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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하는 인류 - 인구의 대이동과 그들이 써내려간 역동의 세계사
샘 밀러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23년 7월
평점 :
[이주하는 인류](샘 밀러/최정숙 옮김, 미래의 창)
-책가방 24년 1학기 4th.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인류의 역사를 정착이 아니라 이주에 맞춰서 소개하고 있다. 인류의 메인 DNA는 정착이 아니라 이주라는 뜻이다. 정착민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지 말고, 이주민의 관점으로 보자는 시각은 매우 신선했다. 이 책을 읽을 초반에만.
초반 부분은 읽기 지루했다. 왜냐하면, 추정하는 내용 투성이라서이다. 무엇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추정하는 내용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증거랍시고 내놓는 것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닌 걸 쓰려면 소설로 가야 하지 않나. 인류 역사는 기록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록이 없는 것은 추정해서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게 사실인 양 떠들어서도 안 되지 않을까. 추정의 근거가 불명확하고, 여러 가지 추정할 이론들이 있다면 더더욱. 그럼에도 자기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 강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겠으나 여러 가지 면에서 꺼림칙하다.
2장 바빌론, 성경, 아메리카 인디언은 성경 내용이 대부분이라 술술 넘어갔다. 작가가 잘못 알고 있는 성경 내용은 있지만, 개신교도가 아니겠지, 하고 넘어간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안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정확한 내용만 쓸 수는 없으니까(그런 면에서 책을 낸다는 것은 굉장히 신중해야 할 일인데 말이다.).
인류의 역사를 정착민의 관점에서 보는 이유는, 이주하는 기간보다 정착해서 지내는 기간이 훨씬 길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이주보다 정착의 효용이 크기 때문이라는 말일 텐데, 그러면 정착민의 관점에서 역사를 쓸 수밖에 없지 않나. 인류의 역사를 이주민의 역사로 보기에는 말이 안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인류는 모두 이주민의 후손이다.
그럼에도, 역사 역시 기득권의 시선에서 쓰일 수밖에 없으므로, 서양 중심의 역사 기록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설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는데, 그게 바로 서구적인 시각이었다. 콜럼버스가 그 땅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원주민이 있었다. 그러면 ‘발견‘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콜럼버스와 선원들의 초기 조상들이 왼쪽으로 돌아 유럽으로 향한 반면 타이노족의 초기 조상들은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들은 러시아 극동을 지나 알래스카로 건너갔고, 콜럼버스도 바이킹도 아닌 그들이 아메리카를 먼저 ‘발견‘했다. 그들은 남쪽으로 향했고, 해류를 타고 카리브 해에 있는 섬들에 정착하게 되었다.(217쪽) 애니메이션이나 미디어, 책 등의 자료로 서구의 시각을 갖기 쉽다. 이 책처럼 반대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었다. 🏷사람이 아닌 국경이 이동할 때는 이주민이 아닌 난민이 발생하게 된다. 미국의 작가 대니얼 멘델슨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폴란드에서 학교를 다니고 독일에서 결혼하고 소련에서 자녀를 낳고 우크라이나에서 죽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그는 한 번도 자기 마을을 떠난 적이 없었다.˝ 이는 1918년 이전에 현재 우크라이나의 리비우나 그 근처에서 태어나 1990년대까지 살았고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340쪽) 자기 마을을 떠난 적이 없는데 국적이 여러 번 바뀌는 상황이라니. 놀랍고 충격적이다.
일반적으로 정착민들은 이주민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자기 조상들은 이주민이었는데도 말이다. 대표적인 예가 난민일 것이다. 글쓴이는 이것을 ‘정주주의의 압제‘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이주의 역사를 부정하는 거라고 말한다. 아마, 정착민들이 이주민들을 반기지 않는 데는 기득권의 문제도 있겠지만, 변화하기를 싫어하는 속성이 클 것 같다. 변화가 싫어서 이주하지 않고 있는데, 이주민이 와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스트레스가 되기도 할 테니까.
