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느와르
La Fille aux Cheveux de Lin


4월의 어느 화창한 봄날...

회색빛 아스팔트의 도로위에서 난 파도처럼 쉴새없이 밀려드는 짜증을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난 운전 중에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하는 편이지만 그 날은 나도 여지없이 그 부류에 섞여 있었다. 러시아워 시간도 아닌 한 낮! 고통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면 견딜만한 것이리라.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루한 기다림의 고통은 나를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몰아갔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제어하고자 가만히 혼자 숫자를 세어보았으나 그건 전혀 해결책이 되어 주지 못하고, 어느 순간 헤아리던 숫자까지 까먹어버리자 그건 나에게 극약처방으로 나타났다. 끔찍하리만치 계속되는 욕설의 퍼레이드! 나 자신도 내가 그렇게 많은 욕설을 기억하고 있다는데 놀라고 말았다. 경상도,전라도 사투리,영어,일본어,중국어,, 심지어는 스페인어 욕설까지!


한참을 떠들어대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 순간 난 아직 짙푸르지는 않은 연한 초록빛의 플라타너스 잎새 사이로 반짝이는 황금빛 물결을 보았다. 햇살이 아직은 연약한 플라타너스의 잎새를 통과해 마치 에메랄드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찰나에 벌어진 자연의 기적에 난 넋이 나가고 말았다. 한참동안 멍하니 지켜보던 난 뒷 차 운전사의 욕설에 비로소 자연이 빚어내는 장엄한 침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전쟁의 참호 속에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는 없다라고 말했다지만 그 날 난 자동차의 시트 속에서 신의 존재를 느꼈다. 그 후 난 일순간의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천박하리만치 저열한 내 인격을 고스란히 드러낸 데에 수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유치한 일이었지만 그 순간 난 기도를 올리기도 했던 것이다.

“오 신이시여! 단 몇 분간을 참지 못하고 당신을 언급하여 욕한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그 때 난 God damn!이란 욕도 했었다)”

어찌됐든 그 다음부턴 탄탄대로였다. 무사히 난 집으로 돌아왔고, 그 후로도 자연이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신비한 황금빛 감동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 손은 무심코 오디오로 손을 뻗히게 되었고 손에 잡힌건 드뷔시의 전주곡집이었다.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지 않았다. 모든 것은 다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용기가 솟아오를땐 그건 전쟁의 신 마르스가 자신에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었고, 사랑의 열정이 넘쳐흐를 땐 그건 비너스가 자신에게 사랑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내가 드뷔시의 전주곡집을 손에 든 것도 그런 영감이 아니었을까 한다.(가끔 황당한 상상도 재미있다)


역시나 그건 탁월한 선택이었고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아가씨>는 내가 한 낮의 아스팔트에서 느꼈던 그 감동과 똑같은 감동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아마빛이라... 난 지중해 사람도 아니고 지중해 음식도 하나 할 줄 모르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이라 실제로 아마유를 본 적은 없다. 다만 보았다면 백과사전에 얼핏나온 작은 사진을 잠시 보았을 뿐이다. 그 때의 사진을 지금 가만히 떠올려보면 그건 금빛에 가까운 밝은 갈색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아마빛 머리를 가진 아가씨라... 너무 아름다울 것 같았다. 잔인하리만큼 아름다운 4월의 봄날과 아마빛 머리의 아가씨라... 르느와르의 그림이 떠오른다.


다들 아시다시피 드뷔시는 음악에 색조를 입히고자 시도한 인상주의파 작곡가이다. 쇤베르크와 함께 20세기 전반 음악사에 가장 독보적인 존재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기존의 7음계나 9음계의 전통적 작곡기법에서 벗어나 온음음계와 동양적인 5음계를 주로 사용했고 화성과 화음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란 영화를 보면 데일 터너(덱스터 고든이 연기했으나 사실은 재즈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의 이야기이다)가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면 찰리 파커와 드뷔시라는 말을 읊조린다.


그 때까지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지..어느날 찰리 파커(재즈사에서 전설적인 인물이다)가 하고 있었고 나도 곧 그걸 하게 되었지..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Bebop이라고 부르더군.. (잠시 싱긋이 웃으며) 그건 드뷔시가 가장 처음에 했다고..”


