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20세기를 어떻게 추억해야 할까? 아마 20세기 처럼 많은 전쟁과 비극이 일어난 100년은 아마 없을 터이다. 1차 세계대전에 이은 스페인 내전 발발,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 가까이는 걸프전에 이은 이라크 전 까지 수세기 동안 수많은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보다 이 100년 사이에 벌어진 참사들로 우린 더 많은 생명들을 잃었다.

20세기는 인류가 대지에 두 발로 선 이래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잔혹의 역사로 기억될 것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비극의 역사에도 유난히 빛을 발하는 4명의 사람이 있었다.

인류의 눈을 대지가 아닌 하늘로 돌린 아인쉬타인, 철학의 종언을 고했던 비트겐슈타인, 단 한사람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천상의 소리는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걸 들려준 클라라 하스킬!  난 20세기를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그 참혹했던 피의 역사보다는 이 4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1960년 12월 7일 브뤼셀의 한 역에서 등이 굽은 곱추 노파 한 사람이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숨졌다. 그녀의 외모는 추하기 이를때없는 한낱 곱추 노파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숭고한 영혼을 지닌 인간이었다. 그녀의 이 어이없고 쓸쓸한 죽음은 그녀가 평생 등에 짊어지고 있었던 불행이라는 무거운 짐을 드디어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의미했다. 또한 죽음은 그녀를 한평생 가혹하게 가두어 두었던 좁고 갑갑한 육체라는 감옥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질병과 싸워 위대한 창작을 쏟아 놓은 예는 굳이 클라라 하스킬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많이 있다.  반신불수를 극복하고 메시아를 잉태한 헨델, 청력상실을 딛고 환희의 송가를 부른 베토벤, 고독과 함께 찾아온 매독의 고통 슈베르트,끊임없는 정신질환과 싸워야만 했던 반 고흐,..... 가까이는 오토 클렘페러와 자클린 뒤프레까지..

하지만 여타의 다른 예술가와는 달리 클라라 하스킬에게 불행은 너무나 급작스럽고 빨리 찾아왔다. 그녀가 겨우 18세 되던 1913년 세포 경화증(Sclerosis)이라는 당시에는 병명 조차 알려지지 않은  병이 그녀를 엄습했다. 이 병은 면역질환의 일종으로 세포끼리 붙어버려 뼈와 근육이 붙거나 경화되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질병이었다.  이 병은 그녀에게 모든 걸 앗아갔다.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청춘,사랑 그 모든 걸 강탈해버렸지만 그녀에게 유일하게 빼앗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음악이었다. 이 가혹한 天刑의 질병도 그녀에게 음악만은 가져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음악이 그녀가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버팀목이 되었다.

 

4년간 온 몸에 깁스를 한채 병상 침대에서 누워 있어야만 했던 클라라 하스킬은 드디어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동안의 긴 투병으로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었고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등은 어느새 추한 곱추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라는 희망으로 병마를 잠시나마 이겨낼 수 있었고 다시 연주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닥친 불행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이은 나치의 파리입성! 유태인이었던 클라라 하스킬은 다시 기나긴 도피생활을 준비해야만 했다. 일찍 부모를 여윈 하스킬은 단 혼자의 힘으로 성치 않은 자신의 육체를 이끌어 세워 암울한 도피 생활을 해야했고 그런 그녀의 유일한 대화상대로 남은건 그녀가 키우던 고양이 한마리였다. 도피생활로 인한 극심한 긴장과 공포는 결국 뇌졸증을 불러왔고 유리와도 같았던 그녀의 육체는 다시 깨어지고 말았다. 신의 시기심에서 출발한 이 가혹한 징벌에 자신도 죄책감을 느꼈는지 하스킬에게 구원의 손길을 잠시 내려주웠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었던 하스킬은 우연히 하스킬의 소식을 들은 유태인 의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죽음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다시 음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예전의 동지는 다시 적으로 돌아섰다. 동/서 진영으로 갈라져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시작하였고 서로는 자신의 체제의 우월성을 끊임없이 선전하기 시작했다. 코간편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소련 피아니스트의 대모라 불리던 타티아나 니콜라예바가 처음으로 모차르트의 도시 <잘츠부르크>를 방문하게 되었다. 니콜라예바는 떠나기전 소련의 음악가들로부터 카라얀을 보고 오라는 밀명아닌 밀명을 받게 된다.(서방세계에는 제 2의 토스카니니라 불리는 카라얀이라는 젊은 지휘자가 있으니 그의 연주를 반드시 듣고 오라는 것이었다.) 마침 니콜라예바가 방문했던 시기에 카라얀의 모차르트 연주회가 잘츠부르크에서 열렸고 니콜라예바는 그 연주회에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클라라 하스킬이라는 보잘것없고 조그마한 외모의 곱추 노파를 만나게 된다. 그 연주회가 끝난후 그녀는 소련으로 돌아가 이렇게 토로했다.

