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아이 내니 영원한 내 친구 - 2020 제8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동화 부문 수상작 상상 고래 16
박미정 지음, 이주미 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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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아이 내니 영원한 내 친구](박미정, 고래가숨쉬는도서관)
-2020 제8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동화 부문 수상작
-권일한선생님 질문있어요 펀딩 책11

별이의 건강 때문에 부모님은 별이를 버렸다. 그리고 에이아이 내니가 별이를 돌본다. 이 책은 별이의 학교 생활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한때 별이와 각별하게 지냈던 찬우는, 찬우 동생이 저수지에 빠져 죽으면서 별이를 허구헌날 괴롭히는 존재로 변했다.

🏷하지만 찬우가 나를 ‘에이아이‘로 부르자, 아이들도 따라했다. ‘에이아이‘한테서 자랐으니 나도 ‘에이아이‘라면서.
˝야! 에이아이! 내 학원 숙제 좀 해!˝
˝가방이 무겁네. 에이아이! 네가 좀 들어.˝
내가 진짜 인공 지능 로봇인 것처럼 대했다. 이것저것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어려운 질문에 대답을 못 하면 멍청한 로봇이라며 비웃었다.
만약 누군가가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냥 못 들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싫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아이들이 계속 나를 괴롭힌다면? 주먹이라도 날리고 싸워야 할까?(15~16쪽)

마지막 별이의 고민이 마음 아프다. 나는 싸우라고 하고 싶다. 교사가 아닌 입장에서. 교사로서는 절대 그렇게 말하지 못할 거다. 못났다, 찬우야. 찬우는 해서는 안 될 말도 서슴없이 하면서 별이의 마음을 헤집는다.

🏷˝거짓말하지 마. 그런다고 아이들이 너를 좋아할 줄 알아? 여기에 널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 오죽하면 너희 엄마, 아빠도 널 버렸겠냐? 아무도 입양하려고 안 했다던데.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착한 척, 괜찮은 척 하지 말고 네 에이아이 로봇이랑만 놀아.˝(23쪽)

찬우의 이 말에는 별이랑 한 판 붙자는 말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저수지 사건 이후에 둘은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별이는 자신의 마음을 내니한테만 털어놓는다.

🏷˝변명하기 싫어서 그랬어.˝
내 말에 내니가 눈을 두 번 끔뻑였다.
˝이해하기가 힘들구나. 사실을 말하는 건 변명이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니? 변명은 잘못한 사람이 하는 거야.˝
˝내 잘못도 있으니까. 내가 찬우를 더 말렸어야 했어. 찬희가 비탈길을 내려갈 때, 멍하게 있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그리고 내니가 나를 구하느라 찬희를 살리지 못한 거잖아. 그러니까-..˝
내니가 눈동자를 굴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네 잘못이라는 거니? 네가 원인을 제공한 것도 아니고,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논리적이지 않아.˝
˝내니! 사람들은 원래 그래. 세상은 논리적으로만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고!˝(40-41쪽)

에이아이는 감정을 이해하게 될까. 혹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게 될까. 감정을 가진 존재를 인간과 다르게 대할 수 있을까.

찬희의 죽음을 읽어가며, [죽이고 싶은 아이2]가 생각났다. 서은이가 죽는 자리에 있었던 주연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서은이를 죽인 용의자로 지목되어야 했다. 별이는, 찬우를 말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찬희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어야 했다.
별이는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찬우의 괴롭힘을 받아주었던 것 같다. 하필 찬우가 반에서 힘이 센 바람에, 동조하는 아이들과 방관하는 아이들로 나뉘었다. 🏷사실 나는 지훈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놀리는 아이들도 싫지만, 지훈이처럼 구경하는 아이들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니까. 청소 봉사 활동 하는 날도 그랬다. 내가 혼자 청소를 하면 힘들 거라고 하고선 결국에는 아이들을 따라 나가 버렸다. 어차피 도와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가짜 동정심은 넘어진 사람을 발로 밟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70쪽)
가짜든 진짜든 동정심은 받는 사람에겐 모두 불쾌한 것 같던데. 진짜 동정심은 덜 비참했을까.

