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해마지 않는 정혜신 선생님의 <사람공부>. '공부의 시대' 시리즈중 하나이다.

 

최근 하고 계신일이 세월호 참사의 유족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인만큼 그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인지라, 몇가지 에피소드에서는 울컥하면서 읽었다. 세월호 참사로 동생을 잃고도 평소 동생에게 엄하게 굴었던 자신의 모습이 죄책감으로 남아 울지 못하는 형이나, 아이를 잃고 나서 또래의 조카를 보면 화가 나는 엄마, 갑작스레 자식을 잃게된 더할 수 없이 슬픈 현실을 함께 뜨개질하는 행위로 위로받는 엄마들. 이 아픔들을 아직은 잊을 수도 없고 잊혀져서도 안되는데...

 

정신과의사로 많은 이들을 위로하며 20여년을 일해오셨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민하고 성찰하는 삶이어야 하는 정혜신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상처받은 사람을 대하고 위로하는 일의 단순함과 복잡함, 쉬우면서도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그 행위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된다.

 

특히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노란 리본을 다는 일, 리트윗을 하고 촛불시위에 잠시라도 나가 서있는 일, 커다란 상처들 앞에서 때로는 부끄럽기도 한 작은 일들의 의미를 얘기해 주심에 감사하며.. 기억해 두고 싶은 구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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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에 대한 연민, 공감, 배려, 예의는 자격증이 없어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춰야 하고 갖출 수 있어요."라고 하셨는데.... 여기에 대해 반증하는 인물들에 관한 뉴스가 요즘 너무 많다. 특히 국회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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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피해자, 생존자는 `정신과 환자`가 아닙니다. 이것이 이들을 대하는 모든 치유행위의 전제가 되어야 해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트라우마 피해자를 정신과 환자로 취급하는 모든 행위는 피해자 개인이 지니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건강한 자아의 힘에 상처를 입히는 거예요. 그 사람이 치유과정 중에 발휘해야 하는 자기 상황에 대한 자기통제력을 약화시키는 것과 같아요.

트라우마 피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게 도와주고 그 상황에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에게는 본래 지니고 있는 무의식적 건강성, 온전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치유란 그 사람이 지닌 온전함을 자극하는 것, 그것을 스스로 감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그 힘으로 결국 수렁에서 걸어나올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거죠.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처럼 사람 마음 중에는 명백히 병들었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마음, 틀렸거나 비합리적인 마음이라는 게 있다고들 생각하죠. 정상적인 마음이란 건 그 반대쪽 마음일거라 굳게 믿고 있고요. 그런 도식적인 지식에 대해서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사람은 모두 똑같지 않다는 진리예요... 아무리 빼어난 이론이라도 이론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에 주목하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 그것이 가장 근원적인 치유적 태도라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예요. 어떤 경우에도 어떤 인간에게도 전적으로 공감하고, 전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그걸 알아야 하고, 그렇지 못한 나 자신도 비난하지 않아야 해요. 그러면서도 내가 왜 그런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충분히 오랫동안 철수를 떠올리고 누군가와 기억을 공유하는 시간을 거칠 수 있다면 철수 엄마는 종내 철수의 부재를 `아프지만 덜 아프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철수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할 수 있어요. 철수에게 최선을 다했다, 끝까지 철수에게 집중했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가질 수 있으니까요.

사람의 마음을 다루고 치유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점검과 자기성찰을 숙명이나 업보처럼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선입견이나 편견, 내 가치관과 세계관, 내 언행이 혹여 상처입은 사람에게 상처를 더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자격증의 권위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전문가가 됩니다. 그런 사람만이 타인에게 섣불리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전문가를 이상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에 그닥 관계없는 분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일상에 더욱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 삶이 전문가의 도움없이도 빛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다, 그걸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그게 치유의 출발점입니다. 그게 사람 공부에 대한 제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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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란 교수님의 사춘기에 큰 영향을 끼쳐다는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저도 토니오처럼 세상 밖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확장하는 독서, <흡혈귀의 비상>과 <고습도치와 여우>

 

 

 

 

 

 

 

 

 

 

 

 

 

 

 

 

2. 쓸모없는 독서의 쓸모를 알게 해준,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

 

 

 

 

 

   "누스바움은 내가 읽어온 책들이 내게 '공감'이라는 훈련을 시켜주어서 내가 현실에서 사건을 보고 판결을 하는 자세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직업적으로도 꽤나 쓸모가 있었던 셈입니다."

 

 

 

 

 

3.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상상력을 키워주는 어슐러 르 귄의 <빼앗긴 자들>

 

'진리는 상상의 문제다'

 

 

 

 

 

 

 

 

 

 

 

 

 

 

4, 책읽기의 의미를 깨닫게 한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보르헤스의 말처럼 나 자신을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에 대해 기록한 단 하나의 책을 찾는 것 말이지요."