🏷이것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정주주의의 압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있는 곳에 계속해서 머무르는 것이 정상인 세상에서 이동은 일탈이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생명이 위험에 처하거나 자신이 보유한 기술이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 필요해지는 것처럼 특별한 상황에서만 이주가 허락된다.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집에 머물러 있거나 적어도 태어난 국가에서 계속 살아야 하며, 이주 충동이나 다른 곳에 대한 갈망은 해외 휴가와 순례처럼 무해한 행위로 대체하면 된다. 이주가 비정상적이고 인류 역사에서 이주의 역할을 잊도록 권장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고향은 신성시되고 낭만화되는 반면 낯선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마치 고대 아테네 사람들처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땅의 흙에서 태어났다고 믿기라도 하듯 이주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349쪽)
일반적으로 난민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더 반기지 않는데, 난민이 고위층이라면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지만, 저소득층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더 안 받아들이는 것 같다.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게 싫은 것 같기도 하고, 가난과 범죄율의 관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우리 집 옆에 난민이 온다면? 개인적으로는 피해만 주지 않으면 상관 없는데... 무엇을 피해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일손으로 취급된다. 🏷웻백으로 안전하게 국경을 넘으면 일꾼이 필요한 농부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내 생각에 그는 임금을 정직하게 지불할 거야. 하지만 브라세로가 되면 나는 인간이 아니라 급여 수표에 나오는 숫자처럼 취급되지.(413쪽)
📚독서모임
아마 이때도 경진학사님 질문으로 이어나갔던 것 같다.
1️⃣나와 부모님의 이주 역사를 들려 주세요.
나의 이주 역사를 적어 본다. 어릴 때는 아빠 사역지 따라, 성인이 되고 나서는 발령, 결혼 같은 큰 사건에 따라 이주했다. 거제도에서 11년 근무했는데, 학교를 옮길 때 무엇을 봤냐 하면, 아는 사람이 있는가를 봤던 것 같다. 5년이 만기이지만, 보통은 4년 근무하면 옮겼고(4년째에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많아서 그랬다.), 2년 근무하고 옮겼을 때가 한 번 있었는데 백날 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일 때문이었다. 지금 같으면 교감선생님하고 딜을 했을 텐데. 그땐 결혼도 안 했고, 단단하지도 못했다(지금도 단단한 건 아니지만).
2️⃣이주가 인간 경험의 핵심이라고 하는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석균 학사님이 말했던 것 같은데 ‘이주가 생존에 영향을 미칠 때는 핵심이 될 수 있다‘고 했던가 그랬다. 나는 핵심 같지는 않다고 했나, 기억이 잘 안 난다.
3️⃣한국 사회는 이주민들에게 어느 정도 관대한 사회인가?
백인에게 관대하고, 유색 인종에게 관대하지 않다.
4️⃣경제적 요인(일자리부족, 경제 불평등, 빈곤), 사회적 요인(전쟁, 박해, 가족 재결합 등), 심리적 요인(이주 본능, 호기심)등 이주와 관련된 여러 요인들이 있다. 특히, 어떤 요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가?
이주의 원인을 이렇게 분류하신 경진 학사님의 통찰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석균 학사님은 결핍이 커졌을 때 이동한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인류는 ‘권력‘을 위해 정착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목소리(의견)를 높이기 위해 권력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정착과 이주는 같은 목적을 지닌다. 자기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정착하고, 이주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초기 정착과 초기 이주를 의미한다. 글쓴이가 ‘정주주의의 압제‘라는 표현을 썼는데, 정주주의에 힘이 있다는 말일 거다. 요즘은 특히, 자본주의의 힘(경제)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이주하고, 정착한다. 얻는 게 있는 곳으로 이동(정착 또는 이주)한다.
성경 인물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동한다.
5️⃣최근 각 나라들이 자국민 우선정책, 이민법 강화를 하는 추세인데 그럼에도 유럽의 일부 국가들(특히, 독일)은 수백만 명의 난민을 수용했다. 이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위에 적은 내용 중에 이 부분 설명이 있어서 패스.
📌매일 읽기 단상: https://blog.naver.com/kohen83/223492566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