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livion>
위대한 기지는 광기에 아주 가깝고
그들의 경계를 가르는 엷은 칸막이만 있을 뿐이다
written by Alexander Pope
지난 밤, 나는 지독한 무거움에 시달려야만 했다.
자신의 무게에 짓눌려져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타인을 사랑한다.’라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를.
나 자신의 무게도 이토록 힘겹고 고통스러울진대, 타인의 아픔과 상처까지도 함께 껴안아야만 하는 사랑의 무게는 얼마나 힘겨운 것일까?
낯모르는 타인에게 선뜻 사랑한다며 껴안는 무리들을 그래서 난 신뢰할 수 없다. 그들의 사랑은 분명 거짓임이 분명하기에.
무거움의 늪에 빠져있는 동안, 이것저것 내가 할 수 있는 처방은 모조리 해봤지만 결국 짜증만 더 늘 뿐이었다.
그럴 때면 차라리 쥐죽은 듯 가만히 침묵하며 견뎌야 한다. 관조반야(觀照般若)하면서...
브로크벡 마운틴의 마지막 글귀처럼 고칠 수 없다면 견뎌야 하는 법이다.
짜증이 조금 가신 후에야 가까스로 Bud Powell의 The Genius of bud powell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난 파웰의 음악을 좋아한다기보다는 그의 이름 앞에 늘 붙어다니곤하는 “천재”라는 수식어를 더 좋아했다.
천재라... 그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평범이라는 말은 진부하고 따분하게만 들리지만, 천재라는 말은 내뱉는 그 순간부터 스스로 환히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다 ‘요절했다.’라는 짧은 부언이 더해지기까지 하면, 난 지랄발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력(重力)에 사로잡혀 밤하늘에 스스로를 못 박아버린 수많은 별보다, 은하를 가로지르며 스스로를 불태우며,
소진해가는 한 떨기 유성이 더 아름답지 아니한가?
천재는 바로 그 유성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천재성에 관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중 하나는 쇼펜하우어의 것인데, 조금 인용해보면
"천재의 본질은 바로 그러한 월등한 관조의 능력에 있다.
그런데 관조는 자기 자신과 그의 관계들의 완전한 망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천재성이란 다름 아닌 가장 완전한 객관성, 즉 자기 자신 곧 의지로 향하는 정신의 주관적 방향과는 다른 정신의 객관적 방향이다. 따라서 천재성이란 순전히 직관적으로 행동하고, 직관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이며, 본래 의지에 봉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인식을 이러한 봉사로부터 떼어놓는 능력, 즉 자기의 관심, 자기의 의욕, 자기의 목적을 전연 안중에 두지 않고, 자기 자신을 한 순간에 완전히 포기하고, 순수 인식 주관으로서 분명한 세계의 눈 그 자체로 되는 능력인 것이다."
버드 파웰은 바로 그런 천재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Tatum에서 테크닉이 나왔다면, Powell에게선 스타일이 나왔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는 아주 독창적인 모던 재즈 피아노기법을 완성해 내었다. 왼손이 베이스 음계와 코드를 짚어나가는 동안, 오른손은 쉬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현란한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읊어나간다.
그런 그의 음악적 특징은 BACH의 음악과도 유사한데, 통주저음이 갖는 즉흥성과 바소오스티나토(basso ostinato)양식의 화려한 변주성이 왼손과 오른손에서 동시에 펼쳐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거기다 걷잡을 수 없이 내지르며 질주하는 스피드의 향연이란!
바흐의 클래시컬한 정격성과 변주성, 거기다 불타오르는 ROCK적 열정의 혼합체. 그것이 바로 버드 파웰이다.
그의 음반을 듣고 있노라면, 당신은 어쩌면 한결같은 그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잡것들아! 할 수 있음 나를 한번 따라와 봐. 우하하하!”
The Genius of bud powell에도 그런 그의 목소리가 담뿍 담겨져 있는데, 진땀 꽤나 흘렀을 것이 분명한 리치의 드럼과 레이 브라운의 베이스는 파웰의 스피드를 따라가느라 분주하기 그지없지만, 자기 파멸적인 독특한 정신세계와, 코를 찌를 듯이 오만하며 거만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파웰은 그런 그들을 전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어느새 자기만의 세계에 흠뻑 빠져버린다.
자기 자신을 제외한 그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그는 어느새 망각해 버리고, 재즈 세계의 눈이 되 버린 것이다.
John Stevens의 말처럼 그는 늘 피아노가 완전히 지쳐 나가떨어질 때가 되어서야 겨우 피아노를 놓아주곤 했다.
“이제 내가 하고픈 말은 다 했으니, 그담은 니들이 알아서 해.”
분명 그의 음악에는 재즈 앙상블의 우아한 맛은 떨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엔 삶이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소진해 가는 눈부신 유성의 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