드뷔시의 음악의 총화라면 역시나 피아노 음악이다. 그 자신도 한 때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했었고 가장 자신있어 하던 것도 피아노였다. 전주곡집 또한 피아노의 기술을 훈련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작곡되었고 전주곡 1집은 8개의 손가락 터치를 집중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전주곡 2집은 페달링을 위시한 음색을 훈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작곡되었다. 그 자신은 3부작(전주,간주,종주)으로 마무리 지을려고 했으나 전주곡집만으로도 자신이 표현하고 했던 모든 것을 완성해내었다고 믿어서인지 전주곡이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사실 드뷔시의 작품은 듣기에도 까다로운 음악이지만 실제 연주에 있어서도 상당한 기교를 필요로 하는 매우 까다로운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속적인 페달링을 유지하면서 섬세하고 영롱한 음색을 창조해 내는 작업은 매우 힘이 드는게 사실이다. 드뷔시 자신도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는데 있어 <페달링의 기술은 사람이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자신의 악보를 출판했던 Jacques Durand에게 거듭 강조했을 정도로 페달링의 기교의 중요성을 역설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실제 연주해야만 하는 피아니스트의 고충은 전혀 알지 못하니까 그저 드뷔시가 창조해낸 아름다운 음색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할 따름이다. 드뷔시의 음악에는 모두 표제가 달려있는데 전주곡집 또한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드뷔시는 곡을 완성하고 난 이후에 표제를 달았다고 하니까 그 자신이 갖고 있던 실제 이미지를 의도해서 작곡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자신 또한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의 음악이 본능적이고,비 이성적이며 단지 충동만이 있다라고 했으니까 완성된 작품을 보고 즉흥적으로 표제를 달았다고 난 믿고 있다.(아니라고 한다면 뭐 반론할 근거를 갖고 있는건 아니다)


표제와는 상관없이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분명 드뷔시가 고심해서 지은 표제일터니 그 표제가 상징하는 이미지를 연상하며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더 좋을 듯 싶다. 아마빛 머리의 아가씨의 경우는 프랑스의 고답파 시인 <르콩트 드 릴>의 동명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그 표제를 무시하고 그냥 듣는건... 좀 그렇지 않을까?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아가씨를 듣고 르콩트 드 릴이 썼다는 동명의 시를 구해보고자 열심히 뛰어다녔으나(?) 구하진 못했다.

대신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 시로 대신 해본다. 아마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아가씨를 감상하는데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을 듯 싶다.


금 빛은 오래 머물 수 없는 것


자연의 첫 푸름은 금 빛입니다.

오래 머물기 가장 어려운 색깔이지요


자연의 첫 잎은 꽃 잎입니다.

하지만 한 시간을 미처 머물지 못합니다.

꽃은 곧 잎으로 바뀌니까요

 

낙원은 슬픔으로 가라앉고

새벽은 낮으로 퇴색해 버리는 것!


금 빛은 오래 머물 수 없는 것이지요


<아마빛 머리의 아가씨>는 드뷔시의 곡 중에서 <달빛>과 더불어 가장 멜로디 라인이 아름다운 곡 중 하나이다. 매우 청초하고 아름다운 음색과 멜로디를 갖고 있지만 조용히 듣다 보면 웬지 모를 슬픔을 내재하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다. 금 빛이 오래 머물 수 없는 것처럼 아마빛 머리의 아가씨의 아름다움도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그 모든 것은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청춘,사랑,열정,행복,기쁨 그 어느 것도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 수 없다. 영원히 흘러가는 시간의 강 속에서는  모든 것이 다 퇴색되어 버리고 만다. 그것이 우리 인간만이 갖고 있는 슬픔이 아닐까 한다.

유한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존재가 슬픔을 낳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둘이서 같은 침대에서 잔다고 해도 눈을 감는 건 결국 혼자니까..”


함께 있어도 고독해지고 슬퍼지는 것. 우리의 존재자체가 슬픔이기 때문이리라...



ps>드뷔시의 전주곡집에는 꽤나 훌룡한 연주가 많다고 보는데 나한테 있어서 결정반은 아직 없다

     기제킹,미켈란젤리.굴다 모두 다 좋은 연주이지만 약간씩의 미스터치도 있고 미스터치를 빼고서

     라도 얼마간의 아쉬움이 남는 연주들이다.

    만약 버드파웰이 전주곡집을 녹음했다라면... 그건 나에게는 최고의 드뷔시 전주곡집이 되었을텐

    데... 정말 아쉽다.

    재즈 피아니스트를 은연중에 무시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호로비츠가 재즈 피아니스트인 아트 테

   이텀의 연주를 듣고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라고 극찬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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