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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수와 세책방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직업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문자가 탄생하고 책이 탄생하면서부터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사람은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즉, 구술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의 문화적 변동이 일어나면서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 이야기책 읽어주는 사람인 전기수의 실체가 문헌상에 알려진 것은 18세기 중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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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책을 읽어주는 노인은 동대문 밖에 살았다. 그는 언문(諺文)으로 쓴 이야기책을 입으로 줄줄 외웠는데, 〈숙향전(淑香傳)〉, 〈소대성전(蘇大成傳)〉, 〈심청전(沈淸傳)〉, 〈설인귀전(薛仁貴傳)〉 따위의 전기 소설들이었다.
매달 초하루에는 청계천 제일교(第一橋) 아래 앉아서 읽고, 초이틀에는 제이교(第二橋) 아래 앉아서 읽으며, 초사흘에는 이현(梨峴)에 앉아서 읽고, 초나흘에는 교동(校洞) 입구, 초닷새에는 대사동(大寺洞) 입구, 초엿새에는 종루(鐘樓) 앞에 앉아서 읽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기를 마치면 초이레부터는 거꾸로 내려온다.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가고, 올라갔다가 또 내려오면 한 달을 마친다. 달이 바뀌면 또 전과 같이 한다.
노인이 전기 소설을 잘 읽었기 때문에 몰려들어 구경하는 사람들이 노인 주변을 빙 둘러 에워쌌다. 노인은 소설을 읽어가다 가장 재미나고 긴장되고 중요한 대목에 이르면 갑자기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다음 대목을 듣고 싶어서 앞다투어 돈을 던진다. 이를 ‘요전법(邀錢法)’이라 한다.
―조수삼, “전기수(傳奇叟)”, 〈추재기이〉,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2010; 안대회,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한겨레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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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수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활동했다. ‘낭독의 달인들’이었던 전기수는 조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 점령하의 쿠바에서도 있었고, 중세 유럽에도 있었으며, 미국에도 있었고, 중국과 일본에도 존재하는 직업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입담과 재치와 연기를 십분 활용하여 독자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전기수가 책을 낭독하는 장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담뱃가게, 약국, 활터, 주막 등이 전기수의 주 공연 무대였다고 할 수 있다. 무대가 펼쳐지면 전기수는 부채를 쳐서 분위기를 맞추며 구연을 시작했다. 전기수는 ‘요전법’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기도 했고, 부잣집에 불려가 책을 대신 읽어주고 얼마간의 돈을 받기도 했다.

전기수는 이야기책을 단순히 읽어주는 역할만 한 것은 아니었다. 변사의 목소리 연기에 따라 영화의 흥행이 좌지우지되었던 무성 영화 시대의 변사들처럼, 전기수 역시 자신이 낭독할 책의 내용을 줄줄이 외운 다음 낭독 연기를 했던 것이다.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동화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어주듯, 전기수도 이야기를 듣는 청자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구연 역량을 총동원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청자들로부터 단돈 몇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책을 읽고 싶은 욕구는 강했지만 글을 읽지는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에 등장한 것이 전기수라는 직업이었다. 민중들은 전기수가 낭독하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지친 일상을 잠시나마 위무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읽을 줄 몰랐던 민중들이 많았고, 책값이 워낙 비싸서 개인적으로 책을 소유하기 어려웠던 시대에 이야기와 민중 사이를 매개했던 직업이 바로 전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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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상(李子常)은 그 이름을 알 수 없다.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나 여러 종류의 술서(術書)를 열람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 패관제서(稗官諸書)에 익숙하여 어록문자(語錄文字)에 관계된 것을 다 통달하였다.
가난하여 능히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어 혹 재상의 집에 출입하였는데, 소설을 잘 읽는다고 이름이 났다. 만년에는 군문(軍門)의 적은 봉급을 받았고, 친구 집에서 기식하는 일이 많았다.
―유재건, “이자상”, 〈이향견문록〉,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글항아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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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업복(李業福)은 겸인[傔人-청지기]의 부류다. 아이 적부터 언문 소설책들을 맵시 있게 읽어서 그 소리가 노래하듯이 원망하듯이 웃는 듯이 슬픈 듯이 가다가는 웅장하여 영걸의 형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가다가는 곱고 살살 녹아서 예쁜 계집의 자태를 짓기도 하는데, 대개 그 소설 내용에 따라 백태를 연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자로 잘사는 사람들이 그를 서로 불러다 소설을 읽히곤 했다.
―이우성·임형택 역편, “동원삽화”, 〈이조한문단편집〉 상, 일조각,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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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뛰어난 전기수들은 부잣집의 초청을 받아 이야기를 구연하기도 했다. 중인 계층의 부잣집에서 전기수를 초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초청한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이 때문에 전기수는 가끔씩 가벼운 위장을 하기도 했다. 여자처럼 화장을 하고 쓰개치마를 쓰는 경우도 있었으며, 의원이나 방물장수 행세를 하며 규방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전기수들은 〈심청전〉, 〈춘향전〉, 〈서유기〉, 〈조웅전〉, 〈장화홍련전〉 등을 낭독했는데, 한 권을 낭독하는 데 보통 4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이들은 낭독의 달인일 뿐만 아니라 암기의 달인들이었다. 전기수들은 이야기를 읊을 때 이야기책을 보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책을 통째로 외우고 나서 자신이 해석한 방식에 따라 이야기를 구연했다. 돈 많은 사람들이야 책을 구입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가난한 민중들에게 책을 산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였다. 제 아무리 뛰어난 전기수라 해도 그들은 이야기를 풀어내며 푼돈을 벌던 가난한 민중이었고, 책을 사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18세기에 세책방(貰冊房), 즉 책을 빌려주는 일종의 서점이 등장한 것은 이야기책에 매료되어 이를 읽고자 하는 독자들이 증가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세책방이라는 상업 공간의 등장은 이야기가 상업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상품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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