찬우 어머니는 찬희의 죽음으로 별이에게 다시 보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별이가 찬우 아버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상황이 되었고, 별이는 엄청난 고민 끝에 찬우 집에 간다. 내니의 말이 도움이 되었다.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잘 모르겠으면 에이아이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봐. 네가 만약 에이아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말이야.‘
눈을 감고 에이아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내니만 생각했다. 불쑥 튀어나오는 내 마음은 고개를 흔들며 계속 지웠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에이아이처럼 하기로 했다.(125쪽)

이 독서기록으로는 책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을 다 다룰 수 없었다. 생각해야 할 부분이 정말 많은 책이다. 다른 선생님들과도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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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
문경민 지음 / 김영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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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문경민, 김영사)

문경민 선생님 소설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어두운 부분을 수면 위로 끄집어 내어 이야기한다. 그런 부분이 걸리기는 하는데, 누군가는 얘기해야 하고, 사회에서 충분히 이야기되어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 이야기다. 인간이 만든 아르굴에게 인간이 위협 당하고, 아르굴을 피해 만든 여러 개의 방벽들이, 연합하지는 못할 망정 인간들의 정치질(?) 때문에 세워지고 망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있을 법한 일 같았다. 이런 재난과 혼란 속에 사람들의 정치질도 충분히 있을 법 했다. 있을 법한 일 같아서 슬펐다.

유이는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총대 메고 사람들을 대표하는 일을 했다. 18년 동안. 지칠 만했다. 오랫동안 힘든 일을 겪으면, 놓고 싶은 순간이 생기는 게 사람일 거다. 유이가 쿠니 지구를 떠나게 되었을 때, 욕하는 사람이 분명 있었을 거고, 내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유이는 지쳐버렸다. 열아홉 살 때까지 발안 셸터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고 앤서에서도 18년을 버티면서 살아왔다. 더는 견디고 이겨내고 안간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격벽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였다.(41쪽)

오늘 교직원 협의회가 있었다.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고, 까딱 잘못 하다가는 실수하겠다 싶었다. 선배 학사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말에 책임질 수 있으면 하는 거라고, 그리고 화내지 말고 나이스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적은 가까이 두라고. 다행히 실수하지는 않았다. 내년 상황이 불확실하다는 점이 매우 컸다.
이 과정에서 학년부장님이 힘들어 하셨다. 아, 그냥 힘들어도 올해 학년부장을 신청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부장을 하고 이런 기회에 말할 걸, 괜히 애꿎은 학년부장님만 힘들게 했구나. 함께 말을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 신청을 안 했는데, 내가 부장이 아니면 학년말 이런 상황에서 조용히 있어야 했던 거였다. 이미 쏟아진 물이지만, 부장님께 참 죄송했다.

나는 정치를 생각하면 환멸이 든다. 학교에도 국회의원 같은 정치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 책에서도 이런 부분을 어찌나 잘 묘사하고 있는지.

🏷˝저의 바람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니요. 중요합니다.˝
파비언은 차창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진심보다 믿음이 중요해요. 사람들은 믿고 싶은 걸 진실로 느끼니까.˝
˝진실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믿는 사람들도 많아요.˝
파비언은 콧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진실은 그때그때 달라요. 답이라고 찾은 게 오답이라는 걸 알게 되는 일은 우리 인생에 흔하디흔하지. 중요한 건 결국 믿음이오. 이것이 답이라는 그 순간의 믿음 말이오. 믿고 싶지 않은 진실에 마음을 여는 사람은 없어요. 힘을 실어주지도 않지. 힘이 실리지 않은 진실은 글쎄, 그딴 걸 어디에 써먹을 수 있단 말이오?˝(221쪽)

정치에서 진실은 없다. 어느 곳에도. 각자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지금 상황도 똑같지 않나.

떨어져 있는 세월이 길어지면, 사람이 달라지나..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속한 공동체가 달라지면, 그 사람의 심지가 굳지 않는 한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다. 결혼하기 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서다.

🏷킨 때문에 아버지가 죽게 된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킨이 자기 목적을 위해 그때의 일을 이용한 것은 다른 의미로 충격이었다. 칼에 베이는 듯한 배신감이 유이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킨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228쪽)

유이는 킨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킨 입장에서는 유이가 달라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누구나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요즘 내가 읽는 책에서 계속 나오는 단어가 있다. 공동체, 이야기, 사랑.

