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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 Evans - Conversations With Myself & Further Concersations With Myself - The Art Of Duo
빌 에반스 (Bill Evans) 연주 / 유니버설(Universal)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지금 황홀한 우리 마음위에 밤은 내리고 있다.
written by Andre Gide
빌 에반스의 Conversations with myself를 듣고 있노라면,
jazz가 밤의 음악이라고 말했던 스탄 겟츠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금방 깨닫게 된다.
밤의 정적 속에서 조용히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소리의 파문(波紋)이 나와 공명하는 그 순간,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파문이 일으킨 틈새를 비집고 나와 텅 빈 공간을 하나씩 잠식해 간다. 그건 분노도 아니며, 슬픔도 아니다. 그건 그냥 새하얀 한숨 같은 것이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조셉 콘래드의 말을 빌리자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가닥의 연기를 뿜으면서 꿋꿋이 항해하고 있던 외로운 배는
마치 하늘에서 무자비하게 던진 불길에 그을린 듯이 넓고 환한 바다에서
검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었다.
날마다 밤이 축복처럼 배위에 내렸다.(Lord Jim 중에서)
그의 음악은 이처럼 고독한 밤바다를 항해하고 있던 나에게 축복처럼 내렸던 것이다.
Conversations with myself의 첫 장을 넘기면, 에반스가 그려놓은 밤의 정경이 펼쳐진다.
‘Round About Midnight!
그가 그려놓은 밤은 적막하면서도 따뜻한 눈이 내린, 겨울 숲의 밤이다.
이는 전적으로 스타인웨이(Steinway) 피아노와 웹스터 홀의 목재마감으로 인한 소리의 반향에 기인한 것으로, 빌 에반스는 이번 앨범을 위해 특별히 글렌 굴드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선택했다.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에 대한 획기적인 해석으로 잘 알려진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빌 에반스의 투명하고도 명료한 음색을 너무나도 좋아했다고 한다. 섬세하면서도 영롱한 소리가 매력이었던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그런 그의 요구에 적합한 악기였고, 굴드 역시 1960년이래로 줄곧 스타인웨이 피아노만을 연주해 왔었다. 글렌 굴드와 빌 에반스. 이 두 사람은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섬세하면서도 다소 단단한(solid) 음색에서도 많이 닮았지만, 관중에 대해 철저히 무심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에 침잠하는 듯한 연주 자세에서도 정말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음반의 곡목을 살펴보면, 에반스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셀로니우스 몽크와의 대화도 여러 번에 걸쳐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Round About Midnight’뿐만 아니라 ‘Blue Monk’, ‘Bemsha Swing’등 몽크의 여러 자작곡들을 만날 수 있다.
“음악에 있어 절정의 순간은 음과 음사이의 짧은 정적에 있다.”라는 음악적 소신을 밝혔던 몽크와 마찬가지처럼 에반스는 그의 음악의 절정을 음형이 일으키는 파문과 파문사이에 던져 놓았다. 정적 속에서 툭툭 깨어져 나가는 소리의 파문은, 깊은 밤 소리없이 내리는 하얀 눈송이처럼 조용히 쌓여가는 것으로 마지막 음이 피아노를 떠나는 그 순간 가만히 한숨짓게 만드는 것이다.
그가 Stella by Starlight의 연주를 막 끝내자 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냉장고로 가서 얼마 전 사 놓았던 카르멘 리저브를 한 병 깠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02788113280065.jpg)
차갑고 단단하며 오크향이 감도는 맛이 눈 내린 겨울 숲 같았다.
wine comes in at mouth 와인은 입으로 마시며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사랑은 눈으로 마신다.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he truth 그것이 우리가 알아야할 유일한 진실!
before we grow old and die 우리가 늙어 죽기전에
l lift the glass to my mouth 나는 입에다 술잔을 들고
l look at you, and i sigh. 그대를 바라보며, 한숨 짓노라.
예이츠의 싯구를 읊어보며 난 풍류에 흠뻑 젖어본다.
그날 밤 나에게 밤은 축복으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