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야기의 메신저, 전기수

 

이야기를 소비하는 인간 


 
 

   
 

정조 때에 김중진(金仲眞)이란 사람이 나이 늙기도 전에 이가 모두 빠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롱하여 ‘과농(瓜濃-오이무름)’이라 불렀다. 그는 익살스런 농담과 상말을 잘하였는데, 세태와 인정을 곡진하고 섬세하게 담아내어 종종 들을 만하였다.
―유재건 지음, “김중진”, 〈이향견문록〉,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글항아리, 2008

 
   

  

   
 

이야기 주머니 김옹(金翁)은 야담이나 패설을 잘하여 듣는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배꼽을 잡는다. 그는 한 대목 한 대목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면 핵심을 꼭꼭 찌르며, 이야기에 살을 붙이면서 이러쿵저러쿵 잘도 말한다. 말하는 재간이 뛰어나 귀신이 도와주듯 민첩하다. 그래서 우스개 이야기[滑稽]하는 사람들 가운데 우두머리라 할 만하다. 더구나 그 내용을 따져보면 모두가 세상을 풍자하고 풍속을 경계하는 말들이었다.
―조수삼 지음, “말 주머니[說囊]”, 〈이야기책 읽어주는 노인〉,  박윤원·박세영 옮김, 보리, 2005; 안대회,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한겨레출판사, 2010

 
   



재담에 능했던 김옹, 즉 김중진은 직업적인 전기수는 아니었지만 옛 이야기의 달인이었다. 소설도 일종의 이야기이고, 역사도 크게는 이야기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이야기에 몰입한다. 김중진의 구성진 재담과 전기수의 낭랑한 낭독은 이미 세월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야기란 곧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세헤라자데를 보라.

〈아라비안나이트〉는 세헤라자데가 죽음을 담보로 왕과 펼치는 일종의 이야기 게임이다. 1,001일 동안 펼쳐지는 세헤라자데의 요설 앞에 결국 왕도 무릎을 꿇고야 만다.   

 

 

세헤라자데는 1,001일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해갔다. 세헤라자데에게 이야기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다르게 말하면 죽음을 지속적으로 유예시키는 무기였다. 이야기는 인간의 가장 두려운 공포인 죽음을 망각하게 하고, 죽음을 유예시키고, 죽음과 대항하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죽지 않는 한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고, 그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했던 삶을 살아보고, 상상조차 못해본 꿈을 꿀 수도 있을 터이다.

자신의 몸을 태워 마지막 불씨가 사그라질 때까지 형형하게 빛나는 촛불처럼, 전기수는 이야기라는 마음의 횃불로 다른 이들의 어둡고 외로운 삶을 밝혀주었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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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얼꿍얼 2010-12-11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촛불의 운명을 닮은 이야기꾼의 따스한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

비로그인 2011-04-07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 사는 것 같아요. 어르신들이 보시지도 않으면서 TV를 켜놓고 사시는 것을 젊어서는 이해 못했었는데 요즘은 나도...