🏷˝유이야, 살아. 사는 것처럼 살아. 행복하게 살아. 사랑하면서 살아. 네가 사랑하는 것을 찾고, 돌볼 것과 지킬 것을 잡아. 그걸 손에서 놓지 않고 사는 거야.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였어. 세상이 엉망이면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해야 해. 그렇게 산다면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거야.˝(260쪽)

🏷유이는 속으로 되뇌며 가야 할 곳을 바라보았다. 하이난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으나 그곳에서 유이가 맞이할 모든 것이 삶의 이유가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삶을 찾고 싶었다.(303쪽)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삶 아닐까. 공동체의 이야기를 가지고 사랑하면서 사는 삶. 🏷˝세상이 엉망이면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해야 해. 그렇게 산다면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거야.˝

📚내가 읽은 문경민 작가님 책
✔️훌훌
✔️화이트 타운
✔️열세 살 우리는
✔️나는 언제나 말하고 있었어
✔️딸기 우유 공약
✔️지켜야 할 세계
✔️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
✔️용서할 수 있을까
✔️나는 복어
✔️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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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IVP 모던 클래식스 4
레슬리 뉴비긴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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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레슬리 뉴비긴/홍병룡 옮김, IVP)
-다북다복 14th.

굉장히 어려운 책이었다. 글쓴이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 글쓴이가 하고 싶은 말은 뒤에 있으니, 뒷부분까지 읽은 후에 독서모임에 참여했어야 했는데, 책도 겨우 읽었다. 다시 읽을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번역에서 아쉬운 부분이 조금 있었고(이중적 표현 등), 목차만 봐서는 글쓴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다원주의로 설명할 수 있는 모든 분야를 총망라해서 설명하고 있는 백과사전격 책이다.
내 언어로 바꾸는 일이 어려워서, 책의 언어로 대략의 내용을 요약한다.

먼저 글쓴이의 입장은 이렇다.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생각해볼 만하다.

🏷진리라는 것은 어느 한 종교 전통이나 문화 전통에 국한될 수 없는, 더 크고 더 풍성하고 더 복잡한 것이라고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가 진리를 찾는 겸손한 구도자의 자세를 품고, 열린 마음을 견지하며, 인류의 다양한 종교 체험에서 나온느 것을 모두 귀담아 듣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은가? 일방적인 복음 전도는 그만두고 오히려 대화의 자리에 나아가서, 서로의 종교적 체험을 나누고, 상대의 종교를 바꾸려 하지 말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더 겸손하고 정직한 태도가 아닐까? 오직 열린 마음이 있을 때만 진리에 도달할 희망이 있다.(24~25쪽)

글쓴이가 이런 주장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기독교를 진리의 유일한 소유자로 주장하‘(292쪽)면, 🏷‘우리의 절대가 지배와 억압을 낳는 또다른 근원이 되고 말 것이‘(303쪽)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인본주의적 관점인 것 같긴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역이 모든 인간의 삶에 작동한다고 믿는 의미에서 다원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유일하고 결정적 계시임을 부인하는 그런 다원주의는 거부한다.‘(338쪽)

