진중한 심리적 흐름을 따른 작곡법에 무관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시 그를 지배하는 정서는 자신의 슬픔을 인내하고 이겨나가려는 의지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다음엔 어느새 지워버릴 수 없는 낙인이 되어버린 차이코프스키의 내적 고통, 마지막으로 미래를 향한 작은 희망이 그 뒤를 따랐다. 연주시간을 보더라도 1악장의 대략 18-19분대, 2악장이 9분대, 3악장이 6-7분대이다. 물론 독주자의 즉흥 연주가 이루어지는 카덴짜로 인해 1악장이 가장 길다고는 하지만 작곡 당시 차이코프스키는 카덴짜 부분도 작곡해 두었으므로 이것으로 인해 1악장이 가장 길어졌다고는 보기 힘들고, 그의 작곡의도가 1악장을 가장 염두에 두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그를 엄습하고 있었으나 이를 반드시 이겨내야겠다라는 그의 강인하고도 확고한 의지가 그의 정서 밑바닥에 유유히 흘렀기 때문이었고, 3악장의 급작스러운 전개 또한 인간의 심적 변화를 유심있게 살펴보았다면 전혀 당황스럽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고통은 단계를 밟아 나가듯이 서서히 그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심적 동기나 의도가 있다면 인간은 그 고통이 언제 있었냐라는 듯이 그 고통을 심연 깊숙이 숨겨버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록 슬픔의 고통은 낙인이 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망정 잠시 잊어버릴 수는 있는 것이기에...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OP.35!
몸을 내던져서도 막을 수 없었던 어머니와의 영원한 고별!
받아들여지지도 이해될 수도 없었던 사랑을 해야 했던 그는 아버지 또한 너무나 사랑했기에 증오할 수 없었다.
그저 두 눈을 찔러버린 채 영혼의 안식을 찾아 영원히 세상을 떠돌아야 했던 오이디푸스처럼 그 또한 안식을 찾아 세상을 한없이 여행해야만 했다.(차이코프스키의 만년은 끝없는 여행으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그것은 연주여행을 겸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를 한 곳에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던 심적 불안감도 크게 한 몫 했으리라는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동성애는 매우 심각한 범죄행위였고 그 또한 제어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수치감과 분노로 얼룩져 있었다.-이로 인해 차이코프스키가 콜레라가 아닌 동성애로 인한 강요된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설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나에게 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가 사랑해 마지 않았던 어머니께 바치는 고해성사 처럼 들린다.
마지막으로 Swinburne의 작별이란 시로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작별
우리 일어나 작별하세. 그녀는 모를 것이니.
큰 바람인 듯 바다로 가세.
모래와 물거품 온통 흩날리며. 여기 있는들 무슨 소용이랴?
아무 소용 없네, 이 모든 것들이 그러하고,
온 세상이 눈물처럼 쓰라리거늘.
이것들이 그러함을, 그대 아무리 보여주려 애써도,
그녀는 알지 못하네.
그러니 두려워 말고 함께 가세
노래 시간은 끝났으니
이제 침묵을 지키세
지난 모든 일도, 소중한 일도 끝났으니,
우리가 그녀늘 사랑하는 것처럼 그녀는 그대들도 나도 사랑하지 않네.
정녕, 우리가 그녀의 귀에 대고 천사처럼 노래해도,
그녀는 듣지 않네.
그러니 우리 가세, 가세, 그녀는 보지 않을 것이니,
모두 한 번 더 노래하세. 분명 그녀도,
그녀도, 지난 날의 추억을 떠올리고,
우리를 살짝 돌아보며, 한숨 지을 것이니. 그러나 우리,
가버리네, 사라지네, 그 곳에 있었던 적도 없는 듯,
아아 보는 이들 모두 나를 불쌍히 여겨도,
그녀는 보지 않네.
맺음말: 아무래도 차이코프스키의 비애를 제대로 소화해내기 위해선 단순히 연주자의 기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픔은 겪어본 사람만이 그 아픔을 이해하는 법!
레오니드 코간이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나에게 더할 수 없는 최고의
얀주다!
코간에 대한건 저번에 쓴 글에 언급했으니 덧붙일 말은 없다고 본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차이코프스키가 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였던 아우어는 기교적으로 불가능 하다고 단정하여 사실상 이 협주곡은 연주되어지지 못했
다.
그런데 아우어의 제자였던 하이페츠와 밀슈타인이 이 협주곡으로 명성을 쌓게 되었으니니 참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