 

 

 

 

 

 

 

 

 

 

 

 

 

 

5. 법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초대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한 알비 삭스의<블루 드레스>, 그리고 <돈키호테> <동물농장> <파리대왕>및 찰스 디킨스의 소설들

 

 

 

 

 

 

 

 

 

 

 

 

 

 

 

 

 

 

 

 

 

 

 

 

 

 

 

 

 

 

5.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 -' 사랑에게는 몇권의 책인 필요할까'-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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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나온 <공부의 시대> 시리즈중 하나인 김영란 전대법관의 강의록.

다른 사람의 책읽기에 대해 읽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소위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방지법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하고 또 찬성하는 입장이기에, 그녀를 만든(?) 수많은 책들에 대해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욱 즐겁게 읽었다.   

 

특히, 책말미에 수록된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그녀의 멋진 답변이 무척 기억에 남는다.

 

" 여성으로서의 삶 자체가 소수자로서의 삶이었던 시대(지금은 다른가요?)를 살아왔던 제게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해야 한다는 것은 따로 계기가 필요하거나 배워야 할 필요가 없는, 마치 평상복처럼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억해두고 싶은 몇 줄.

 

이야기는 상상력을 자극할 뿐 아니라 세계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세계의 구조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힘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정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튼튼한 기초를 놓아주는 것이죠.

제게는 책 속으로의 여행 그 자체가 불경에서 말하는 `무애의 경지`를 향해가는 여행이었다고 하면 어떨까요. 달리 명상을 하지 않는 제게는 책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곧 명상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지요. 책을 읽는 것이 그 자체로 저를 닦는 것은 아니었을까 합니다. 수양의 방편으로 책 읽기를 택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리 되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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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고요히
김이설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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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녀의 소설을 읽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몇년 전이던가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소설집을 읽고, 상처를 찔린 듯 아파하다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왜 또 그녀의 소설집을 꺼내 들었을까. 그냥 그녀가 변하지 않았는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몇년 전보다 훨씬 비관적이 된 현실을 생각했을 때 그녀의 소설이 읽어내기 쉬워지거나 밝아졌을거란 기대는 없었지만.

 

이 소설집 또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과 다르지 않았다. 읽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특히 첫소설인 <미끼>를 읽고나서는 한참 책장을 덮어야만 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악이란 무엇인가. 그녀의 소설에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같은 단어로 규정하고 남의 일로 만들어버려서는 안될 것같은 서글프고 안타까운, 그러나 현실적인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장애인인 아내가 자살한 후 삶이 한결 나아져 버린 평범한 남편에서부터, 남편이 자살한 후 시어머니까지 치매에 걸리고 살 길이 막막해지자 아이들과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여자, 오랫동안 떠나있던 남편이 돈가방을 들고 돌아오자 살인누명을 씌워 몰아내고 그가 들고온 돈가방을 차지하고서는 히죽거리는 여자같은. 속상하지만, 현실에 없는 일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이 무용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쓰고 싶어서, 써야해서 쓰는 것이지 누구를 위해서나 무엇을 위해서 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나를 힘들게 한다. 읽어내기 쉽지도 않고 힘든 현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 줄 뿐이다. 그래도 김이설, 그녀가 존재하고 계속해서 소설을 써준다는 것은 왠지 위안이 된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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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고 자다가도 억울해서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일들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이 그렇고, 5.18 희생자들의 죽음이 그렇고, 죽어가는 4대강이 그렇다.

그리고 특히 정부의 무능한 대처'때문에' 304명의 목숨을 잃어버린 세월호가 그렇다.

 

피해자나 유족 등 당사자가 아닌 이상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잊기 쉽다.

지겨워하고 싫증나고 내 삶을 살기도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나에게도 언제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304명의 희생자들은 우리 자신처럼 너무도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세월호가 침몰한 것은 사고였다 하더라도 희생자들이 그렇게 차가운 물속에서 구조되지 못하고 죽은 것은 정부의 무능하고 한심한 대처 탓이 매우 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사고속에 죽어갈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함께 외치고, 뒤에서 따뜻하게 지지를 보내야 한다.

 

김탁환 작가님이 이 소설을 써서 세월호를 기억하게 해주시고, 특히 우리가 잘 몰랐던 민간잠수사들의 아픔과 희생을 알게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한 마음이다.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해 힘을 보태고, 고 김관홍 잠수사의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책 한권을(꽃다발 상품권과 함께) 구매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도 감사하다.

 

더불어 김탁환 작가님의 인터뷰가 실린 시사인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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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권의 책을 반쯤씩 읽었다...

가슴이 아파서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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