글쓴이가 말하는 🏷‘종교적 다원주의란 종교 간의 차이가 진리와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동일한 진리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있다고 믿는 신념이다.(39~40쪽) 종교-정확하게는 기독교가 진리의 영역이 아니라 가치의 영역이 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인본주의가 시작되면서, 기독교 신앙이 ‘이성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계속되어왔다([순전한 기독교]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다.). 현대로 올수록,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사고가 팽배해졌다. 기독교는, ‘사실‘의 세계에서 ‘가치‘의 세계로 넘어왔다. 그러나 🏷‘정작 사실이라 불리는 것은 모두 해석된 사실이다. 우리가 무엇을 보는가는 우리의 정신이 어떻게 훈련받았는가에 달려 있다.‘(51쪽)
믿는 것이 곧 아는 것과 동의어인 때가 있었다. 그러나 믿는 것과 아는 것이 분리된 계기가 되는 사건이 생겼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망원경(그리고 아마도 현미경)의 발명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새로운 발명품들을 통해 사람들은 사물의 실상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64쪽) 글쓴이는 이런 움직임의 선구자로 알려진 데카르트의 회의론(˝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더 나아가서 버트란트 러셀이 진술한 과학적 진리의 확립 방식을 여러 가지 논거로 비판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데카르트의 회의론에는 신앙의 행위가 들어갈 수밖에 없고(🏷‘어떤 신념에 대해 의심을 품으려면 그와 동시에 다른 신념을 확고히 붙들고 있어야 한다.(92쪽)), 생각은 ‘언어‘로 하는데 언어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비판한다. 버트란트 러셀은 가설 설정과 실험에서 자행되는, 믿음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직관과 상상력을 설명하면서, 🏷‘이해에 도달하는 두 갈래의 길이 있어서 하나는 ‘지식‘이라 불리고 다른 하나는 ‘믿음‘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는‘(73쪽)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믿음이 없는 앎은 없으며, 믿음이 앎에 이르는 길이다.(73쪽) 더욱이, 이 앎은 전통에 기인한다. 🏷‘우리는 교사의 권위에 기대지 않을 수 없지만,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우리 스스로 그 가르치는 내용이 참이라는 것을 알기 위함이다.‘(95쪽) 🏷여러 개념들, 자료의 분류, 과학의 도구 역할을 하는 이론적 모델 등이 다함께 하나의 전통을 이루는데, 과학자들이 작업을 하려면 그런 전통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99쪽) 과학 역시 절대적 사실(진리)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게 엎어질 가능성이 없는 ‘사실‘들도 있다고 설명하시는 과학자를 본 적도 있는데,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과학도 일종의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면에서. 글쓴이의 말마따나 과학적 사실과 관련해서는 왜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하지 않을까.(401쪽)
그러면 🏷‘어떻게 해서 우리 문화에서는 누구나 수용해야 할 공적 진리, 곧 이른바 사실적 지식이라는 것과, 누구나 자유로이 선택해도 좋은 신념과 가치의 세계 사이에 이분법이 생기게 되었을까?‘(78쪽) 글쓴이는 그것을, 과학자들이 믿고 있는, 🏷‘목적 없는 우주의 개념이야말로 우리 세계를 둘로 분열시키는 것을 정당화시켜 준 장본인이다.‘(82쪽)라고 설명한다.

앞서 설명했듯, 🏷‘모든 추론 작업은 하나의 전통에 의존해 있‘(111쪽)다. 추론할 때 언어를 꼭 사용해야 하는데, 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의 전통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달리 추론의 능력을 계발할 길은 없다.‘(111쪽) 또한, 🏷‘모든 합리성이 사회적 전통 안에 몸담고 있는데, 이 전통이란 것은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을 파악하는 데 얼마나 적합한지 늘 시험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진리란 오직 어떤 전통의 테두리 내에서 파악되는 것이며, 전통은 그 추종자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면에서 얼마나 적합한지에 따라 그 적합성을 판정받게 된다.(114쪽) 따라서, 🏷‘서로 상반된 주장들 사이에 공정한 심판자 노릇을 할 만한, 실체 없는 ‘이성‘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117쪽)는다.
글쓴이는 과학과 종교, 또는 기독교 신학의 유사점에 대해 계속 비교하며 설명하는데, 과학적 전통이 이성, 종교적 전통이 계시에 달려 있다는 주장은 의미가 없으며, 둘 모두 합리성에 기반하고 있다. 둘의 차이는 경험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인데, 과학은 ‘나는 발견했다‘, 그리고 종교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것이 다르다.(121쪽) 이 부분을 읽으며 [파인애플 스토리]의 리뷰가 생각났다. [파인애플 스토리]는 어떤 선교사 가정이 선교하러 가서 원주민을 고용해 파인애플 나무를 심었는데, 원주민들이 계속 파인애플을 훔쳐가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선교사는 파인애플을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원주민은 자신이 심었으니 자기 것이라 생각했던 거였다. 선교사는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하나님 앞에 파인애플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리뷰에서는, 원주민은 이미 자연의 섭리대로 행동하고 있었으니 하나님을 자연으로 바꾸어 말해도 똑같은 논리가 아니냐는 거였다.
👉리뷰 주소: https://blog.aladin.co.kr/rahula/491458

