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식탁이 사라졌어요!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피터 H. 레이놀즈 지음, 류재향 옮김 / 우리학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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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레이놀즈 책으로, 이 작가의 책은 [점], [느끼는 대로]를 읽었다. 이 책이 나올 무렵부터 이 책을 읽고 싶었는데 시간을 잘 내지 못했다. <알쓸신잡2>에서 유현준 교수님이 하셨던 말이었던 것 같은데, 고대 가족들은 불을 중심으로 생활했다고 한다. 그게 현대로 오면서, 불이 TV가 되었다고 하셨더랬다.-부엌의 ‘불‘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가족이 어디에 모이는지 생각해봤을 때 TV 앞이라고. 그리고 이제는 TV에서 벗어나 게임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마음을 앗아가니, 가족이 얼굴을 마주보고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작가는 이 상황을 식탁이 점점 줄어들어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내고, 급기야 식탁이 사라져서 주인공이 가족과 함께 식탁을 만든다는 내용으로 전개한다.
식탁을 함께 만들기 전까지는 보라색만 가득했다가(주인공 이름도 바이올렛), 이후로는 각각의 색채를 띄고 있는 것도 작가의 의도이리라. 이 책으로도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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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우리는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문경민 지음, 이소영 그림 / 우리학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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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우리는](문경민/이소영 그림, 우리학교)

문경민 선생님 책은 [훌훌], [화이트타운]을 읽었다. 어쩐지 [훌훌]보다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투린 하나린 시리즈를 제외하고) 제일 최근에 출판된 작품이다.
이 책은 단순한 6학년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과 사회의 어두운 단면도 함께 담고 있다. 그래서 더 좋았다. 희망 퇴직 요구와 그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마음이 맞는 줄 알았던, 자신의 사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새로운 친구에게 마음을 열다가 뒤통수 맞은 이야기도 있다.-이 부분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서 외로움을 느끼고 멀어져서, 궁극에는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까지 했던 친구에게 용서를 빌고 화해하는 이야기도 있다. 사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스스로 돌이키고 용서를 비는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요즘은 이런 아이들 찾기 힘든데, 라는 생각에서. 보리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보리가 제일 마음에 와 닿았지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세희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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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 가면서 알게 된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정정당당한 싸움이나 승부가 명확하게 갈리는 일은 스포츠 경기에서나 벌어지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모두가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 P195196

어쨌든 세희는 거짓말쟁이였다. 사연이야 있을 수 있어도 그 애가 저지른 일들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하는 식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 P21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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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독이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에 좌우되지 않는 내적인 소양이나 태도입니다. - P42

우정과 공동체 의식은 무엇보다도 내적인 자질이며 이 내적인 자질을 인정하면서 사람들이 함께하는 일은, 훨씬 더 큰 실재를 유쾌하게 표현하는 일입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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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현대지성 클래식 4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우섭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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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레프 톨스토이/윤우섭 옮김, 현대지성)
-feat. 다북다복 3rd.

톨스토이 책을 제대로 읽은 건 처음인 것 같다.
이 책에는 단편 소설 세 편이 실려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주인과 일꾼‘, ‘세 죽음‘으로, 모두 죽음을 소재로 쓴다. 독서모임에서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만 다루었다. ‘세 죽음‘은 초기작(?)이어서 그런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나 ‘주인과 일꾼‘처럼 죽음을 맞는 사람의 내면을 다루지는 않는다.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 간접적으로 죽음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한편, 마지막에 나무의 죽음을 에피소드로 쓴다는 점이 신선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장에서 이반 일리치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반 일리치는 어떻게 살았기에 아무도 진정한 마음으로 추모하는 사람이 없나, 하고 생각했는데 뒤에 읽어보니 매우 평범하게 산 인물이었다. 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품위를 유지하기에 적절한 돈과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또, 빈트 게임에서 가장 큰 기쁨을 누렸다. 이런 그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죽음을 앞두었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에 대한 증오와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허덕이고 있을 때 빛 같은 존재가 나타났으니, 농부 게라심이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이기에,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산다. 이반 일리치가 죽기 전에 깨달은 진리는, 게라심을 만나지 못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때 [이방인], [고도를 기다리며]와 함께 읽어서인지, 까뮈와 베케트의 관점으로 죽음을 생각하던 차였다. 까뮈에 의하면, 무의미한 세상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힘쓰는 데서 부조리를 느끼지만, 죽을 이유가 없으므로 산다. 이런 부조리한 삶을 받아들이면서 자유를 누린다. 고고와 디디는 고도를 기다리며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삶을 산다. 나는 고도를 ‘잘 죽는 죽음‘이라 했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반 일리치는 잘 살지 못해 죽음 앞에서 괴로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부위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기까지도 오래 걸렸고(우리의 문제도 본질은 삶과 죽음의 문제일 텐데, 문제 자체에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지니기까지도 오래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옳은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인 것은 죽기 한 시간 전이었다.
아직까지도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 변하지 않음에 체념하기도 한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가 내 속에 정립되어 있지 않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열심을 내지 않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타인의 것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물리적 경계의 축소가 필요한 것 같다.-작품해설에 ‘주인공의 물리적 경계가 작아질수록 생각의 세계는 넓어지는 것이다.‘는 구절이 있다. 내가 생각이 많은 것은, 물리적 활동 반경이 좁고 잘 움직이지 않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을 죽음과 오롯이 대면하는 데 쓰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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