 

“그녀의 몸은 뒤틀려 있었고, 잿빛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마치 마녀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카라얀의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건반으로 손을 옮기자 곧 나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실로 내가 평생 동안 들은 최고의 모차르트 전문가였다. 그녀의 마력은 너무나 강력해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다시 울려퍼질 땐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풍부하면서도 자연스런 음이 오케스트라로 전달되어 지휘자마저 마술에 걸려 있었다. 그녀 덕택에 그들 모두는 음악적 진실을 접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이것은 내가 경험한 최고의 콘서트가 되었다.”

 

오늘 우리는 모차르트가 직접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이 어땠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죽은지 200년이 훨씬 지났고 음반하나 남겨 놓지 않았다 ^^) H.G. 웰즈가 쓴 소설의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은한 그의 연주가 어땠는지는 우린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군가 모차르트가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이 듣고 싶다고 강짜를 부린다면 클라라 하스킬의 음반을 손에 쥐어주어라. 그곳에 모차르트가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의심할 바 없는 천재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클라라 하스킬 또한 그에 못지 않다. 모차르트가 5살때 처음으로 소곡을 작곡하여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였다면 그녀는 6살때 처음 들은 모차르트 소나타를 악보도 보지 않고 그대로 쳐 냄으로써  그녀의 천재성을 입증했다. 이른바 절대음감의 소유자였다. 뿐만 아니라 그 곡을 다른 조로 순식간에 편곡하여 다시 쳐냈다고 하니 이 정도 쯤 되면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가 없다.(이 외에도 그녀의 천재성에 대한 일화는 굉장히 많이 있다. 스위스에서 연주하기로 한 호로비츠가 제때에 도착하지 못하자 안달이 난 지휘자 헤르만 세르헨이 그녀에게 대역을 부탁하자 그녀는 연주하기로 한 리스트 협주곡 제 1번의 악보를 하루만에 암기해 버렸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는 피아노 파트만 암기한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총보까지 모두 암기해 버려 세르헨을 경악시켰다) 

모차르트가 그의 치기어린 천진난만함과 순진함으로 명롱하고 청초한 음악을 창조해 내었다면 클라라 하스킬은 그 고된 불행과 고난 속에서도 결코 잃지않은 영혼의 순결성으로 모차르트가 만들어낸 천상의 음악이 실재한다는 것을 그 청명하고 순수한 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를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들은 평생 그녀를 경외했다. 그건 그녀의 뛰어난 천재성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숭고한 인격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모든 청중이 갈채를 보내며 연주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직후에도 겸손함과 수줍음으로써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청소부나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청소하는 것 외엔 무엇 하나 몸에 익힌 게 없으니…”

얼마전 내가 쓴 글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연주자는 청중으로부터 마땅히 존중 받아야할 존재이지만 존경 받아야할 존재는 아니라고 연주자로써의 존경은 청중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난 마땅히 클라라 하스킬을 존중이 아닌 존경으로 대한다. 아니 그건 경외라는 말이 더 적확한 표현이리라..

 

브뤼셀의 기차역!

꿈에 부푼 27살의 청년 바이올리니스트 코간은 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 브뤼셀 역에 내렸고 조용하고 수줍음 많던 66살의 노파 하스킬은 새로운 공연을 위해 브뤼셀 역에 내렸다. 코간과 하스킬이 거쳐간 그 기차역은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며 만남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으리라.

 

PS> 전 기독교 신자는 아닙니다만 클라라 하스킬의 생애를 죽 지켜보면 성경의 욥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인지 욥기의 한 구절을 올립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

참조: 바람구두님의 문화망명지의 클라라 하스킬 편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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