아무튼 결론은, 🏷‘단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현대를 지배하는 타당성 구조의 진리이고, 이는 하나님이 역사적 사건들을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계시하시고 그것을 이루어 오셨다는 기독교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다.‘(129쪽) 그러므로, 이성과 계시를 반대 개념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성경이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이 현실을 이해하고 그에 대처하도록 돕는 합리적 담론의 전통은 반드시 (모든 전통이 그렇듯이)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146쪽) 이 부분은 아마도, 관찰, 해석, 적용 중 해석에 해당할 것 같다. 그 해석에 따라 삶이 달라지니. 기독교인이 삶을 살아가는 게 어려운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전통으로도, 공교육을 주도하고 있는 전통으로도 해석할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150쪽)
그러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글쓴이가 제시하는 방법은 이렇다. 🏷‘‘이성‘을 ‘성경‘과 ‘전통‘과 나란히 놓거나, 그것들을 보완하는 권위로 들먹인다는 것은 예수가 현재의 지배적인 타당성 구조에 끼워 맞춰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선교사의 과업, 아니 어떤 상황에서든 교회가 할 일은 역사의 참 의미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에 비추어 기존의 타당성 구조에 도전하는 것이다.‘(187쪽) 성경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타당성 구조는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있다.‘(191쪽) 그리고 그 이야기의 의미는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시고,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196쪽) 이것은 공동체 단위(회중 중심의 교회)로 이루어지며, 🏷‘자기를 탄생시킨 그 이야기, 곧 예수의 사역, 삶, 죽음,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이 자기를 비우신 이야기를 정규적으로 재연하며 이 이야기에 따라 사는 공동체다.‘(230쪽) 🏷‘복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실마리, 곧 죽으시고 살아나신 예수께 돌아가도록 반복해서 요구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역사의 의미가 역사 자체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는 것, 즉 역사가 스스로 발전하다가 끝에 이르면 그 의미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 또 행하시기로 약속하신 일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진정한 지평은 우리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는 데 있지 않고 그분이 다시 오시는 데에 있다.‘(239쪽)

이런 이해는 선교와 전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개인 구원에만 초점을 두지 않아야 하는데, ˝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와 같은 질문은 🏷‘개인의 궁극적 행복을 확보하고 싶어하는 개인의 욕구에서 시작하지,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에서 시작하지 않‘(332쪽)기 때문이다. 🏷‘선교의 목표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한다면, 다른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과 얼마든지 협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에큐메니컬적인데, 나는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을 위한 교회, 세이비어 이야기]가 생각나는 책이었다.

📍타당성 구조
🏷각 사회에는 피터 버거가 말한 이른바 ‘타당성 구조‘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어떤 신념이 타당성이 있고 또 어떤 신념이 없는지를 결정해 주는 가정과 행습의 구조를 말한다. 우리는 다른 시대나 장소에서 이 타당성 구조가 작동하는 것은 쉽게 알아볼 수 있으나, 본인이 속한 문화에서 그것을 분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110~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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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온천 웅진 우리그림책 126
김진희 지음 / 웅진주니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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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온천](김진희, 웅진주니어)
-웅진주니어 티테이블 11월 도서2

교과서에 실린 [구름공항]이 생각나는 책이었다.

그림책 시작하기 전에 아이의 말이 특이하다. 🏷˝엄마, 나는 원래 토끼였어.˝ 그리고 아이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토끼로서 지냈던 세월에 대한.

오늘처럼 눈이 내리던 날(여기는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다른 지역에는 눈이 왔으니까, 뭐.), 토끼가 빵 모양 바퀴가 달린 구름 차를 발견한다. 구름 온천에 가는 친구들의 차다. 토끼도 따라 나선다. 구름으로 이어진 동물 터널을 통과해서 구름온천에 도착했다.
구름온천에는 구름치약으로 이 닦고, 구름을 마시고, 구름을 가지고 논다. 그리고 구름 의자에 안겨 쉬는데...

🏷구름 의자에 안겨 쉬었더니
후, 내쉴 때마다 입안에서 구름 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왔어.

입안에서 나오는 구름 덩어리들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이다. 편안한 상태로 있으니 자연히 부정적인 생각이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 때문인지 먹구름이 몰려온다. 먹구름이 묻은 몸을 흰 구름들이 털어주고, 비로 씻겨준다. 그리고 물방울 안에 갇히는데, 이 물방울을 타고 구름 온천에 도달한다(아니, 지금까지 있었던 곳은 구름 온천이 아니야?). 물방울 타고 다니는 걸 보니, 3학년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워터볼이 떠올랐다. 워터볼은 물 위를 걸어갈 수 있는 놀이기구인데, 물방울처럼 생겼다.

