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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미시마 유키오! 그를 설명함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극우주의자며 탐미주의자.. 우리에겐 극우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낯설진 않지만 (최근 독도 사건도 있고 해서) 하지만 탐미주의자라는 수식어는 그다지 익숙치 않다.
탐미주의자! 美를 추구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뜻인데 그가 금각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미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삶에 대한 삶을 살아가고자하는 의지에 대한 찬미가 아니었을까한다.
일본인하면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그만큼 일본인의 정서에는 죽음에 대한 미학이 짙게 깔려있다는 말인데 하지만 최근 일본인의 문화상품을 지켜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안노 히데야키의 ANIMATION에는 삶에의 의지를 강력히 주창하고 있으니까 .. 그들의 가치관과 정서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간 것일까?
금각사에서는 미시마 유키오의 이런 가치관이 잘 나타나있는데 주인공은 어릴때부터 아버지로로부터 금각사의 아름다움에 대해 듣고 금각사의 절대적인 미를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 그 자신은 말더듬이에다가 생김새또한 추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그는 그를 둘러싼 외부세계와는 철저히 담을 쌓고 그 자신의 고독에만 침잠해 들어간다. 그러다 금각사의 아름다움에 닿을 수 없다면 그것을 철저히 파괴해버리고자 하는 욕망을 품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려 한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끝이나고 문득 살아야지 살아가야지라는 의지를 내보이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이는 실제의 사건과는 다르다. 실제의 사건의 주인공은 감옥에서 숨을 거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의 결말은 어디까지나 미시마 유키오 자신의 창작이며 그가 소설내내 말하고자 했던 주제를 상기시키는 설정이다. (작가 그자신은 자위대의 궐기를 주장하며 할복으로 삶을 마감함으로써 작품내의 주제와는 상이한 결말을 맞고 말았지만... )
금각사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일순 평범해보이지만 그 전개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치밀한 심리묘사와 때론 비참하고 추악하기까지한 여러 배경적 장치들을 몇마디 문장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켜버리는 작가의 역량은 정말 놀랍기 까지 하다.(어머니를 증오하게 되는 부분은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다만 번역에는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번역자 자신이 밝힌바와 같이 미시마 유키오는 뛰어나고 유려한 문체로 유명한 작가라고 하는데 번역상에선 그러한 탁월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소설의 설정상 불교용어가 무척 많이 나오는데 전혀 주가 달려있지 않다. 그런것은 출판에 앞서 좀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