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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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편의 카프카>를 한 10년 전에 읽었을까? 그 책을 겨우 읽어내고 나서 다시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참 괴상한 이야기다... (그때의 나로서는 해석이 전혀 불가능했기에) 뭘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에잇. 나하곤 안맞아. 하고 포기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중간중간. 에잇. 하는 생각을 했다. 이데아라니? 메타포라니? 흠.. 하며 나의 부족한 해석력을 절감한 것도 전과 같았다. 그런데, 왠지 전보다 훨씬 재미가 있었다.  조금 지루한 구석도 없진 않았지만, 좋은 문구들을 노트에 옮겨 적어가며, 끝까지 즐기면서 재미나게 읽었다.

 

"사람에게 마흔이라는 나이는 하나의 분수령이다. 그 고개를 넘어가면 더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고 하루키는 말하는데, 올해 내가 마흔이 되었기 때문인가. 하루키를 읽는데도 '시간만이 배양할 수 있는 무게'가 필요했던 것일까. (아니면 하루키씨가 전보다 더 잘 쓰게 된 것일까. ㅋㅋ)

 

내가 이 수수께끼같은 소설에 대해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아마도 그가 얘기하는 것이 그의 '예술론'일 것이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하루키를 해석하기 좋아하는 여러 비평가들이 써놓은 내용을 이제부터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다만 나는 툭툭 던져놓는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좋았다.

 

아무리 의욕이 넘친다 한들, 가슴속 어딘가가 욱신거린다 한들 일에는 구체적인 시작이 필요한 법이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 것은 예전부터 내게 중요한 의미였다.

반복이 리듬을 낳는다.

 

참을성있게 기다리려면 나는 시간을 믿어야 한다. 시간이 내 편이 되리라고 믿어야 한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사람은 처음부터 타고난 것에 크게 좌우된다.

그렇다고 연습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는 아니야. 어떤 재능이나 자질은 연습하지 않으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거든.

 

귀를 잘 기울이고,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날카롭게 벼려두는 것.

 

머리를 비우고 손에 익은 기술을 구사하며 불필요한 요소는 일절 내안에 끌어들이지 않는 것.

 

..... 나는 이런 말들에서 감명 같은 것을 받았다. 하긴 10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조금도 서두르지 않는 느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같은 톤으로 써나가는 사람으로부터 감명을 받지 않고 어쩌겠는가.

 

그런데, 하루키를 못 읽겠던 나와 1000페이지가 넘는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어낸 지금의 나는 달라진 것일까. 그동안 못읽었던 하루키의 소설들을 모아놓고 하나하나 차분히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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