구름 온천에서 계속 살지 말지 고민하는데 해님이 이 친구들을 꼭 안아준다. 그리고 이 친구들은...

🏷˝우리 토끼, 구름 온천에 계속 살지 왜 돌아왔어?˝
˝응, 엄마를 만나려고.˝

우리 딸이 이렇게 말하면 엄청 귀여울 것 같다.

그림책 뒷 면지에 구름 온천의 위치랑 구름 온천 사용 방법이 나와 있다. 그림책을 요약한 것 같다.

🔎2024년 하반기 웅진주니어 티테이블 멤버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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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날 웅진 우리그림책 122
김규하 지음 / 웅진주니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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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날](김규하, 웅진주니어)
-웅진주니어 티테이블 11월 도서1
-제6회 웅진주니어 그림책 공모전 우수상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소풍이라는 말을 썼지만, 요즘은 소풍 대신 현장체험학습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왜 바뀌었을까.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라 그런가.

아무튼, 소풍날엔 무조건 김밥이었다.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김밥 쌌다고 말을 많이 했더랬다. 시금치 데쳐야 되고, 이거 해야 되고, 저거 해야 되고, 라고. 그러면 그 말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맛있는 김밥에 죄책감이 스멀스멀 사라지곤 했다. 소풍날 아침에도 김밥을 먹고, 소풍 가서도 먹고, 남아 있으면 저녁에도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지금도 김밥을 참 좋아한다. 집에서 해먹기에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아이의 체험학습 날이 아니면 거의 하지 않긴 하지만.

책 표지부터 제목부터 김밥 느낌이 물씬 느껴진다. 김밥 재료들로 제목을 표현했다. 책에 나오는 재료들이다. 우엉, 햄, 오이, 계란, 밥알, 당근, 단무지, 시금치까지. 앗, 김이 빠졌네.

밥이 되었다. 밥솥에서 밥풀이 뛰쳐나온다. 김밥 김을 만나니 김밥 재료들이 보고 싶다. 김밥 재료들을 현대식으로(?) 소환한다.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휴대폰은 김으로 만든 건가. 이 휴대폰의 정체가 궁금하다.
김밥 재료들이 한 곳에 모이고, 밥풀이는 교관이 된다. 준비운동부터 하고 재료 손질을 한다. 모든 재료 손질 과정이 다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전기 밥솥안에 있는 밥풀 친구들을 부른다. 밥솥 안에 있는 게 다들 힘들었나 보다. 표정이 좋은 밥풀이 없다. 그런데 밥풀이의 🏷˝어디 한 번 놀아볼까?˝ 한 마디에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바뀐다. 밥풀들이 김 위에 누운 후, 김밥 재료들이 눕는 순서를 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 설정도 재미있었다. 김밥 쌀 때 어떤 재료를 먼저 넣겠다는 생각 없이, 손에서 가까운 재료를 먼저 넣는데 재료들끼리 있으니 순서가 필요하겠구나. 김밥 재료들이 눕는 방식도 다 제각각이다. 점프하기도, 군대처럼 행진하기도, 현란한 발놀림으로 눕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는 오이와 당근을 이렇게 썰지는 않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재미있게 봤다. 계란이 누울 때는 [팔딱팔딱 목욕탕]의 부황 아저씨가 생각났다.

김밥을 다 쌌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면서 ˝이 다음에는 뭘 해야 할까?˝ 물어봤더니 말아야 한다고 한다. 책장을 넘기면서 ˝정답!˝이라고 외쳤다. 김밥을 마는 것도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김밥 옆구리가 터졌다. 이때 교관 밥풀이의 표정이 뭉크의 ‘절규‘에 나오는 표정 같다. 다시 김밥 말 때는 모두들 결연한 의지로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드디어 썬다. 🏷‘우리 모두 무지개가 됐어!‘

도시락에 김밥이 담긴다. 각 집마다 다른 김밥의 모습을 여기서 본다. 나는 지연이 김밥으로 픽하겠다. 각각 다른 김밥처럼, 이름의 글꼴도 각각 다르다.

내가 어릴 때 소풍날의 기억이 나기도 했고, 내가 아이를 위해 김밥을 쌀 때 생각이 나기도 했다. 앞으로 김밥을 싸거나 김밥을 먹을 때마다 이 책이 생각나지 않을까.

🔎2024년 하반기 웅진주니어 티테이블 멤버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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